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디젤차 독주 우리가 막는다
  • 김진령 기자·최주식│오토카 코리아 편집장 ()
  • 승인 2014.03.2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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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 말리부 디젤 출시…현대차도 LF 쏘나타 디젤 검토

수입차의 고속 질주가 무섭다. 지난해 국내 승용차 시장에서 수입차 점유율은 12%대. 올해 1~2월 신규 등록 대수 2만701대로 지난해 동기에 비해 25.3%나 증가했다. 2~3년 안에 점유율 20%까지 올라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수입차 질주의 가장 큰 원동력은 5000만~6000만원대 중형 디젤 승용차다. 전체 수입차 시장에서 디젤 모델이 70%에 이를 정도다. 막강한 디젤 라인업을 갖추고 있는 독일 브랜드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반면 디젤 라인업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일본·미국 브랜드는 고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일본 브랜드인 인피니티가 선보인 Q50 2.2d가 괜찮은 반응을 얻고 있는데 이 또한 디젤차다. 국내 자동차 제조사에는 프리미엄 이미지에 고성능·고연비로 무장한 외국 디젤의 진격에 맞설 만한 대항마가 마땅히 없는 상황이다. 

쉐보레 말리부 디젤. ⓒ 한국GM 제공
디젤 엔진 개발에 적극 나서는 현대·기아차

이에 따라 국내 완성차 업계에서도 디젤 라인업 보강에 적극 나서고 있다. 우선 지난 3월6일 쉐보레 말리부 디젤이 스타트를 끊었다. 쉐보레 말리부는 8세대에 걸친 전통 있는 모델이다. 최근 이 모델이 스타일리시한 인테리어로 거듭났다. 말리부는 GM의 유럽 브랜드인 오펠 인시그니아와 플랫폼을 공유한다. 말리부 디젤은 오펠에서 가져온 디젤 엔진과 아이신제 자동 6단 변속기를 채용했다. 오펠 인시그니아는 독일에서 탄탄한 주행 성능을 인정받고 있는 모델이다.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독일 차의 인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국GM이 말리부 디젤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2000만원 중·후반대로 가격 경쟁력도 갖췄다. 

말리부 디젤이 국내 중형차 중 최초의 디젤 모델은 아니다. 지난 2006년 현대차는 NF 쏘나타 라인업에 2.0ℓ 디젤 모델을 출시했다. 하지만 소음과 진동, 매연 등 디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을 때라 그다지 눈길을 끌지 못했다. 현대차는 YF 쏘나타를 내놓으면서 디젤 라인을 없애고 파생 모델인 i40(나중에 세단형 추가)에 1.7ℓ 디젤 엔진을 얹어서 출시했다. 3월24일 선보이는 풀체인지 모델인 LF 쏘나타에는 2.0ℓ·2.4ℓ 휘발유 모델이 먼저 나온다. 현대차 측에선 디젤 모델도 검토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지만 출시 일정을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현대·기아차도 디젤 붐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지난해 8월과 9월 사이 준중형 모델인 아반떼 MD와 K3에 디젤 라인업을 추가한 것. 아반떼 MD 디젤의 경우 출시된 지 한 달이 지난 9월에 1130대를 판매했다. 9월 판매된 9185대 중 약 12.3%를 차지했다. 이에 힘입어 2013년 국산차 판매량 1위에 아반떼 MD가 올랐다. 출시 후 2014년 2월까지 국내에 등록된 아반떼 MD 디젤은 6200대가량이다. 

디젤이 잘나간다는 게 확인된 만큼 디젤 라인업을 얼마나 확대하느냐가 관건이다. 만약 LF 쏘나타에 디젤 라인업을 추가한다면 기존 1.7ℓ 디젤 엔진을 개량해서 쓸지, 새로운 2.0ℓ 엔진을 쓸지가 관심거리다. 하지만 현대차가 그랜저에도 디젤 엔진을 얹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새로운 2.0ℓ 디젤 엔진 개발 가능성도 열려 있다. 연비와 파워를 고려하면 2.0ℓ 디젤의 필요성은 크다. 스포티지 R에 얹고 있는 2.0ℓ 디젤을 개량해 쓰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문제는 현대차가 경쟁자로 지목하고 있는 독일 메이커들의 디젤 엔진에 비해 기존 1.7ℓ급이나 2.0ℓ급 디젤 엔진의 출력·연비가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고성능과 고연비에 주목하고 있는 요즘 소비자 트렌드로 볼 때 기존 엔진을 그대로 얹을 경우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비싼 휘발유’가 디젤 매력 부각시켜

