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선 회장, 부실 계열사에 1850억 불법 지원했다”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14.03.11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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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지난 2월 검찰 고발…이사회 의결 없이 성우종건 CP 매입 혐의

정몽선 현대시멘트 회장이 무리한 계열사 지원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2010년 건설 계열사인 성우종합건설(성우종건)과 동반 워크아웃에 돌입한 데 이어, 올해는 상장 폐지 위기에 몰렸다. 1997년 성우그룹의 적통을 이어받은 지 17년 만이다.

고 정순영 성우그룹 명예회장은 1970년 현대건설 시멘트사업부를 독립시켜 현대시멘트를 설립했다. 현대시멘트는 1970년대 건설 경기 활황을 기반으로 성장을 이어갔다. 1980년대 들어와서는 본격적인 외형 확대에 나섰다. 금속, 건설, 전자, 정보통신, 자동차 부품, 리조트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1995년부터는 공식적으로 성우그룹이라는 이름을 썼다.

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에 위치한 현대시멘트 공장. 왼쪽 사진은 정몽선 현대시멘트 회장. ⓒ 연합뉴스
정 명예회장은 1997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룹의 모태인 현대시멘트를 포함해 현대성우리조트(현 웰리힐리파크)·성우종건·성우이컴(현 성우오스타개발)·하나산업(레미콘) 등 5개 회사를 장남인 정몽선 회장에게 물려줬다. 차남인 정몽석 회장은 현대종합금속, 삼남인 정몽훈 회장은 성우전자·성우캐피탈, 사남인 정몽용 회장은 자동차 부품회사인 현대성우오토모티브·현대에너셀을 각각 물려받았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정몽선 회장은 성공 가도를 달렸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주택 경기가 급속히 살아난 덕분이었다. 그룹의 주력 회사인 현대시멘트도 큰 수익을 남겼다. 2005년까지 매출 대비 영업이익은 두 자릿수를 이어갔다. 2003년의 경우 영업이익률이 30%에 육박했다. 동생이 경영하던 성우전자·성우정보통신·성우캐피탈이 부도를 내면서 계열에서 분리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2005년을 넘기면서 정 회장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무리한 레저 산업 확장이 발목을 잡았다는 지적이다. 정 회장은 스키장과 콘도에 이어 오스타C.C.와 현대성우퍼블릭을 충북 단양과 강원도 둔내에 개장했다. 2005년 말 1600억원 수준이던 차입금은 2008년 말 4400억원까지 불어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현대시멘트가 100% 지분을 보유한 성우종건도 경영난에 빠졌다. 서울 양재동 복합물류센터 파이시티의 시공사로 참여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파이시티 사업은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 9만6017㎡(2만9045평)에 물류센터, 오피스 빌딩, 쇼핑몰 등을 짓는 대규모 사업이었다. 건물이 준공되면 신세계백화점·롯데마트·CGV가 들어오기로 약속돼 있었다.

성우종건은 대우자동차판매 등과 시공사로 참여하면서 4000억원이 넘는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의 지급보증을 했다. 모회사인 현대시멘트가 CP(기업어음) 매입과 대출 지급보증을 통해 성우종건을 지원했다.

2세 승계 17년 만에 성우그룹 ‘뿔뿔이’

하지만 파이시티 사업은 인허가 과정에서 특혜 시비가 불거져 사업이 중단됐다. 이명박 정권의 실세였던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이 뇌물 수수 혐의 등으로 줄줄이 구속 기소됐다. 성우종건은 2010년 워크아웃에 돌입했고, 부실을 떠안은 현대시멘트 역시 동반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워크아웃을 앞두고 정몽용 회장이 운영하는 현대성우오토모티브는 보유 중인 현대시멘트 주식을 대거 매각해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현대시멘트는 리조트 사업과 사옥 매각 등을 통해 구조조정에 나섰다. 정 회장이 사는 서울 한남동 자택도 은행에 저당 잡혔다. 그럼에도 회사의 경영은 좀처럼 호전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현대시멘트는 350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9.3%와 57.1% 증가했다. 성우종건에 물린 지급보증에 따른 충당 부채로 대규모 당기순손실이 발생했다. 자본 잠식 상태가 되면서 상장 폐지 위기에 몰렸고, 3월2일에는 주식 거래도 중단됐다.

