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아베 뒷덜미를 잡아채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4.01.22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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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지사 선거 호소카와 전 총리 지원…‘탈원전’으로 의기투합해 자민당과 결전

이노세 나오키 전 도쿄 도지사는 이런 나비효과를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 같다. 지난해 12월19일 이노세는 도쿄 도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진 사퇴했다. 일본 내 최대 의료법인 도쿠슈카이(德洲會) 그룹에서 도지사 선거 직전 5000만 엔(약 5억원)의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새로운 도쿄 도지사를 뽑는 날은 올해 2월9일로 정해졌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1월14일, 도쿄의 한 호텔 식당에서 일본의 전직 총리 두 명이 마주 앉았다.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는 공석인 도쿄 도지사 선거에 출마하기로 했다며 마주 앉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에게 “강력한 지원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좋다. 내가 도와주겠다.” 고이즈미는 기꺼이 동참을 약속했다. 만난 지 50분이 지난 후 두 노(老)정치인은 한 무리의 기자들 앞에 섰다. 호소카와는 “일본의 다양한 문제 중 특히 원전 문제는 국가의 존망과 관련될 정도로 위기감이 크다”고 주장했다. 고이즈미는 “호소카와가 당선되면 에너지 문제, 원전 문제 등에서 국정을 흔들 수 있는 도지사가 될 수 있다”고 호응했다.

호소카와 전 총리(왼쪽)와 고이즈미 전 총리가 1월14일 도쿄의 한 호텔에서 회동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AFP 연합
호소카와는 한때 신당 붐을 낳은 ‘일본신당’의 대표로 1993년 자민당의 55년 장기 독재 체제를 무너뜨리고 비(非)자민당 연립 정권의 총리가 된 인물이다. 짧은 총리직을 거친 뒤 1998년 정계 은퇴를 선언한 이후 지금껏 도예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그런 호소카와가 왜 다시 정치권으로 돌아왔을까.

직접적인 계기는 역시 ‘탈원전’이다. 특히 고이즈미와 탈원전으로 의기투합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호소카와는 지난해 9월부터 원전 정책에 정통한 관계자와 의견 교환을 계속해오며 탈원전을 정치적 의제로 만들고 싶은 꿈을 갖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도쿄 도지사 선거가 급부상했다. 과거 호소카와가 이끌었던 일본신당에서 함께했던 의원들은 주로 민주당과 유신회 등 야권에 흩어져 있었다. 이들 사이에서는 아베 신조 총리의 독주 체제를 막아낼 대립 축을 찾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호소카와였다.

호소카와의 측근으로 일본신당 시절 연립 내각을 구성했던 다나카 히데유키 전 경제기획청 장관은 지난해 말 한 강연에서 “탈원전을 화두로 삼아 도지사 선거에 호소카와를 꼭 출마시키고 싶다”고 호소했다. 이런 움직임에도 호소카와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총리를 맡은 지 20년이나 지난 ‘올드보이’의 자신감은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호소카와는 탈원전을 내거는 후보를 내세우고 자신은 뒤에서 지원하는 방법을 검토했다.

그때 한 사람이 접촉해왔다. 고이즈미의 측근인 나카가와 히데나오 전 관방장관이었다. 나카가와는 고이즈미의 전언이라며 “당신이 도지사 선거에 나서는 것이 좋겠다”고 전했다. 후방 지원에서 직접 출마로 전환한 계기였다.

호소카와는 그래도 신중했다. 고이즈미와는 이미 지난해 10월에 만났다. 당시에도 화제는 ‘원전’이었다. 고이즈미 역시 정치 인생의 마지막을 탈원전에 쏟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2013년 8월 고이즈미는 ‘원전 제로’를 추진하고 있는 독일과 핀란드 핵폐기물 처리장을 시찰했다. 마츠다 코타 모두의당 참의원은 “한 회식 자리에서 시찰을 끝내고 돌아온 고이즈미를 만났다. 회식이 4시간 동안 계속됐는데 그의 이야기 중 90%가 원전에 관한 것이었다. 그에게 탈원전 주장을 SNS에 써도 되겠느냐고 물어보니 ‘탈원전에 있어 정당은 상관없다’며 흔쾌히 쓰라고 했다”고 기억했다.

지난해 10월의 만남과는 별도로 호소카와 측은 고이즈미 쪽에 “둘이 직접 만나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이즈미가 도와주지 않으면 끝이다”라는 입장을 전했다. 대중적 호소력에 확신이 없었던 호소카와에게 고이즈미의 지원은 출마에 필수 조건이었다. 1월14일의 만남과 기자회견은 그런 과정 속에서 이루어졌다.

실제 여전히 대중적 인기가 높은 고이즈미의 파괴력은 상당하다. 기자회견이 있었던 1월14일, 자민당 파벌 구도로 볼 때 고이즈미와 아베의 선배에 해당하는 모리 요시로 전 총리는 한 강연에서 “자신의 동생같은 아베의 정권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일을 할 것인가”라고 말하며 고이즈미에 불만을 나타냈다. 

“자신이 키운 아베의 발목을 잡다니…”

모리 전 총리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고이즈미와 아베는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인 ‘세이와 정책연구회’ 출신이다. 2006년 고이즈미가 내려놓은 정권을 물려받은 사람이 바로 아베였다. 아베는 현 정부 차관급 자리인 내각부 정무관에 고이즈미의 아들인 고이즈미 신지로를 발탁하기도 했다. 이처럼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던 둘의 관계는 지난해 고이즈미가 원전 반대 발언으로 주목받자 뒤틀렸다. 아베의 2013년은 해외 순방의 연속이었다. 두 가지 과제를 위해서였는데 하나는 중국 포위망 구축이었고, 다른 하나는 경제 인프라 수출이었다. 특히 경제 부흥을 위해 후자에 집중했는데 그 핵심이 바로 ‘원전 세일즈’였다. 일본 재무성의 한 관계자는 “아베는 일본 내에서 문제가 됐던 원전을 연내 재가동해 안전하다는 걸 입증하며 세일즈를 펼치려고 했다. 그런데 고이즈미가 ‘아베만 결정하면 즉시 원전 제로가 될 수 있다’며 생채기를 내버렸고 이 때문에 아베도 재가동을 쉽게 말하기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호소카와가 고이즈미를 등에 업고 도쿄 도지사에 당선된다면 반(反)아베 세력이 결집되고 야권 재편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아사히신문은 “자민당 ‘1강’이었던 정치권이 향후 양극화할지도 모른다”고 보도했다. 실제 최근 호소카와의 움직임은 광폭이다. 도지사 선거 이후를 내다보고 있다. 한때 혐오했다는 오자와 이치로 생활의당 대표도 만났고, 자신을 따르는 호소카와 정권 정치인들의 그룹화도 모색 중이다. 이들 대다수는 아베의 우경화 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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