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르’ 왕관 쓴 푸틴, ‘소련’ 부활 꿈꾼다
  • 장세호│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 ()
  • 승인 2014.03.1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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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사태 계기, 서방에 맞서는 유라시아연합 창설 속도 낼 듯

‘우크라이나 사태’가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지난 2월 소치 동계올림픽을 개최하고 종합 우승을 차지한 러시아는 지금 ‘미·소 양강 시대’의 영화 재현을 꿈꾸는 듯 한껏 고무된 모습이다. 러시아를 강력한 리더십으로 이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앞에는 ‘차르’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붙고 있다. 차르는 제정 러시아의 황제를 가리킨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지난해 말부터 현재까지 매우 극적인 전개과정을 거듭해왔다. 지난해 11월 야누코비치 정부가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연기했고, 이에 반대해 이른바 ‘유로마이단’이라는 친서방 성향 시민들의 반정부 시위가 시작됐다. 올 1월 여당이 집회 및 시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시위가 격화됐고, 급기야 2월18일과 20일 정부와 시위대 사이의 물리적 충돌로 대규모 유혈 사태가 발생했다. 뒤이어 2월22일 우크라이나 의회는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탄핵하고 3개월여 후인 5월25일 대선을 치르겠다고 발표했다.

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핵심 이해 당사국인 러시아의 전격적인 우크라이나 군사 개입이었다. 이를 통해 우크라이나 사태의 긴장이 국제적 수준으로 확대됐고, 신냉전시대가 다시금 도래하는 게 아닌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이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아나톨리 시도로프 서부군관구 사령관 등을 대동하고 군사 훈련을 지켜보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 ITAR-TASS 연합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선택’ 아닌 ‘필수’

러시아가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의 예정된 반발을 무릅쓰고 군사 개입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러시아에 우크라이나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러시아 입장에서 우크라이나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사활적 이해(vital interests)’ 공간인 것이다. 2000년 푸틴이 등장하면서 러시아는 탈냉전 이후 미국이라는 유일 초강대국 중심의 일극적 국제체제를 빨리 종결시키고, 다극적 국제 질서 또는 다중심적 국제 세력 관계를 창출하고자 노력해왔다. 푸틴 대통령은 1990년대 초의 친서방적 대외 정책의 한계와 오류를 인식하고, 현재까지 독자적 유라시아 지역 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한 노선을 지속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2월 발표된 ‘러시아 연방 대외 정책 개념(Foreign Policy Concept of Russian Federation)’에서 러시아는 서방의 능력과 영향력이 감소함에 따라 다중심적 국제 질서가 창출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전통적 영향력 공간인 구소련 소속 공화국들을 중심으로 하는 근외(近外) 지역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대외 정책의 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탈소(脫蘇) 지역의 안보·정치·경제적 통합을 위한 지렛대로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유라시아경제공동체(EurAsEC)·유라시아연합(EAU)의 강화와 활용을 핵심 과제로 삼았다. 이들 탈소 국가들과의 양자 관계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관계 강화의 중요성을 피력한 바 있다.

실제로 2015년 출범을 목표로 하는 유라시아연합의 성패는 우크라이나의 합류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냉전 종식 이후 유럽과 러시아가 만나는 지정·지경학적 교착지인 우크라이나가 EU와 유라시아연합 중 어디를 선택하느냐의 문제는 CIS(소련의 후신인 독립국가연합) 지역 통합과 국가안보 확보라는 러시아의 전략적 구상의 실현을 결정하는 사활적 문제다.

그동안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서진(西進) 행보를 견제하기 위한 정치·경제적 압박과 회유를 지속해왔다. 과거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스 공급 중단을 비롯해 지난해 8월 우크라이나 초콜릿 수입을 금지한 것이 그 대표적 예다. 지난해 12월 위기에 처한 우크라이나에 러시아가 150억 달러의 차관 제공과 천연가스 수출 가격 30% 인하를 합의해준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푸틴, ‘친서방’ 티모셴코와도 교감 가능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 유지는 국가안보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소련 붕괴 이후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東進)으로 대변되는 서방 세계의 공세적인 ‘대러시아 고립 정책’이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의 서방 편입은 러시아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 요소로 간주됐다. 일찍이 브레진스키는 1997년 펴낸 저서 <거대한 체스판>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정학적 축’으로 묘사했다. 미국은 자신의 단일 패권 유지를 위한 잠재적 위협인 러시아 부활 저지를 위한 열쇠가 우크라이나에 있다고 보고 우크라이나를 포섭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왔다.

푸틴은 2월22일 야누코비치의 실각과 친서방 지향의 과도정부 수립을, 그동안 자신이 공들여온 성과를 일시에 붕괴시키고자 하는 서방의 정치적 공작에 의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러시아 입장에서 상원의 우크라이나 군사 개입 승인, 크림반도 장악,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에서의 군사훈련과 같은 일련의 조치는 자신의 사활적 이해 공간 사수를 위한 무력시위 성격을 띠는 셈이다.

3월3일 EU 외무장관 회의에서 슈타인마이어 독일 외무장관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유럽이 직면한 최대 위기라고 평가한 것처럼, 한때 우크라이나 사태는 악화일로로 치닫는 듯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유럽안보협력기구(OSCE)가 이끄는 진상조사 기구를 설치하자는 독일 정부의 제안과 나토의 특별회담 제의를 수용한 데 이어, 푸틴이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서 시행된 비상 군사훈련 종료와 군 병력의 원대 복귀를 명령하고, 3월4일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크림반도 합병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힘으로써 사태는 진정 국면으로 돌아서고 있다.