그룹 동반 부실의 단초를 제공한 성우종건의 상황은 더 나쁘다. 이 회사는 2012년 12월31일까지 워크아웃을 마무리 지을 계획이었다. 경영이 호전되지 않자 워크아웃 기간을 2014년 말까지 연장했다. 대주회계법인은 최근 감사보고서에서 “회사가 지급보증을 선 공사의 사업성이 악화되고 있다”며 “보증 금액에 대한 회사의 대지급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시멘트는 3월3일 액면가 5000원인 보통주 5주를 동일 액면 금액 1주로 병합하는 감자를 결의했다. 최대주주인 정몽선 회장의 지분은 10주를 1주로 병합하게 된다. 감자 절차가 마무리되면 상장 폐지 사유는 해소되지만 정 회장의 지분이나 조직 장악력은 현저히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검찰이 정 회장을 상대로 조사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2008년 성우종건이 발행한 1850억원 상당의 CP를 현대시멘트 이사회 의결 없이 매입하도록 지시(업무상 배임)한 혐의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2월 중순쯤 서울 서부지검에 고발장이 접수됐다. 형사5부에 사건을 배당해 조사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을 검찰에 고발한 곳은 현대시멘트 노동조합이다. 노조는 고발장에서 “성우종건이 CP를 발행할 당시 회생 가능성이 크지 않았다”며 “정 회장은 현대시멘트를 통해 CP를 매입하도록 지시해 부실 규모를 키웠다”고 주장했다. 2008년 현대시멘트 사업보고서의 ‘이사회 주요 활동 내역’ 어디에도 1850억원의 CP를 의결한 내역은 찾아볼 수 없다. 검찰은 현재 고발장 내용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성우종건 CP의 부당 매입과 관련된 자료 역시 상당 부분 넘겨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 고발한 현대시멘트 노조는 ‘침묵’

성우종건 채무에 대한 현대시멘트의 보증 규모는 2005년 716억원에서 2006년 1265억원, 2007년 4955억원, 2008년 7566억원까지 확대됐다. 같은 시기 부채는 1644억원에서 1363억원, 1205억원으로 감소하다가 2008년에 3130억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검찰 조사에서 CP 매입을 통해 불법적으로 1850억원을 계열사에 지원한 것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그럼에도 노조가 입을 다물고 있다는 점이 석연치 않다. 기자는 검찰 고발 배경을 듣기 위해 노조 측에 여러 차례 취재를 요청했지만 침묵으로 일관했다. 사측의 대응 역시 마찬가지다. 부서별로 답변을 떠넘기기 바빴다. 기자가 전화 통화한 현대시멘트 관계자들은 “(정몽선 회장에 대한) 검찰 고발은 처음 듣는 얘기다. 다른 부서에 문의하라”고 말했다. 이 회사의 한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확인해본 결과 검찰에 고발한 사실이 없다. 답해줄 내용이 없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범현대가 정통성 싸움 재연되나 


범(汎)현대가를 둘러싼 논란은 이번만이 아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지난해 12월 그룹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현대증권을 포함한 금융 계열사 3곳의 매각을 발표했다. 주 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최근 현대증권 매각을 위한 본격 실사에 돌입했다. 3월 말쯤 결과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이후 현대그룹이 보유한 현대증권 지분을 매입할 특수목적회사(SPC)를 세운 후 제3자에게 재매각할 예정이다.

매각을 앞둔 현대증권이 최근 범현대가를 뒤흔들 ‘태풍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대증권은 현대건설과 마찬가지로 현대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금융 계열사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직접 회사(옛 국일증권)의 매입을 지시했을 정도로 상징성이 크다. 장남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2008년 신흥증권을 인수해 HMC투자증권으로 이름을 바꿨다. 당시 정 회장은 사명에 ‘현대’나 ‘현대차’를 포함시키려 했지만 ‘현대증권’을 거느린 현대그룹의 반발로 무산됐다. 정 회장이 현대증권 인수전에 나설 가능성은 충분하다. 현대차는 지난해 4월 현대제철이 보유한 현대카드의 지분 전량(5.44%)을 넘겨받은 상태다.

고 정주영 창업주의 5남인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이 대주주인 현대중공업 역시 유력 인수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정 의원은 2006년 현대그룹 핵심 계열사인 현대상선 지분을 매입하면서 세칭 ‘시동생의 난’을 일으켰다. 업계 4위인 현대증권을 인수해 현대중공업 계열인 하이투자증권과 합병할 경우 시장 내 영향력뿐 아니라 정통성도 확보할 수 있다.

관건은 가격이다. 현재 시장에서는 현대증권 매각가를 놓고 평가가 엇갈린다. 현대엘리베이터 유상증자 참여에 따른 동반 부실 우려로 현대증권 주가가 최근 급락했다. 최근 3년간 주가 하락률은 50%, 1년간 주가 하락률은 25%에 달한다. 시장에서는 3000억~4500억원 정도로 평가하고 있다. 반면 현대그룹 측은 장부가(5900여 억원)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해 7000억원가량을 기대하고 있다. 산업은행이 이 격차를 어떻게 해소할지가 주목된다.

협상 과정에서 제3자에게 현대증권이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 산업은행 측도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는 입장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현대차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도 현대증권 매각을 위한 재무적 투자자(FI)에 포함돼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누구라도 (가격만 높게 쳐준다면) 상관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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