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할머니께 다른 삶 사시라 말하고 싶었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4.02.18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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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만 관객 돌파한 <수상한 그녀>의 황동혁 감독

영화 <수상한 그녀>가 극장가에서 선전하고 있다. 벌써 600만명이 찾았다. 영화는 ‘늙은 여자’가 영정 사진을 찍으려고 사진관에 들어갔다가 ‘젊은 여자’의 몸이 되면서 벌어지는 소동극이다. 젊어진 육신을 걸친 늙은 여자는 가수가 되기도 하고 젊은 남자와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영화는 늙은 여자가 젊어진 순간부터 전형적인 로맨스 코미디물의 패턴을 따라가지만 우리 시대 노년의 삶과 시스템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진다.

로맨스 코미디의 달달한 외피에 지금의 사회 문제를 집어넣은 이 영화를 만든 이는 황동혁 감독이다. 그는 전작 <마이 파더> <도가니> 같은 영화를 통해 사회성 소재를 이슈화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런 그가 로맨스 코미디를 만든다고 하니 낯설었지만 그는 당연하다는 듯 “내가 코미디에 능하다”고 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이 코미디 영화는 황 감독에게 큰 영향을 준 두 명의 여자에게 바치는 ‘헌사’다. 오래전에 홀몸이 된 할머니(96)와 홀몸으로 그를 키운 어머니(67)다. “영화 속에 나오는 인물이 내 주변 인물이다. 말로는 시어머니가 친딸처럼 대하고 며느리가 친엄마처럼 모신다고 하지만 고부간의 관계는 친엄마와 친딸과는 다르다. 두 분도 할 말은 다 하고 사신다.”

특별한 여자들의 관계를 미혼인 그가 세세히 관찰할 수 있었던 것은 3대가 가족을 이뤘던 가정환경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에선 시어머니의 ‘아들 유세’에 시달리며 ‘내 남자’를 좌지우지하지 못해 우울증에 걸린 며느리가 아들과 딸로 이뤄진 ‘내 가족’의 지원 사격을 업고 남편으로부터 ‘홀시어머니의 요양원행’ 승낙을 받아낸다. 그는 “노후의 삶을 전면에 내세우거나 거창한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본 구도는 과거 세대의 희생을 생각해보자는 것이고 그것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들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영화는 그의 오리지널 각본이 아니다. 그가 감독직을 수락한 후 각색 단계에 ‘황동혁 색’을 입혔다.

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트먼트 제공
아들이 엄마에게 띄운 연서 <수상한 그녀>

영화 중 젊어진 할머니(심은경 역)가 아들 없는 집에서 기를 못 펴다가 아들이 들어오자 반사적으로 일어나 “왔어?” 하고 반색을 표시하는 장면에서 관객은 웃음보를 터뜨린다. 이는 황 감독의 경험이다. “할머니가 진주 분인데 문소리만 나도 ‘아이고 혁이 왔나’ 하고 큰소리로 반색을 해주셨다.” 한국식 가족 문화에서 엄마에게 아들은 ‘훈장’ 이상의 뉘앙스가 있고 그래서 나이 든 세대는 ‘왔어?’라는 말의 이면에 숨은 코드에 가슴이 찡해지고 젊은 세대는 심은경의 거짓말이 폭로될 위기에서 발생하는 개그적인 재미에 웃음을 터뜨린다.

틀니 에피소드도 원안에 없던 설정이다. “할머니가 예전부터 물 컵에 틀니를 담아놓았다. 지금은 그걸 보면 마음이 싸하고 찡하지만 처음에는 너무 징그러웠다.”

영화 초반부에 “병원 집 할망구 어디 갔대” “요양원 보냈대” “손자 손녀 다 키워놓으니 쓸모가 없다는 것이지”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이 장면도 자기 자식 육아는 부모에게 떠넘기고 아이가 좀 크면 부모를 요양원으로 보내는 요즘 풍조에 대한 그의 관찰과 비판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그의 ‘시각’에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기껏 청춘으로 돌아와 놓고 결국은 자식을 위해 그 청춘을 다시 포기하고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설정은 기존 세대의 ‘엄마 판타지’ ‘모성애’ 신화의 반복이라는 것이다. 황 감독은 이렇게 반론한다.

