서울시장 '소통령' 놓고 맞불
  • 감명국·엄민우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4.01.2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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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의 손길 뿌리치는 안철수… 선거 막판 극적 단일화 가능성도

‘소통령(小統領).’ 서울시장을 가리켜 흔히 정치권에서는 이렇게 부른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돼 있다. 사실상 ‘작은 대한민국’이라 할 수 있는 수도 서울을 이끄는 수장의 위상을 반영한 것이 하나이고, 대통령으로 가기 위한 차기 대권 주자 코스라는 점이 다른 하나다. 오는 6·4 지방선거의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여기에 또 하나의 의미가 더 붙었다. 바로 ‘소통령(疏通領)’이라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不通)’ 이미지를 빗댄 야권의 정치성 공격이기는 하지만, 대통령과 달리 서울시장만큼은 반드시 ‘소통(疏通)’형 이미지의 후보가 당선되어야 한다는 야권의 염원이 담겨 있기도 하다.

소통령 자리를 둘러싼 야권의 물러설 수 없는 전쟁은 새해 문을 열면서 시작됐다. 그동안 ‘신당’ 창당 작업이 지지부진하던 안철수 의원 진영에서 1월5일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을 새정치추진위원회(새정추) 의장으로 영입한 것이 그 신호탄이었다. 윤 의장은 일성으로 “전국 선거인 지방선거에 후보를 모두 내겠다”고 밝혔다. 이후 윤 의장은 “민주당과의 연대나 단일화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봐도 된다” “전국 선거를 치르면서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발언 강도를 점점 높여나갔다. 사실상 제1야당인 민주당에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왼쪽) ⓒ 시사저널 박은숙, (오른쪽) ⓒ 시사저널 임준선
“또 우리가 레드카펫 깔아줄 줄 아는가”

여의도 새정추 사무실에서도 지방선거 전체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서울시장 후보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는 인식이 내부적으로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서울에서 후보를 내지 않으면 선거 전체 홍보에도 영향을 주는 등 모든 면에서 마이너스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민주당 주변에서는 “지방선거가 새누리당과 민주당, 안철수 신당 3자 구도로 갈 경우 여당 좋은 일만 시키는 꼴”이란 비판도 나오고 있지만, 안철수 진영 내부에는 오히려 민주당의 태도에 불쾌감을 드러내는 목소리가 많다. 안철수 진영이 또 양보하는 것이 마치 당연하다는 듯 여기는 태도에 대한 불만이다. 다음은 2012년 대선 때부터 캠프 내에서 안 의원을 돕고 있는 안철수 진영 관계자의 말이다.

“주변에서 자꾸 우리더러 정말 서울시장 후보를 낼 거냐고 물어보는데, 나중에 어떻게 되는 것을 떠나서, 정상적인 정당이라면 일단 서울시장 후보를 내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오히려 민주당의 태도가 더 의심스럽고 애매하다. 정말 (우리와 야권) 공조 프레임을 갖고 가고 싶으면 말로만 당 만들지 마라 어쩌라 할 게 아니라, 서울과 경기를 어떻게 조율할지 등 본인들이 먼저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가 무조건 (서울시장 선거에서) 레드카펫을 깔아줄 줄 아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안 되는 것이다.”

새정추(안철수 신당)의 선거 전략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윤여준 의장 역시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제는 우리가 (민주당으로부터 서울시장 후보 자리) 양보를 받을 차례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박원순 후보에게 양보했다. 2012년 대선 때도 문재인 민주당 후보에게 대선 후보를 양보했다. 그렇다면 이번은 우리가 받을 차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야권 연대나 단일화는 결코 없다. 국민들이 우선 이런 담합과 거래를 원하지 않는다. 이는 새 정치 이미지에도 맞지 않다”고 가능성을 일축했다. “만약 국민들이 압도적으로 원한다면 몰라도”란 전제를 달았지만,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42쪽 딸린 기사 참조).

