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 특별팀 고객정보 150만건 불법 조회했다”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4.03.18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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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은행이 고객정보를 불법으로 조회한 데 대한 금융감독원 제재가 다음 달로 예정된 가운데 신한은행이 서울의 한 호텔에 사무실을 마련해두고 조직적으로 고객 계좌를 불법 조회했다는 의혹이 새롭게 제기됐다. 앞서 2월24일 민주당 정동영 상임고문과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검찰에 신한은행의 야당 정치인 계좌 불법 조회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와 불법 행위 가담자를 처벌해달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했다. 진정서를 접수한 서울중앙지검은 이 사건을 첨단범죄수사1부에 배당해 본격 수사에 나섰다. 이번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러한 의혹들의 실체가 드러날 경우 큰 파장이 예상된다.

“2010년 초 신한은행은 이백순 당시 신한은행장 지시로 은밀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을 제거하기 위한 공작에 나선 것이다. 최근 불거진 불법 조회 사건은 이 전 행장의 특명을 받은 이들이 주체가 돼 2010년 3월부터 조직적으로 이뤄졌다. 신 전 사장과 함께 주변 인물을 파헤쳐 비리 혐의를 잡아내려 한 것이다. 당시 신한은행은 서울 명동에 있는 P호텔에 사무실을 두고 수개월간 이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신한은행 사정에 밝은 한 인사가 최근 기자와 만나 한 말이다.

시사저널은 전·현직 신한은행 관계자를 상대로 한 취재 과정에서 좀 더 구체적인 증언을 확보했다. 익명을 요구한 신한은행 내부 관계자는 “2010년 3월부터 P호텔에서 관련 작업을 진행하다가 은행 내부에 소문이 퍼져 7월쯤에 철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신한은행은 이 프로젝트에 들어간 비용을 법인카드로 처리했다고 하는데 법인카드 내역을 조회하면 사실 여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신한은행 관계자들에 따르면 P호텔과 관련된 의혹은 2010년 중순부터 은행 내부에 파다하게 퍼졌다고 한다. P호텔에서 조회작업이 이뤄진 때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김기식 민주당 의원이 폭로한 야당 정치인 계좌 불법 조회 시점과 일치한다. 당시 김기식 의원은 “신한은행 경영감사부와 검사부 직원들이 2010년 4월부터 9월까지 박병석·박영선·박지원·정동영·정세균 등 민주당 전·현직 의원들과 18대 국회 정무위원회·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의 거래 내역 정보 등을 불법 조회했다”고 밝혔다. 

2010년 4~9월 150만건 고객정보 조회

금융감독원은 국정감사에서 정치인 계좌 불법 조회 의혹이 제기되자 즉각 특별검사에 나섰다. 금감원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지난 2010년 4월부터 9월까지 신한은행의 경영감사부와 검사부가 조회한 고객정보는 150만건에 이른다. 신한은행의 경영감사부와 검사부는 무슨 이유에서 짧은 기간에 수백만 건의 고객정보를 조회했던 것일까. 어떻게 일시에 수많은 정보 조회가 가능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신한은행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경영감사부라는 조직에 주목해야 한다. 이 조직이 생기고 나서 P호텔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경영감사부는 신한은행 내에 원래 없었던 조직으로 2010년 초에 만들어졌다. 불법 조회 의혹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주요 부서로 이름을 올리다가 지난해 정치인 계좌 불법 조회 의혹이 일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해체됐다.

