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일꾼인가, 미치광이 사내인가
  • 이은선│매거진 M 기자 ()
  • 승인 2014.03.20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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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반 논란 휩싸인 영화 <노아>…<엑소더스> 등 성서 영화 붐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재연 드라마에 가깝게 만들면 너무 똑같다고 야단, 상상력을 추가하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됐다고 흉을 잡히기 십상이다. 소설이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 후 어김없이 홍역을 치르곤 하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노아>는 꽤 용감한 작품이다. 애초에 논란의 불구덩이에 뛰어들기로 작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인, 구약성경 창세기에 수록된 노아의 방주를 스크린에 재연했기 때문이다. 세상을 휩쓸어버릴 대홍수에 대비해 방주를 지은 남자의 이야기 말이다.

구약 창세기에 기록된 노아의 방주는 단 몇 페이지에 불과하다. 죄악이 만연한 세상. 창조주는 대홍수로 인간 세계를 심판하려 선한 자 노아에게 계시를 내린다. 성경 기록에는 등장인물 간의 대화도, 노아의 감정에 대한 설명도 없다. 무수한 행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그 행간에 촘촘하게 사건과 나름의 해석을 채워넣었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감독이 성경 속 노아의 이야기를 뿌리 삼아 새롭게 살을 붙여 만든 창세기 풍경인 셈이다. 그는 “대홍수는 ‘세계의 첫 번째 종말’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웠다”고 말한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욕망과 불안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간 노아  

그렇다면 <노아>는 종말론적 세계관을 품은 블록버스터일까.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물론 영화에는 커다란 방주에 올라타는 수많은 동물의 모습, 종말 직전의 혼란, 거대한 홍수가 세상을 휩쓸어버리는 모습이 담겨 있다. 대신 그보다 더 잘 보이는 것은 재앙의 풍경 안에 자리한 ‘인간’이다. 창조주의 계시를 받은 노아(러셀 크로우), 방주를 차지하려는 점령군의 수장 두발가인(레이 윈스턴), 아버지 노아와 갈등을 일으키는 둘째 아들 함(로건 레먼) 등 모든 인물은 저마다의 고민과 욕망을 가진 존재로 묘사된다. 결국 이들의 고뇌는 ‘옳은 방향’에 대한 두 가지 입장으로 수렴된다. 죄악에 물들어 타락한 인간은 이대로 멸종되는 편이 옳은가, 아니면 선한 의지를 회복해 스스로를 구원하는 편이 옳은가.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연출 스타일을 감안하면 <노아>가 ‘인간 드라마’로 완성된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다. 아로노프스키는 전작 <더 레슬러>(2008년), <블랙 스완>(2010년) 등을 통해 번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집요하게 그렸다. 그러니 아로노프스키가 노아라는 인물에 마음을 빼앗긴 것은 일견 당연하게 보이기도 한다.

노아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種)의 생존을 책임져야만 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창조주로부터 받은 긴박한 계시를 따르는 것이라지만, 한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벅찬 임무인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벅찬 질문과 답을 스스로 구하기 위해 고뇌하는 인간. 아로노프스키가 그리려 했던 노아의 모습이 바로 이것이다.

블록버스터 주인공으로 귀환하는 성서의 인물

영화 속 설정은 성경과 같은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다. 일라(엠마 왓슨)가 대표적이다. 일라는 성경에 기록된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영화에서는 엄청나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대홍수가 일어나기 직전의 상황이 <노아>의 1막이라면, 2막은 방주 안에서 벌어지는 혼란이다. 무시무시한 홍수를 견디는 동안 방주에 오른 사람들 사이에서는 일라를 둘러싼 첨예한 갈등이 벌어진다.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지난해 7월 기독교 신자를 대상으로 미국에서 열렸던 시사회 반응이 좋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일부 관객은 “러셀 크로우가 연기한 노아는 인구 밀도와 환경 파괴 문제에만 집착하는 비이성적 광신도”라는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이 같은 반응에 놀란 제작사 파라마운트가 아로노프스키 감독이 편집한 것과 다른 버전의 편집본을 만들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다툼은 결국 감독 편집 버전이 상영본으로 최종 결정되면서 마무리됐다.

보는 이에 따라 <노아>는 창조주의 계시를 충직하게 받드는 선한 일꾼의 이야기로 이해되기도, 또 인류를 저버리려 했던 미치광이 사내의 이야기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극 중 노아가 감당하는 고민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노아>에서는 세상의 첫 번째 종말 앞에 선 가련한 인간과, 그럼에도 세상을 구원하려 애쓰는 영웅의 면모를 동시에 발견할 수 있다.

성경에 충실한 영화를 기대했다면 올해 개봉하는 다른 작품을 기다리는 편이 좋겠다. 창세기부터 요한 묵시록까지 다루는 <선 오브 갓>이 오는 4월 개봉한다. 12월에는 크리스천 베일이 모세를 연기하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엑소더스>가 출격을 기다리고 있다. 이외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다룬 <더 리뎀션 오브 카인>, 또 다른 모세 영화 <갓 앤 킹> 등도 제작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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