2011년 9월6일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왼쪽)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단일화를 발표한 후 포옹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윤여준 “외부 인사 영입 상당히 준비돼”

문제는 ‘후보’다. 이미 민주당에는 현역 서울시장 박원순이라는 강력한 후보가 나와 있다. 지지율 또한 선두에 서 있다(38쪽 딸린 기사 참조). 이에 비해 안철수 진영은 ‘소통령’ 후보가 영 마땅치 않다. 신선하고 파괴력 있는 후보를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단 내부적으로는 서울시장에 대한 구체적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현재 선거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우선순위는 ‘창당’ 문제에 대한 결론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보 영입에 대한 방향은 나왔다. 조직 안과 밖을 가리지 않고 펼칠 예정이다. 새정추의 한 관계자는 “다양한 가능성을 모두 열어놓고, 조직 내외를 가리지 않고 인물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내부 인물만으로는 신선하고 파괴력 있는 인물을 세우기가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최근 ‘정책네트워크 내일’ 소장을 맡고 있는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긴 했으나 본인이 “현실 정치, 선출직 등에 참여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새정추 측에서도 “새정추 차원에서 거론된 적이 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하며 해프닝으로 끝났다.

언론에서는 일단 이계안 새정추 공동위원장을 안철수 신당 측의 서울시장 후보로 상정해 가상 맞대결을 시키고 있다. 그는 이미 열린우리당 의원 시절부터 서울시장 출마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시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여론조사 결과, 박 시장에게 현저히 밀리는 모양새다. 실제 중앙일보에서 최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이 위원장은 박 시장과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과의 3자 대결 구도에서 13.4% 대 38.4% 대 33.4%로 크게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 의장은 “밖에서 말하는 것과 달리 정작 이 위원장 자신은 서울시장 후보 출마에 큰 뜻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는 외부 인사 영입에 대해 “상당히 많이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새로운 카드가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외부 영입 가능성에 대해 한때 홍정욱 전 한나라당 의원이 안철수 진영에 합류해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있었다. 홍 전 의원은 새누리당 측에서도 끊임없이 서울시장 출마와 관련해 러브콜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어느 당으로 출마하느냐 여부를 떠나 서울시장 후보로서 신선하고 파괴력 있는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홍 전 의원이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은 작다는 분석이다. 그와 가깝게 지내는 정치권의 한 중진급 인사는 홍 전 의원의 근황과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홍 전 의원은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당분간 정치는 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지금은 사업을 벌여놓은 게 있어서 그것을 챙기는 데 여념이 없다”고 전했다.

박원순 “내게 양보 이후 안 의원 위상 높아져”

민주당 후보는 사실상 박원순 시장으로 굳어진 분위기다. 민주당 서울시당의 한 관계자는 “일단 경기도지사 부문은 여러 후보를 놓고 내부적으로 단련시키는 분위기지만, 서울시장만큼은 박 시장의 지지도가 워낙 높아 다른 인물을 생각하기 힘든 상황이다. 한때 박영선 의원 등 몇몇이 준비를 해왔는데 올해 상황을 보면 결국 박 시장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박 시장의 입장에서 지금 가장 크게 관심을 갖는 것은 역시 안철수 진영의 후보 출마 여부다. 민주당의 한 핵심 전략가는 “새누리당과 일대일 구도라면, 누가 나오더라도 박 시장의 승리를 자신한다. 물론 안철수 신당에서 후보를 내는 3자 구도라 하더라도 지금 박 시장의 지지율을 본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하지만 만약의 사태를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서울시장 선거 패배는 민주당의 존립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우려했다. 그는 “솔직히 안철수 진영 측 입장에서는 서울시장 선거에 나가떨어지더라도 우리가 입는 상처만큼의 내상은 아니라고 치부할 수 있다. 그게 더 우려스러운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에 타격을 주는 차원에서라도 새정추 측이 서울시장 후보 출마를 강행할 것이란 분석이다.

그래서일까. 박 시장은 여전히 안 의원의 ‘아름다운 양보’를 다시 한 번 기대하는 눈치다. 그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안 의원과 나는 새 정치를 추구한다는 기본 인식이 같다”고 말하는 등 동질성을 부쩍 강조했다. 그는 “그런 점에서 저번에 그렇게 양보를 해주신 것이고, 역시 이번에도 그때와 같은 아름다운 결과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기존 정치권에서 해석하는 정치공학적인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결과가 있을 수 있다”며 2011년 보궐선거에 이은 또 한 번의 양보를 바라는 속내를 내비쳤다(38쪽 딸린 기사 참조). 그는 “안 의원이 대선 후보로 기대가 높아진 것은 어찌 보면 나에 대한 양보 이후 결정적으로 그렇게 된 측면이 있다. 기존 정치에서 볼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게 나와 안 의원 사이에서 기대되는 시대적 분위기와 요구가 아닐까”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만약 안 의원이 또 한 번 양보하면, 차기 대권 주자 다툼에서 안 의원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뜻으로도 읽히는 대목이다. 역시 야권의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박 시장은 “차기 대권 도전에는 현재 뜻이 없다”고 밝혔다.

