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화·문소리·조민수 스크린 야하게 물들이다
  • 이은선│매거진M 기자 ()
  • 승인 2014.02.12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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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여성들이 발랄한 성담론 펼치는 <관능의 법칙>

<관능의 법칙>은 제작 단계부터 영화계 관계자들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면면을 보자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 2012년 <건축학개론>으로 전국에 ‘첫사랑 열풍’을 일으켰던 명필름이 제작을 맡은 데다, <싱글즈>(2003년)를 연출한 권칠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기 때문이다.

시나리오는 2012년 열린 공모전에서 14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대상을 차지한 작품으로, 이미 영화계에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파다했다. 주연 배우로는 엄정화·문소리·조민수가 뭉쳤다. 한국에는 유래 없던 40대 여자들의 성과 사랑, 인생에 대한 수다를 풀어놓는 영화를 만들기에 이보다 더 좋은 조합은 없을 것 같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 영화에 대한 가장 단순한 설명은 ‘40대 버전 <싱글즈>’다. 서른 살을 코앞에 둔 여자들의 사랑과 우정, 일과 결혼에 대한 현실적이고 유쾌한 수다였던 <싱글즈>의 시계가 딱 10년 후로 돌려진 것이다. 주인공들이 기혼자, 혹은 그냥 미혼이 아닌 ‘골드미스’라는 정도를 제외하면 그들이 처한 상황과 고민은 <싱글즈> 주인공들이 품었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는 40대라고 해서 20~30대에 하던 고민을 죄다 해결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새삼 상기시킨다. 비록 어리지는 않지만 나름으로 젊고 예쁜 나이. 여전히 꿈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열정적인 로맨스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나이. 자신이 누리고 있는 현재뿐 아니라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막연한 불안을 안고 있는 나이. <관능의 법칙>이 말하는 40대는 이런 나이다.

세 주인공이 처한 상황은 조금씩 다르다. 케이블TV 예능국에서 일하는 신혜(엄정화)는 능력 있고 잘나가는 PD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걱정하면서도 20대 연하남의 적극적인 애정 공세가 그리 싫지만은 않다. 그는 “쟤랑 사귀는 거야? 앤데?”라는 친구의 걱정을 이토록 쿨하게 받아칠 줄 아는 여자다. “쟤가 내 애는 아니잖니?”

청소년이 된 아이들을 외국에 유학 보낸 주부 미연(문소리)의 최대 관심사는 남편과 보내는 뜨거운 밤이다. “여자는 사랑받기를 포기하는 순간 끝이야, 끝!”이라며 앙칼지게 주장하는 미연은 밤만 되면 한껏 기가 죽는 남편을 위해 정성을 퍼붓는다. 비아그라에 의존하는 남편에게 몸에 좋다는 것은 다 거둬 먹이고, 듣도 보도 못한 민간요법까지 시도한다. 사랑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는 미연은 친구 신혜의 연애에도 적극 찬성하며 이렇게 말한다. “인생 뭐 있어? 얼마나 산다고 남의 눈치를 봐?”

20대보다 똑똑하게 사랑할 수 있는 이유

홀로 딸을 키우며 사는 해영은 세 친구 중 가장 여리고 소녀 같은 여자다. 애인 성재(이경영)와 마치 20대로 돌아간 듯 뜨거운 연애를 즐기는 중이다. 해영의 가장 큰 고민은 엄마의 연애는 아랑곳 않고 결혼 따위는 꿈도 안 꾸는 딸 수정(전혜진)이다. “이놈의 육아는 대체 언제까지 해야 끝이 나는 거니?”라고 푸념을 늘어놓던 해영은 결국 볼멘소리로 이렇게 외친다. “내 혀도 간 보는 것 말고 다른 것 좀 맛보고 살면 안 되니?” 제2의 인생을 누리고 싶어도 자식이 원수다.

40대가 20대보다 똑똑하게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결코 필요 없는 내숭을 떨지 않는다는 점이다. 눈치 보고 재느라 시간을 낭비하며 헛다리나 짚는 멍청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때문에 <관능의 법칙>의 세 주인공은 각자의 상황에서 최대한으로 즐길 수 있는 애정을 마음껏 누린다. 화끈하고 뜨겁다. 그들은 40대가 “농염하고 치명적인 매력”을 갖춘 나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 저절로 수긍이 된다.

하지만 내내 그렇기만 하다면 이 영화가 그리는 40대의 인생은 판타지에 가까울 것이다. <관능의 법칙>은 40대이기 때문에 그들이 안고 있어야 하는 고민 역시 함께 녹여 넣음으로써 판타지에서 한 발짝 비껴난다. 신혜는 결코 결혼을 인생의 목표로 삼지 않는다. 그는 앞으로의 인생을 이렇게 짐작한다. “난 앞으로 날 먹여 살리느라 바쁠 거야.” 자신의 1년과 연하 애인의 1년은 다르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신혜는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에게 결혼은 자기 자신보다 중요한 가치가 아니다.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결국은 둘 사이를 묶어두는 감정이 의리라는 것을 깨닫고 절망하게 되기도 한다. 미연은 시들해진 부부관계가 남편의 외도 때문임을 알고 크게 상심한다. 낯선 남자의 관심에 우쭐했다가 범죄에 이용당한 것을 알고는 더 크게 상심하기도 한다. 미연을 위로하는 친구들은 “거봐, 우리 나이에 누가 따라오면 무조건 퍽치기라니까”라며 속을 긁는다.

“오르가슴보다 암이 더 어울리는 나이”답게 더 이상 건강하기만 한 육체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만성 변비로 고생하던 해영은 자신이 대장암에 걸린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해영의 에피소드는 후반부 영화의 가슴 찡한 감동을 책임진다. 감칠맛 나게 착착 감기는 대사들에 웃음 짓다가도, 사랑과 인생과 나이 듦에 대한 깊숙한 시선에 마음이 뭉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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