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 한 사람씩 껴안고 킁킁 냄새를 맡아보라”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1.3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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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자연을 이어 내면의 상처 치유하는 곽재구 시인

<곽재구의 포구기행>으로 대중에게 한 발짝 더 다가섰던 곽재구 시인(60)이 또 하나의 기행 산문집 <길귀신의 노래>를 냈다. 그는 이번에도 사람과 자연을 잇는 따뜻한 문장을 구사한다.

시인은 올겨울에도 인도에 갔다 왔다. 10년 넘게 해마다 인도를 찾아간 이유는 그곳에서 전통 민화를 그리는 화가들의 삶과 작업에 관심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카스트에 속하지 않은 이들이 평생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는 모습은 그에게 깊은 감명을 줬다. 그는 알려지지 않은 시골 마을에 찾아가 그들의 그림을 보고 더러는 구입하기도 했다.

“이번 겨울에는 남인도의 코친과 알레피, 북인도의 비슈누푸르 등지에 다녀왔다. 이들의 조상은 모두 1000년 전부터 그림만 그리고 살아왔다. 인간의 제일 아름다운 모습은 그가 한 가지 일에 생을 몰입할 때가 아닐까 한다. 이들의 삶의 이야기를 담은 책 한 권을 언젠가 낼 생각도 있다.”

그의 기행문을 읽다 보면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가는 것이 아니라, 꼭 고향을 찾아가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가 발 디디고 손 닿은 곳이 마치 읽는 이가 직접 보고 느끼는 것처럼 아주 친근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혹시 그가 그런 의도로 일종의 테마 여행 같은 것을 기획하고 떠난 것은 아닐까 궁금했다.

“좋은 글은 독자의 마음속으로 따스하게 흘러드는 강물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독자들, 특히 나이 든 세대인 경우에는 마음의 상처가 깊은 이가 많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부서진 꿈을 지니고 있는 이들에게 고향을 찾아가는 마음으로 고요하고 따스하게 들려줄 이야기가 있다면 의미 있는 기행문이 되지 않을까. 나와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내 글이 한 줌의 위안이 될 수 있으면 하는 것, 그것이 작가로서의 꿈이다.”

 

ⓒ 열림원 제공

‘인생은 나그넷길’ 노랫말에도 생의 진리 들어 있어

곽 시인은 <길귀신의 노래>를 통해 자연과 인간과 삶에 대한 애정을 다시 한 번 이야기한다. ‘길귀신’은 작가 자신을 지칭하는 것일까. <곽재구의 포구기행>으로 여행에 맛들인 그가 아예 길에서 죽겠다고 작정을 한 것은 아닐까 물었더니 그게 아니란다.

“길귀신은 나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를 지칭하는 말이다. ‘인생은 나그넷길’이라는 노랫말 속에 생의 한 진리가 들어 있다. 우리 모두 길 위에서 태어나 사랑하고 꿈꾸고 아파하고 절망하고 그리워하다 죽는다. 길 위에서 넋을 팔다 사라질 길귀신의 운명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 또한 길귀신의 일종이다. 내가 세상에서 만난 모든 사람이 다 길귀신이며, 오랫동안 사랑해온 ‘시의 신’ 또한 내게는 길귀신인 것이다.”

광주가 고향인 시인이 순천만을 중심으로 자연과 사람들 속에서 인연과 추억의 실타래들을 풀어내게 된 이유는 순전히 ‘와온 마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와온’ 마을에 대해 갖는 애착이 남다르다는 것을 책 속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어느 해 봄 ‘와온’ 마을에 들른 박완서 작가가 개펄에서 일하는 아낙들을 바라보며 ‘봄날의 꽃보다도 와온 바다의 개펄이 더 아름답다’고 했던 말을 떠올린다. 그는 어떻게 그곳으로 깃들었던 것일까. 독자들은 그의 평을 듣고 찾아갈 텐데, 그도 어떤 풍문에 이끌려갔던 것은 아닐까.

“모든 만남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다. 어느 날 한 바닷가 마을의 해지는 선창을 찾았다가 그곳의 이름이 ‘와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쟁이란 게 이름에 예민하기 마련이이어서 따뜻하게 눕다(臥溫)라는 이름을 만나는 순간, ‘아! 이곳에서 한 세월 정착하더라도 따뜻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마음을 눕힐 자리를 찾는다는 것, 한순간일지라도 인생의 행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는 와온 마을에 직접 거주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그 마을 주민인 양 시시때때로 그곳 바닷가를 찾는다. 13년 동안의 전업 작가 생활을 접고 2004년부터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교편을 잡으면서부터다. 그는 “순천대학교에서 와온 마을까지는 15km 정도다. 시내버스도 두 대 다니고 있어서 어떤 강의 시간에는 학생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와온에 가기도 한다. 그곳에서 학생들과 함께 시를 읽기도 하고 쓰기도 하고 소주를 마시기도 한다. 은퇴하면 아마도 이곳 바닷가에 머무르지 않을까 한다”며, 그때 놀러오라는 말을 덧붙였다.

아름다움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시인은 이번 책에서도 이 오랜 질문에 대한 답을 풀어냈다. 그는 설날을 맞아 고향을 방문하는 이들이 각자의 고향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랐다. 아름다움을 찾는 비법이란 ‘냄새 맡아보기’다.

고향에 가지 못하는 사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마음의 고향을 찾아나서는 여행이라도 떠나기를 바랐다.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가장 기분이 좋았던 순간이나 그리움을 안겨준 순간의 한 곳을 찾아가보는 것이다. 20년 전, 30년 전 오래된 시간 속의 풍경이라면 더 좋겠다. 털모자 쓰고 따스한 색감의 양말 신고 그곳을 찾아가보는 것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그 시절의 동네를 찾아갈 수도 있고, 불과 10년 전 살았던 아파트에 찾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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