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주-동빈 형제 대권 혈투 시작됐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4.02.18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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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동안 500억대 계열사 지분 경쟁적 매입 롯데판 ‘왕자의 난’ 가능성

롯데가(家) 2세들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재계에서는 그동안 ‘신동빈=한국, 신동주=일본’이라는 공식이 정설처럼 여겨졌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2010년 6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내가, 일본은 형님(신동주)이 경영하기로 오래전에 결정됐다”고 말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이런 암묵적인 합의를 바탕으로 홀수 달은 한국, 짝수 달은 일본에 머무르는 ‘셔틀 경영’을 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장남인 신동주 롯데홀딩스(이하 일본롯데) 부회장과 차남인 롯데그룹(이하 한국롯데) 회장의 지분에서도 분업 구도를 엿볼 수 있다. 승계가 임박한 국내 재벌 기업의 경우 계열사 혹은 사업 부문별로 2세들의 지분 차이가 뚜렷하다. 지분 승계가 되지 않아도 후계 체제에 대한 예측이 가능했다.

ⓒ 일러스트 오상민
‘신동빈=한국, 신동주=일본’ 불문율 깨져

하지만 롯데의 대권 승계 구도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거의 모든 계열사의 지분을 장남과 차남이 골고루 나눠 갖고 있다. 유통 부문 대표 회사인 롯데쇼핑의 경우 신동주·동빈 형제가 각각 13.45%와 13.46%를 보유하고 있다. 지분율 차이는 0.01%에 불과하다. 롯데제과·롯데칠성·롯데푸드 등 핵심 계열사 지분율 차이도 2% 안팎이다.

외견상으로 차남의 지분이 조금 높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기업 분석 사이트인 CEO스코어는 두 형제가 보유한 주식 가치의 차이가 1000억원 상당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신격호 총괄회장이나 장녀인 신영자 전 롯데쇼핑 사장(롯데복지재단 이사장)이 누구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지배력이 달라질 수 있는 구조다. 신 총괄회장은 현재 롯데쇼핑(0.93%)과 롯데제과(6.83%), 롯데칠성(1.3%) 등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신 이사장은 롯데쇼핑(0.74%), 롯데제과(2.52%), 롯데칠성(2.66%), 롯데푸드(1.09%), 롯데정보통신(3.51%), 한국후지필름(3.51%)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계속되고 있는 롯데 2세들의 계열사 지분 매입 경쟁이 재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 1년간 신동주·동빈 형제가 매입한 롯데 계열사 주식은 500억원을 상회한다. 동생인 신동빈 회장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해 1월 롯데푸드를 시작으로 롯데케미칼·롯데제과·롯데칠성·롯데손해보험 등의 지분을 잇달아 매입했다.

그러자 형님이 반격에 나섰다. 신동주 부회장은 지난해 8월부터 올 1월까지 주식을 매입하는 데 60억원 이상을 쏟아부었다. 특히 롯데제과를 집중적으로 매입하면서 지분율이 3.48%에서 3.73%까지 높아졌다. 신동빈 회장과의 격차는 1.61%로 줄어들었다.

지난 2003년 이래 두 형제의 지분 변동은 거의 없었던 점을 감안할 때 최근의 지분 경쟁은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증권가에서는 롯데 2세들의 지분 매입에 대해 “대권 경쟁의 신호탄이 아니겠느냐”는 시각이 나온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후계 구도를 확고히 하기 위해 롯데 2세들이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롯데판 왕자의 난’ 발발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보유 지분이 적은 신동주 부회장이 식음료 부문 대표 회사인 롯데제과의 주식을 매입해 영향력을 키우려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 롯데와 한국 롯데는 그동안 일정 거리를 유지해왔다. 해외에 진출할 때도 업종이나 지역을 따져 중복 진출을 피했다. 이런 암묵적인 분업 구조마저 최근 깨지고 있다. 일본 롯데는 지난해 7월 태국과 인도네시아에 잇달아 공장을 신설했다. 신 부회장은 태국 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자리에서 “일본에서 태어난 롯데 과자를 해외에 진출시키는 것은 당연하다. 과자 브랜드 전략은 향후 일본 쪽에서 주도하겠다”고 선언했다.

롯데측 “책임 경영 차원에서 계열사 주식 인수”

태국과 인도네시아 지역은 그동안 한국 롯데에서 공을 들여왔다. 신동빈 회장은 동남아를 해외 진출 거점으로 잡고 투자를 확대해왔다. 신 부회장이 여기에 태클을 건 것이다. 일본 언론은 “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가 본격적으로 경쟁 구도에 돌입했다”고 보도했다.