경영감사부라는 조직이 꾸려진 배경이 신한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당시 주요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경영감사부가 핵심이 돼 검사부, 대외협력실 등의 직원들이 모여 신상훈 전 사장에 대한 ‘뒷조사’를 위한 특별팀을 꾸렸고 이들이 정치인 등을 비롯한 신 전 사장 주변 인물에 대한 대대적인 조회에 나섰다는 것이다. 때문에 2010년 4월쯤부터 시작된 정치인의 계좌에 대한 불법 조회 역시 특별팀이 맡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신한은행 측은 이러한 의혹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신한은행 측 관계자는 “P호텔에 사무실을 두고 불법 조회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조회를 하기 위해서는 (은행)전용 회선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을 호텔까지 가지고 갈 수 없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신한은행의 얼굴에 먹칠을 하려는 자들의 음해”라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신한은행 내부에 P호텔 의혹과 관련된 소문이 퍼졌던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조회 활동에 나선 주요 부서로 알려져 있는 경영감사부의 핵심 관계자는 “2009년 10월쯤 신한은행에 ‘신 전 사장이 금강산랜드에 불법 대출을 해줬다’는 내용의 투서가 들어왔다. 이 사안에 대해 2010년 3월쯤 경찰이 내사를 벌였지만 무혐의로 종결됐다. 은행 측에서는 경찰 수사에 미진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해 이를 다시 조사하게 된 것이다. 기업여신관리부 직원과 대출심사역을 데리고 조사를 했는데 2010년 7월쯤 하루 잠시 P호텔에 들렀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에 소문이 나지 않으면서 조용한 장소로 찾은 곳이 P호텔이었는데 그것이 와전돼 퍼진 것이다”고 해명했다.

신한은행 측 “P호텔 간 것은 맞지만…”

당시 기업여신관리부 관계자 또한 “2010년 7월에 부임했기 때문에 이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며 “부임하고 나서 P호텔에는 딱 한 차례 간 적이 있는데 정치인 조회 의혹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검찰이 법인카드를 조회해서 호텔 방문 내역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은행 측은 경영감사부가 주축이 돼 특별팀을 꾸렸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부정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특별팀을 꾸린 적이 없다. 경영감사부가 ‘특별한 의도’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라고 밝혔다. 그는 “2009년 말부터 검사부라는 조직이 커져서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고 내부 감사 차원에서도 역할을 나눠야 할 필요성이 있었기에 경영감사부가 생긴 것일 뿐”이라며 “신한은행보다 앞서 경영감사부를 만든 은행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 신한은행 측 주장대로라면 경영감사부 소속 직원이 불과 하루만 P호텔에 머물렀던 것이 된다. 이러한 사실이 어떻게 은행 내부의 공공연한 소문으로 번진 것일까. 게다가 회사가 아닌 호텔 룸에서 회사 감사 활동을 벌인 것도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다.

은행 측은 전용 회선 문제로 외부에서의 조회 활동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불법 조회는 특정 인물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표적이 된 이들의 조회 기록을 담은 자료를 호텔 쪽으로 옮겨가기만 하면 분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국내 4대 은행 중 하나인 신한은행이 내부 경영 다툼 문제로 거래 고객정보를 무차별적으로 불법 조회했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지난 2010년에도 신한은행 안팎에서 이른바 ‘P호텔 프로젝트’에 대한 의혹 제기가 있었지만 은행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신한은행 측 관계자는 “당시 신한 사태로 은행이 내분을 겪고 있는 중이었다. 은행이 나서서 해명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의혹을 키울 수 있다고 판단해 대응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신한은행이 언론에 P호텔 의혹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불법 조회 의혹이 이는 것 자체만으로 신한의 브랜드가 크게 훼손됐다. 뼈를 깎는 노력과 반성으로 고객 신뢰를 회복하겠다.” 신한금융지주의 한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지금까지는 직원들이 고객정보 조회에 대해 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며 “이번 의혹을 계기로 철저히 내부 점검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2010년 150만건의 고객 정보를 조회한 데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신한 사태의 직접적 피해자라 할 수 있는 신 전 사장이 2심 선고 이후 신한지주 경영진을 상대로 진상조사를 요구한 것도 이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 전 사장은 현재 일본에 머무르고 있다. 그가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신한 사태 당시 자신을 지지해준 일본 재일교포 주주들을 만나 후속 조치의 필요성을 피력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 전 사장은 신한은행이 자신의 최측근과 유력 정치인의 계좌를 무단 조회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3월1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짧게 답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신한은행 계좌 불법 조회 관련 문건. ⓒ 시사저널 임준선
신한은행이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신한은행의 야당 정치인 계좌 불법 조회 의혹이 불거진 이후 곧바로 신상훈 전 사장의 측근으로 파악되는 일반 고객들의 계좌를 무단 열람한 사실이 드러났다. 최근에는 신한은행이 신 전 사장의 측근으로 분류된 이들을 포함해 가족 정보까지 무차별 조회에 나선 정황이 포착돼 충격을 주고 있다.