“지금 여성에게 그렇게 살라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내 할머니나 어머니에게 다시 태어나도 지금 남편과 살겠느냐고 물어보면 ‘아니다’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자식이 다시 자식으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하겠느냐면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우리 어머니는 그렇게 살았고 그런 세월의 훈장이 ‘늙음’이다. 나는 극 중 성동일의 입을 빌려 ‘다른 삶을 사시라’고 말하고 싶었다. 다시 ‘내 엄마’로 희생하면서 살아달라고 하는 게 아니다. 한번 마음껏 살아보시라고 엄마와 할머니에게 말씀해드리고 싶었다.”

그의 이런 마음은 10대부터 50대까지 두루 관객을 움직이게 한다. 이전에 만들었던 영화 두 편의 관람객 수보다 더 많은 관객이 찾고 있다. 그는 “마음속에서는 1000만 관객을 바라고 있다”며 웃었다.

이제 황동혁이라는 감독에게 코미디 감독이라는 타이틀이 더 크게 붙게 생겼다. 그의 어디에 코미디 감각이 숨어 있었던 것일까. 그는 “원래 내가 농담을 잘한다. 주변 사람 중에는 내가 어두운 영화를 하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가 많다. 이번 영화를 보고는 ‘영화가 너랑 똑같다’는 얘기를 해온다”고 말했다. 그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할리우드 영화 <빅>(1988년)이나 <사랑의 블랙홀>(1993년)을 떠올렸다고 한다. “같은 시간이 반복되는 설정, 거기에 남자 주인공이 차츰 적응해간다는 설정이 너무 기발했다.” 그러고 보면 과거의 같은 시간으로 계속 접근하는 <소스 코드>(2011년)처럼 ‘설정이 기발하다’고 칭찬받은 최근의 상업 영화도 오리지널리티는 없는 셈이다. 황 감독은 “영화는 원조가 너무 많아서 내가 처음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수상한 그녀>는 뒤 패도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 당초 원톱 배우로 가능하겠느냐는 의문부호가 달리던 20대 초반의 심은경은 이 영화에서 원맨쇼 같은 연기로 칭찬을 받고 있고, 인기 TV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끌던 성동일은 기존 이미지와는 정반대 지점에서 새롭게 인식됐다. 최근 최고의 흥행 카드로 인식되는 배우 김수현의 카메오 등장도 화제가 되고 있다. 영화 개봉 시점과 맞춘 듯이 <별에서 온 그대>가 안방극장에서 최고의 인기를 끌면서 영화 흥행에 일조하고 있다. 김수현을 스타덤으로 이끈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개봉 전에 섭외를 해서 찍었다고 한다.

황 감독에게 최고의 카메오는 그의 할머니다. 일반 관객은 잘 모르겠지만 찜질방 장면에서 그의 할머니가 잠깐 엑스트라로 등장한다. 5년 전 일손을 놓은 어머니는 매번 그의 영화를 보고 “수고했다”는 말 외에는 별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영화를 보고 “재미있다”는 말을 처음 해주셨다고 한다.

그에게 ‘우리 세대의 노년은 어떨 것 같으냐’고 묻자 “어머니가 평생 내 곁에 계실 수는 없을 것 같지만 내 집에서 임종을 맞을 것 같고 내가 어디서 죽을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여기서 ‘내 집’은 그가 <도가니> 흥행 성공으로 보너스를 받아 마련한 집이다. 그는 “우리 가족이 평생 처음 가져본 집”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가 결혼을 한다면 그도 결정을 다시 해야 할 것이다. “좋은 남편과 좋은 아버지가 될 자신이 없어서 결혼하게 될지 여부는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그에게 먼 얘기일 수 있지만 ‘좋은 아들’과 ‘좋은 남편’은 양립하기 어렵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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