“GT계가 박원순과 안철수의 연결 고리”

박 시장은 이미 재선을 위한 서울시장 출마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윤여준 의장의 바람대로 박 시장 쪽에서 ‘아름다운 양보’를 할 가능성은 없는 셈이다. 박 시장이 민주당을 떠나 안철수 신당으로 말을 갈아탈 가능성 역시 제로에 가깝다. 서울시청을 출입하는 한 기자는 “서울시의회의 3분의 2 이상이 민주당 의원이다. 이런 구도에서 박 시장이 민주당 당적을 버린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 양 진영의 경쟁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과연 안철수 세력에서 후보를 낸다 하더라도 완주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윤희웅 정치컨설팅 민 여론분석센터장은 “안 의원 진영이 서울시장 후보를 내겠다고 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지방선거에 임하겠다는 의지 표명 측면이 커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만약 안 의원이 서울시장 후보를 내서 박 시장과 경쟁하는 모습을 연출할 경우, 유권자들은 상당히 혼란스러워할 수 있다. 안 의원의 양보로 박원순 후보가 시장이 된 것을 기억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쟁 관계로 전환되는 것을 유권자들이 곱게 보지는 못할 것이다. 후보를 낼 경우 선거 내내 야권의 공세에 시달리게 되고, 오히려 호남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라 본다. 신당 측의 출마 후보가 있더라도 결국엔 선거 과정에서 후보들 차원의 단일화 논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결국 민주당과 새정추 측이 큰 틀에서 합의를 볼 수도 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실제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러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일한 바 있으며 선거 판세에 밝은 한 정치권 소식통은 “당에서는 현재 안 의원 진영에서 경기도지사를 나가고, 서울시장을 우리가 가는 것으로 정리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는 양쪽 모두 손해 볼 게 없는 윈윈 게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새정추 진영에서도 서울시장에 비해 경기도지사 후보군과 관련해서 더 구체적인 이름이 거론되는 상황이다.

안철수 의원은 1월16일 경기도교육청 주최 토론회를 찾아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을 만났다. 그래서 경기도지사 후보 영입에 공을 들이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날 안 의원은 “김 교육감을 경기도지사로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다음에 말씀 드리겠다”고 답해 여운을 남겼다.

박 시장 쪽과 안 의원 진영의 공통분모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점도 이런 가능성을 키워주고 있다. 민주당 내 전략가로 통하는 한 486 인사는 “박 시장 쪽의 정무 라인에는 민평연으로 불리는 ‘GT(김근태)계’ 인사가 많다. 그런데 시민사회계를 포함한 GT계는 안 의원 진영인 새정추와 연결돼 있다. 송호창 새정추 소통위원장 역시 박 시장의 예전 측근이지 않았나. 양측 사이에는 지금도 교감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태일 영남대 교수는 “지금 박 시장은 원래 안 의원이 밀었던 시장이고, 또 펼치고 있는 시정이나 성과가 새 정치와 동떨어진 게 아닌 만큼 지원 명분이 충분하다. ‘나의 새 정치가 아니면 다 안 된다’는 식의 ‘새 정치 근본주의’를 내세운 결정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신율 명지대 교수는 “지금 자꾸 서울시장을 놓고 상생 이야기가 나오는데, 안 의원의 새정추는 당연히 후보를 낼 것으로 본다. 후보를 내지 않는 게 곧 구태 정치와 결탁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새 정치라는 대의명분 차원에서라도 어쩔 수 없이 출마를 강행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는 윤 의장의 주장과도 맥이 통한다. 현재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민주당의 박원순 시장이 결국 ‘상수’라고 본다면, ‘변수’는 안철수 의원 진영이다. 결국 안 의원과, 그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윤여준 의장의 머릿속 ‘전략’이 소통령의 향방을 좌우할 전망이다. 하지만 “지방선거가 전부가 아니다. 총선도 있고 대선도 있다”는 윤 의장의 말에 정치적 함의가 숨어 있다. 끝까지 가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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