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걷으며 다시 돌아오는 그 청년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3.04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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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 시인 기형도 25주기 맞아 추모제 등 다양한 행사

1988년 11월 신문사 기자로 활동하던 기형도 시인(1960~89년)은 고통 속에서 시를 만들고 있었다. 그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고 메모를 남겼다. 덧붙여 이렇게 기록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했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다.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 눈이 쏟아질 듯하다.’

그리고 얼마 뒤인 1989년 3월7일 시인은 서울 종로의 심야극장을 찾았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사인은 뇌졸중이었다. 그의 손에는 출판사에 보내야 할 시 한 편이 들려 있었다. 그가 보고자 했던 첫 시집은 유고 시집이 돼버렸다.

지난 2006년 광명시에 세워진 기형도 시인 시비. 광명시는 2017년 기형도 문학관을 열 예정이다. ⓒ 시사저널 임준선·연합뉴스
‘아침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에 수록된 첫 시 ‘안개’의 첫 행이다. 시인은 어린 시절 안양천변에서 살았다.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그 샛강에는 안개가 잦았다. 성장한 그는 샛강에 안개가 걷히지 않는다고 개탄했다. 그와 함께 1980년대를 보낸 친구들은 그가 본 안개가 지금도 걷히지 않았다고 말할까.

기형도 시인의 문학 정신과 흔적을 찾아왔던 경기도 광명시는 3월6일 시인의 25주기를 맞아 추모 문학제를 마련했다. 광명시는 2017년 개관 예정인 기형도문학관의 건립 진행 상황을 보고하는 행사를 준비하면서 추모 문학제를 함께 마련했다고 밝혔다. 1960년 경기도 옹진군 연평리에서 태어난 그는 1964년 경기도 시흥군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로 이사했다. 아버지가 도시 근교 농업이 성한 농촌이었던 그곳에 정착했던 것이다. 시인의 어린 시절을 유복하게 해주었던 아버지가 1969년 중풍으로 쓰러졌다. 기울어진 가계를 어머니가 꾸리는 가운데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했다. 신림중학교 3년생이던 해인 1975년 바로 위의 누이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이 무렵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인을 기리는 일에 대해 많은 이가 호응하는 것은 그가 살다간 시대와 이 시대가 닮았을 뿐 아니라 연장선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안개’는 그때나 지금이나 쉬이 걷힐 줄 모른다. 시인이 그려낸 우울한 풍경은 당시 군사 독재, 산업화와 관련된 것으로 지금의 사회 양극화가 그려내는 갈등·분노와 닮아 있다. 그의 시에서 부조리한 시대를 고발하는 장치를 발견한다는 평론가도 있다.

시인이 살다간 마지막 10년은 한국 현대사의 변곡점이었다. 그래서 그를 기리는 일은 1980년대를 재조명하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특정 지역 출신도 아니고 수탈당한 민중의 아들도 아니었다. 그가 성인이 되어 세상에 나선 지점이 1979년이었다. ‘80년의 봄’에 고뇌할 수밖에 없었던 평범한 대학생이 됐던 것이다. 그것뿐이었다.

응답하라, 1980년대

그로부터 딱 10년. 그는 청춘을 아주 바쁘게 보낸다. 요동치는 1980년대였기에 그 또한 요동쳤을 것이다. 1979년 연세대 정법대 정법계열에 입학한 그는 교내 문학 서클 ‘연세문학회’에 가입해 본격적인 문학 수업을 시작했다. ‘80년의 봄’을 맞아 철야 농성과 교내 시위에 가담하고 교내지에 ‘노마네 마을의 개’라는 글을 기고했다가 조사를 받았다.

1981년 방위로 소집돼 안양 인근 부대에서 근무했다. 안양의 문학 동인에 참여해 동인지에 작품을 발표했다. 1982년 전역해 양돈 등 집안일을 도우며 창작과 독서에 몰두했다. 초기작 대다수가 이때 습작이다. 1983년 3학년으로 복학한 시인은 연세대에서 제정·시상하는 ‘윤동주문학상’에 시 ‘식목제’를 응모해 당선됐다. 1984년 말 중앙일보에 입사하고 1985년 1월 시 ‘안개’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중앙일보에서 정치부에 배속됐다가 1986년 문화부로 자리를 옮겼다. 1988년 겨울 초입 그는 눈이 내리는 환상을 보며 메모를 남겼다. 일하고 여행 다니는 틈틈이 그의 사색은 눈처럼 공중을 떠돌았나 보다. 마치 죽음을 예감한 듯 이렇게 썼다.

‘그때 눈이 몹시 내렸다. 눈은 하늘 높은 곳에서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지상은 눈을 받아주지 않았다. 대지 위에 닿을 듯하던 눈발은 바람의 세찬 거부에 떠밀려 다시 공중으로 날아갔다. 하늘과 지상 어느 곳에서도 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처럼 쓸쓸한 밤눈들이 언젠가는 지상에 내려앉을 것임을 안다. 바람이 그치고 쩡쩡 얼었던 사나운 밤이 물러가면 눈은 또 다른 세상 위에 눈물이 되어 스밀 것임을 나는 믿는다. 그때까지 어떠한 죽음도 눈에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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