롯데그룹 측은 “(신동주·동빈 형제의) 계열사 지분 매입과 경영권 분쟁은 무관하다”고 강조한다. 그룹의 한 고위 관계자는 “최근 여러 차례 계열사를 합병하면서 어쩔 수 없이 지분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며 “신동빈 회장이 책임경영 차원에서 상호 출자 해소 물량을 인수한 것”이라고 밝혔다. 신동주 부회장의 지분 인수도 비슷한 차원일 것이라고 한국 롯데 측은 주장한다.

한국 롯데 측은 일본 롯데 측과의 교류가 거의 없기 때문에 신동주 부회장의 의중을 파악하기 어렵다. 신동주 부회장은 평소 제과 사업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 부회장이 투자 차원에서 롯데제과 주식을 매입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한국 롯데 측은 설명했다.

그룹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 한국 롯데 주도로 진행해온 해외 사업에 일본 롯데가 추가로 진출한 데 대해 이런저런 말이 많다”며 “사업 부문이나 지역은 한국과 중복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롯데 2세들이 지난 1년여간 매입한 주식은 600억원대지만 전체 지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재계에선 “그룹의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다”라고 보고 있다. 오히려 지분 경쟁을 하려 했다면 롯데쇼핑 지분을 인수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롯데제과의 경우 한국 롯데의 모회사 격이다. 하지만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회사는 롯데쇼핑으로 평가된다. 그룹 매출의 30%를 담당할 뿐 아니라 오너 일가 지분도 29%에 이른다. 따라서 향후 롯데그룹 지배구조가 바뀔 경우 지주회사 1순위로 거론되는 곳이 롯데쇼핑이다.

일부 증권 전문가들도 “향후 1~2년 내에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변화가 현실화할 수 있다”고 전망하면서도 “50개 이상의 순환 출자 고리로 연결된 롯데그룹의 일부 계열사 지분을 오너 일가가 매입했다고 대권 경쟁이라 예단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재계에서 롯데그룹은 순환 출자 구조가 복잡하기로 유명하다. 지난해 7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13 대기업집단 주식 소유 현황’ 자료에 따르면 국내 14개 기업집단의 순환 출자 고리 수는 124개다. 이 중 롯데그룹의 고리가 51개(41.1%)로 가장 많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69개 고리가 새로 생겨났는데 이 가운데 절반 가까운 32개가 롯데그룹이었다. 2008년 이후 롯데그룹이 대형 M&A(인수·합병)에 잇달아 성공하면서 저인망식 순환 출자 구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근혜정부 출범 전후로 경제민주화 논의가 활발해졌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자산 규모 5조원 이상 대기업에 대해 신규 순환 출자를 금지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신규 출자는 물론이고 기존의 순환 출자 관행에도 제동이 걸렸다. 지주사 전환에 따른 과세 특례 또한 오는 2015년 말 종료된다. 롯데그룹 입장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지배구조의 변화를 모색해야 할 상황이다. 일정 부분 성과도 있다. 롯데푸드는 최근 파스퇴르유업과 롯데햄 등 4개 계열사를 흡수 합병했다. 롯데제과·롯데칠성·롯데쇼핑도 각각 기린식품·롯데주류BG·롯데미도파를 흡수 합병했다. 지난해에만 9건의 계열사 간 합병이 있었다. 2011년까지 합하면 합병은 17건에 달한다. 급격한 지배구조 변화 과정에서 오너 일가가 일부 지분을 매입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재계 안팎에서는 여전히 분쟁 가능성이 제기된다. 차재헌 동부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고령인 신격호 회장의 지시로 주요 계열사의 합종연횡이 활발하게 이뤄진 직후 한국 롯데를 총괄하는 신동빈 회장이 지분 매입을 지속하고 있다”며 “단순한 지분 매입 이상의 시사점이 있다”고 말했다.

베일에 싸인 ‘광윤사’는 누구 품에?

그룹 사정에 밝은 인사들도 “롯데에서 2세들에 대한 교통정리가 끝난 것은 아니다. 분쟁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고 전망했다.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최상위 회사는 현재 호텔롯데다. 호텔롯데는 유통 부문의 지주회사 격인 롯데쇼핑의 지분 8.8%를 보유하고 있다. 롯데쇼핑 외에도 롯데제과(3.21%)·롯데칠성(5.92%)·롯데케미칼(12.68%) 등 30개 계열사 지분을 갖고 있다. 호텔롯데를 장악하면 상대적으로 손쉽게 그룹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호텔롯데의 최대 주주는 일본 롯데(19.2%)다. 일본 롯데의 대주주는 신동주 부회장일 것이라고만 알려져왔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금융감독원의 요구로 베일에 싸였던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배구조가 공개됐다. 롯데홀딩스를 지배하는 회사는 ‘광윤사’였다. 대표이사는 신격호 총괄회장이다. 이 회사는 직원 3명과 자본금 2000만 엔에 불과한 작은 회사지만 롯데홀딩스의 주식 120만주(27.65%)를 보유하고 있다.

