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러시아산 의혹 경찰 수사에 달렸다”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4.03.11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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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문화재청 발표에 의구심…3월 중 수사 결과 공개

숭례문 부실 복구에 대한 경찰의 수사가 가속도를 내고 있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3월6일 오전 10시 숭례문 복구공사 과정에서 금강송 등 관급 목재를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는 신응수 대목장을 소환해 다음 날 새벽 3시30분까지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이번 소환조사는 경찰이 지난해 12월 초 숭례문 복구공사에 국산 금강송이 아닌 러시아산 소나무가 쓰였다는 제보를 접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나선 지 석 달 만에 이뤄졌다. 경찰은 숭례문 부실 복구 의혹의 중심에 목공사를 총괄한 신응수 대목장이 있다고 보고 있다. 경찰은 1월3일 신 대목장의 자택과 그가 운영하는 강원도 강릉시에 위치한 우림목재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당시 숭례문 복원공사에 쓰인 우림목재의 목재 반입 내역 등에 대한 분석 작업에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다.

3월6일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신응수 대목장을 소환 조사했다. ⓒ 시사저널 구윤성
경찰이 이 같은 예상을 깨고 신 대목장에 대한 긴급 소환조사에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신 대목장을 소환하기 이틀 전인 3월4일 문화재청과 경찰청이 국립산림과학원으로부터 받은 통보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은 이날 숭례문 복원에 국산 금강송 대신 러시아산 소나무가 쓰였다는 의혹과 관련한 입장을 표명했다. 문화재청은 “국립산림과학원이 숭례문 복원에 사용한 소나무에서 채취한 시료 21점에 대한 DNA 분석을 실시한 결과 모두 국산 소나무로 확인됐다는 결과를 통보해왔다”고 밝혔다. 다만 숭례문에 쓰인 목재가 금강송인지 여부는 파악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문화재청과 함께 국립산림과학원에 소나무 유전자 분석 의뢰를 했던 경찰도 이날 동일한 결과를 통보받았다. 지난해 12월18 문화재청은 숭례문에서 채취한 코어(직경 8㎜의 나무심)를, 경찰청은 강원도 삼척 준경묘 현지에서 벌목하고 남은 금강송 뿌리와 목재 일부를 잘라 와 국립산림과학원에 각각 유전자 분석을 의뢰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문화재청이 보낸 시료에 대한 분석은 마쳤으나 경찰이 보낸 시료 분석에는 실패했다.

경찰이 의뢰한 표본에선 유전자 감식 실패

그런데 문화재청 의뢰로 국립산림과학원이 분석한 결과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있다. 먼저 숭례문에서 채취한 표본에 대한 유전자 분석이 가능했는지 여부다. 그동안 국립산림과학원 측은 “유전자 분석에 들어간 나무 시료들이 벌채한 지 상당 시간이 지나 분석 가능한 DNA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 세계 어디에도 (벌채한 지) 5년 이상 묵은 개체에서 유전자를 확보한 사례가 없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게다가 같은 시기에 벌채한 것으로 알려진 숭례문 표본에서는 유전자가 확보되고 준경묘 표본에서는 실패했다는 점도 의아한 부분 중 하나다. 이에 대해 국립산림과학원의 한 관계자는 “준경묘에서 채취한 표본은 썩어서 유전자를 확보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밝혔다. 그는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5년 이상 된 죽은 개체에서) DNA를 확보해 결과를 냈다. 수사 의뢰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학술적인 용도로 논문 등에 활용하기는 어렵고 이번에 확보한 기술에 대해서는 특허를 낼 방침”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 의뢰에 따라 국립산림과학원이 통보한 결과에 대해 경찰 내부에서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문화재청이 발표한 것은 경찰청에서 의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우리가 뭐라고 할 말이 없다”며 더 이상의 언급은 피했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수사 상황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는 한 인사는 “(숭례문 의혹 수사에서 피의자나 다름없는) 문화재청이 빠져나가야 할 사안이기 때문에 ‘숭례문에 러시아산 소나무를 쓰지 않았다’라는 결과가 급히 나온 것 아니겠느냐”며 “경찰이 직접 러시아산인지 확인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문화재청의 발표에 대해) 확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화재청과 별도로 경찰이 소나무 산지를 밝히기 위한 작업에 나선 정황도 포착됐다. 앞서 언급한 인사는 “사실 문화재청의 의뢰 결과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경찰이 따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도 금강송인지 여부를 조사해달라고 요청했다”며 “하지만 국과수에서는 관련 기술이 없어 확인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경찰, 광화문 금강송 빼돌린 사실 확인

숭례문에 러시아산 소나무가 쓰였다는 의혹에 대한 관련 기관의 통보가 나왔기 때문에 경찰로서는 수사 속도를 높여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힐 수밖에 없게 됐다. 경찰 수사 결과에 따라 문화재청의 발표가 또다시 뒤집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찰은 지난 2월 초 신 대목장이 2009년 광화문 복원공사 당시 삼척시 준경묘와 양양 법수치 계곡에서 기증된 금강송을 빼돌린 정황을 포착한 바 있다. 당시 경찰은 신 대목장의 강릉 목재소에서 문화재청이 공급한 금강송으로 의심되는 소나무 12본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3월6일 신 대목장을 소환조사하면서 신 대목장의 목재소에서 발견한 소나무 12본 가운데 4본이 광화문에 쓰여야 할 금강송인 것으로 확인했다. 신 대목장은 이날 경찰 조사에서 “(금강송의) 목재 상태가 좋지 않아 자신이 보관하고 있는 더 좋은 목재를 썼다. 이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을 뿐 일부러 빼돌린 것은 아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또 신 대목장이 숭례문 공사를 앞두고 기증된 충남 태안 지역의 안면송 일부를 빼돌린 정황도 포착해 이를 집중 조사했다. 시사저널은 신 대목장의 ‘안면송 빼돌리기’ 의혹에 대해 실제 안면송을 기증했던 송 아무개씨의 증언을 통해 상세히 보도한 바 있다(시사저널 2014년 2월19일자(제1270호) “신응수 대목장이 숭례문 기증목 빼돌렸다” 참조).

경찰은 이르면 이달 중으로 숭례문 의혹과 관련한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신 대목장의 금강송 횡령 의혹 일부가 밝혀진 이상 숭례문 복구공사의 1차 책임자이기도 한 문화재청으로도 불똥이 튈 것으로 보인다. 부실 복구로 인해 1962년 12월20일 국보 1호로 지정된 숭례문의 위상에 먹칠한 사실만으로도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문화재청은 3월4일 숭례문 의혹과 관련된 국립산림과학원의 조사 결과를 발표한 이후 아직까지 경찰 수사에 대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경찰이 수사를 통해 문화재청보다 더 많은 자료를 확보하고 있어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내부 관계자의 전언이다. 문화재청의 한 관계자는 “경찰이 수사 결과를 공식적으로 발표한 이후 그에 따른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라며 “경찰이 어떤 사안까지 수사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해 (문화재청의) 입장을 발표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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