신한은행은 어떤 방식으로 고객정보 불법 조회에 나선 것일까. 시사저널은 불법 조회 피해자가 은행 측에 요청해 받은 계좌 조회 기록 문서를 입수해 그 수법을 들여다봤다. 신 전 사장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기업인 홍 아무개씨(56)는 지난해 11월21일 신한은행이 2010년 4월부터 2013년 3월까지 자신의 계좌를 무단으로 열람했으므로 이에 대한 진상조사를 해달라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진정서에는 홍씨 외에도 4명의 기업인이 피해 사실을 호소했다.

진정서를 제출하기 한 달 전인 2013년 10월 홍씨는 직접 은행에 찾아가 계좌 조회 여부를 확인해달라는 민원 신청서를 제출했다. 홍씨가 받은 ‘신한은행 고객종합정보 조회 기록’ 문건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2010년 4월부터 2013년 3월까지 홍씨의 계좌를 들여다봤다. 신한은행의 대외협력실·경영감사부·검사부·인사부 등이 조직적으로 조회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동명이인 현황을 조회한 뒤 곧바로 고객정보를 확인해 표적으로 삼은 홍씨를 찾아냈다. 게다가 신한은행은 홍씨가 보유한 카드 내역부터 환전 기록, 거래 내역, 소득 명세 내역, 심지어 직원과 주고받은 메모 내용까지 샅샅이 들여다봤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홍씨는 은행 측에 어떤 연유로 조회했는지에 대한 확인을 요구했으나 구체적인 답변을 듣지 못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신한은행은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의 최측근들을 대상으로 정보를 무단 조회한 데 이어 이들의 친인척에 대해서도 무차별 조회에 나섰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회사 내에서 신상훈 전 사장의 측근으로 분류된 박 아무개씨의 부모·배우자·자녀·동생·장인·장모·처남·처제 등 친인척 11명은 모두 불법 조회 대상이 됐다. 박씨는 지난 2010년 9월 발생한 이른바 ‘신한 사태’ 당시 신 전 사장의 측근으로 분류된 은행 직원이었다. 문건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박씨를 포함한 친인척 11명의 금융 거래 내역을 2010년 9월1일부터 9월30일까지 무단으로 뒤졌다.

박씨의 친인척들은 지난해 3월부터 신한은행 측에 조회 사실 여부와 그 이유를 밝혀달라고 요청했지만 은행 측은 ‘정보 제공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회신을 보냈다. 이에 친인척 가운데 한 사람인 이 아무개씨가 은행에 직접 찾아가 민원 신청서를 작성해 조회 내역을 요청했다. 이씨는 계좌 조회 기록 문서를 받아본 뒤 자신의 계좌가 2010년 9월6일부터 2010년 12월26일까지 무단으로 조회당한 사실을 파악했다. 하지만 은행이 무슨 목적으로 조회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신한은행 측 관계자는 “지난해 금감원에 진정서를 제출한 5명에 대한 계좌 조회와 박씨의 일가족에 대한 조회 모두 상시감사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라고 밝혔다. 은행이 특정인에 대한 상시감사에 나설 때는 문제성 거래가 있었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불법 조회 피해자들은 은행 거래를 하면서 자신들이 어떤 문제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박씨 측은 “은행이 상시감사 차원에서 조회를 했다면 피해자는 이 사실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반박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누가 무슨 근거로 어떤 정보를 열람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해 3월 은행 측에 계좌 조회 및 출력 사실 내역 요청서를 보냈지만 은행은 이를 거부한다는 회신을 보내왔다”고 덧붙였다. 그는 “가족 등 모두가 극심한 불안에 시달렸다. 피해 사실을 뒤늦게 알고 은행의 불법 행위를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고발하려고 했지만 은행 측에서 조회 내역서 발급을 거부해 고발조차 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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