결국 광윤사를 손에 넣는 사람이 후계 구도에서 유리한 고지에 오를 수 있다. 롯데 2세들이 최근 동남아 시장에서 격돌하고 롯데제과의 지분 인수 경쟁에 나선 것도 광윤사를 차지하기 위한 명분과 정통성 쌓기 수순이 아니겠느냐고 재계에서는 보고 있다.  


롯데 2세들의 지분 매입 경쟁이 불거지면서 신격호 총괄회장의 건강 등 근황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신 총괄회장은 한국과 일본을 활발히 오가며 경영을 진두지휘했다. 하지만 2011년 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를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부회장에게 맡기고 현재는 국내에 주로 머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관계자는 “일본을 오가는 횟수는 줄었지만 소공동 롯데호텔에 위치한 집무실에는 빠지지 않고 출근한다”며 “계열사 CEO들을 불러놓고 거의 매일 그룹 관련 현안 보고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창업 1세대로는 거의 유일하게 경영에 참여하고 영향력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건강도 나쁘지 않다고 한다.

신 총괄회장은 현재 자녀 4명에게 지분 90% 이상을 넘겨준 상태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롯데그룹 총수 일가가 보유한 주식 자산은 지난해 8월 기준으로 4조4656억원에 달한다. 이 중 신 총괄회장의 자산은 2721억원에 불과하다. 나머지 4조1935억원은 장남인 신동주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장녀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롯데복지재단 이사장), 차녀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에게 승계된 상태다. 자산 승계율은 93.9%에 달한다. 국내 41개 그룹의 평균 자산 승계율이 30%임을 감안할 때 롯데그룹은 경영권 승계 작업이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다는 평가다. 장남과 차남의 지분 차이가 미묘해도 신 총괄회장이 차기 지분 경쟁에서 ‘캐스팅 보드’ 역할을 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나이 또한 93세(1922년생)로 고령이다. 지난해 말에는 가볍게 넘어진 충격으로 고관절에 금이 가 수술을 받았다. 당시 신 총괄회장은 10일간 입원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최근 들어 부쩍 “신 총괄회장이 경영권 통제력을 상실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신 총괄회장의 건강이 약해진 틈을 타 2세들이 지분 매입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신 총괄회장은 그동안 친동생인 신춘호 농심 회장 및 신준호 푸르밀 회장과 적지 않은 갈등을 빚기도 했다. 1960년대 중반 라면 사업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신춘호 회장과 갈등을 겪었다. 현재는 형제간에 왕래가 완전히 끊긴 것으로 알려졌다. 신준호 회장과는 서울 양평동 부지 소유권을 둘러싸고 법정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형제간의 반목이 신격호 총괄회장의 2세 사이에서도 재현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롯데그룹 측은 “외부에서는 (롯데 집안에) 무슨 일이 있는 것 아닌지 의심하지만 내부에서는 오히려 조용하다”며 “오너 일가에 미묘한 기류라도 있었다면 내부에서 먼저 알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형제도 돈 앞에서는 남이다”  


롯데 2세들의 지분 매입 경쟁으로 재벌가 형제들의 분쟁도 다시 도마에 올랐다. 같은 피를 나눈 형제지만 실상은 남보다 못한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항소심이 선고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대표적인 예다. 1심과 항소심은 모두 이건희 회장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이 회장 측은 이 전 회장의 화해 제안을 거절했다. 이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이맹희 전 회장 측이 법정 밖에서 화해하자고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법정에서 최종 판결이 나길 원한다”며 “최종 판결 이후에 형제간 화해 문제가 거론될 수 있지만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박삼구 금호그룹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이미 여러 차례 충돌했다. 형제간 공동 경영으로 유명했던 금호그룹의 가풍은 사라진 지 오래다. 최근에는 박삼구 회장이 보안요원에게 금품을 주고 정보를 빼내려 한 혐의(배임 증재)로 박찬구 회장의 운전기사를 경찰에 고소하기도 했다.

범(汎)현대가는 2001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타계할 무렵 불거진 경영권 분쟁의 여파로 아직까지 후유증을 겪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은 재산 문제로 법적 다툼까지 벌였다. 두산그룹의 경우 ‘형제의 난’으로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이 2009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형제간 분쟁은 2세나 3세로 세포 분열하는 과정에서 더욱 격화되고 있다. 최근 일본 롯데와 한국 롯데가 동남아에서 경쟁을 벌이듯 그동안 지켜왔던 묵계를 깨고 상대의 사업 영역까지 침범하는 사례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국내 재벌 기업은 2세나 3세로 넘어가는 과도기 전략 중 하나로 사업 다각화를 선택했다. 사업 영역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형제 기업 간의 사업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형제 사이도 돈 앞에서는 남이다’는 터키 격언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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