친러시아 성향 주민들에 대한 우크라이나 극단주의자들의 테러 발생이나 우크라이나 군과 러시아군 사이의 무력충돌과 같은 우발적 상황이 사태를 극단으로 몰고 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이번 사태를 대하는 푸틴의 입장은 전쟁이라는 초강수보다는, 우크라이나에서의 기존 세력 관계를 유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이란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푸틴의 3월4일 공식 기자회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푸틴의 발언은 크게 두 지점에 무게가 실려 있다. 첫째, 현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를 쿠데타에 의해 불법적으로 권력을 찬탈한 정부로 규정했다. 둘째, 러시아가 크림반도의 병합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언급했다.

먼저 과도정부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을 분석해볼 때, 러시아는 현재 서방에 경도된 지금의 과도정부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야누코비치가 유일한 합법적 대통령이라는 푸틴의 언급은 과도정부의 정통성에 문제를 제기함과 동시에 서방과의 협상을 위한 카드 활용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향후 푸틴의 행보는 야누코비치가 2월21일 사태 수습을 위해 야권과 합의했던 조기 대선 실시, 대통령 권한 축소를 핵심으로 하는 개헌, 거국내각 구성 등을 이행하는 데 맞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서방의 이해에 치우친 현 과도정부 대신 러시아의 이해가 반영될 수 있는 거국내각 구성과 대선 실시가 좀 더 현실성 있는 절충 지점으로 푸틴의 머릿속에서 고려되고 있는 양상이다.

아울러 푸틴은 친러시아 인물의 대통령 또는 총리 선출 문제에 크게 연연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 이유는 이번 사태를 통해 이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정치·경제·군사적 압박·회유 수단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음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친서방 지향 노선에도 불구하고 푸틴과도 어느 정도 교감이 가능한 실용주의자로 평가되는 율리야 티모셴코 전 총리의 차기 대통령 등극 가능성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크림반도 병합 가능성을 부인하는 푸틴의 입장이다. 푸틴은 동부 우크라이나의 분리독립과 러시아로의 병합보다는, 크림반도의 자치권 확대 수준에서 사태를 수습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다만 푸틴은 기자회견 동안 우크라이나의 ‘영토적 통일성’에 대해서는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는데, 이는 향후 사태 추이를 고려한 조심스러운 행보로 판단된다. 다시 말해 3월30일 국민투표를 통해 크림반도가 독립을 결정하거나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들이 유사한 결정을 내릴 경우 러시아가 이를 인정할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에 굳이 군대를 파견할 필요성은 없지만, 그렇다고 군사 개입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는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런 까닭에서다. 그러나 이들 지역의 분리독립에 대한 러시아의 노골적 지원과 자국으로의 병합 추진은 그 과정에서 서방과의 커다란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문제다. 과연 푸틴이 이런 부담을 감수하고 ‘강한 러시아’의 존재를 각인시키기 위한 도박을 벌일지 또 하나의 관심거리다. 따라서 푸틴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과 러시아의 갈등이 유지됐던 야누코비치 실각 이전 국면, 즉 기존 세력 관계 지형의 현상 유지 수준에서 사태를 봉합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이번 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통해, 예정된 유라시아연합 창설 과정에 우크라이나의 참여를 서방으로부터 암묵적으로 추인받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도 커 보인다.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의 친러시아 시위자가 구소련군 탱크 위에서 크림자치공화국 깃발과 러시아 깃발을 흔들고 있다. ⓒ AP연합
노련한 전략가 입지 다시 한 번 과시

푸틴은 이번 사태 직후 예상 밖의 과감한 군사 개입을 통해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에서 러시아에 유리한 국면을 조성했다. 우크라이나 정치 세력과 서방 국가들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사활적 이해 공간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에서 자국이 향유해온 영향력과 지분이 침해될 경우 묵과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푸틴의 이러한 정치·군사적 기동은 우크라이나 사태 전개 과정에서 미국 등 서방 국가들에 러시아를 통제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이 부족하다는 점과 이들 국가가 러시아와 맺고 있는 미묘한 정치·경제적 관계의 복잡성을 면밀히 고려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통해 시리아 문제에서 보여준 노련한 전략가 입지를 국제적으로 다시 한 번 과시했다. 국내적으로는 소치 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함께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굳건히 다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푸틴의 영향력과 파워는 이미 ‘차르’를 능가하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달라진 러시아의 위상이 향후 국제 질서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러시아는 왜 크림반도를 넘겼나 

1954년 소련은 행정구역 재편을 통해 러시아 공화국 소속의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 공화국에 이양했다. 이후 1991년 소련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러시아 내 일부 세력은 자국 영토이던 크림반도를 러시아로 재귀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옐친 정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깊은 종족·역사·문화·정서적 믿음 때문이었다. 당시 러시아는 추후 자국이 탈소(脫蘇) 공간의 재통합을 추진할 경우, 우크라이나가 기꺼이 이 지역 통합의 촉매제로서 그 소임을 충실히 할 것으로 봤다. 당시의 판단이 오늘날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크림반도의 운명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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