‘고성능·고연비’가 국내에서 이슈가 된 배경에는 우리 정부의 유가 대책 실패도 한몫했다. 2009년 3월 국내 휘발유 가격은 ℓ당 1526원 수준이었다. 2010년까지 완만한 상승세를 유지하던 휘발유 값은 2010년 10월 1700원에서 6개월 만인 2011년 4월에는 1970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이후 휘발유 값은 도심에서는 2000원 선이 정가가 됐다.

‘비싼 휘발유’는 상대적으로 디젤의 매력을 부각시켰다. ℓ당 평균 300원 정도 더 싸고, 연비는 휘발유보다 ℓ당 3㎞ 정도 더 나오는 디젤차가 경제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여기에 수입 자동차 회사의 디젤 마케팅도 한몫했다. 이들은 디젤이 시끄럽고 매연이 난다는 선입견을 없애는 데 주력했다. 유럽산 디젤 엔진은 저공해, 뛰어난 방음 성능, 고연비를 앞세우며 국내 소비자를 파고들었고 상대적으로 비싼 독일산 중형 디젤 승용차를 ‘경제적 소비 행위’로 여기는 소비자가 늘어났다. 

디젤 대중화 바람은 3000만원대라는 가격을 앞세운 폭스바겐 골프에서 시작됐다. 폭스바겐코리아는 기존 수입차보다 낮은 가격대를 책정해 젊은 층에 어필하며 승용 디젤에 대한 인식 변화를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디젤 세단의 인기를 절정으로 끌어올린 것은 BMW 5시리즈다. 2011년 선보인 BMW 520d는 그해 6211대가 팔려 수입차 2위에 올랐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연이어 최다 판매 기록을 경신하며 1위를 이어가는 중이다. 더불어 BMW 3시리즈 320d를 2012년 출시한 후 4383대를 팔아 수입차 판매 4위에 올려놓았다.

520d는 연비를 강조한 중형 수입 세단이다. 이 차는 6000만원대 초반의 가격에 휘발유 중형 세단보다 뛰어난 연비, 프리미엄 브랜드가 갖는 사회적 인식 등을 내세워 인기몰이를 했다. 배기량으로 자동차세를 매기는 국내 방식 덕분에 큰 배기량 차종에 비해 자동차세가 적은 것 또한 한몫했다.

독일 브랜드 중심의 디젤차 인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일단 쉐보레 말리부 디젤의 등장으로 국내 자동차 회사의 반격이 시작됐다. 현대차도 LF 쏘나타나 그랜저 등으로 디젤 붐에 대응할 게 확실하다. 현대·기아차가 얼마나 이른 시기에 경쟁력 있는 디젤 엔진을 들고나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말리부 디젤 시승해보니…  


국산 중형 세단 시장에서 본격적인 디젤 시대를 연 말리부는 말끔한 외관에 인피니티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 스마트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인 뉴마이링크와 능동형 안전 시스템을 적용해 동급 수입차 디젤 세단과 비교해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156마력인 말리부 디젤 엔진은 2014년 워즈오토 올해의 엔진상(Ward’s 10 Best Engines)을 수상할 정도로 높은 기계적 완성도를 인정받은 GM 글로벌 파워트레인의 대표작이다.

한계령과 동해고속도로에서 시승해본 말리부 디젤은 시속 160㎞까지는 거침없는 가속력과 수준급의 방음 실력을 보였다. 시승 구간에서 다소 과격한 주행에도 연비가 13㎞/ℓ나왔다. 제원표상의 복합 연비와 거의 비슷한 결과가 나온 것이라 신뢰감을 주었다. 국산 승용 디젤 2000cc급에 첫 출전한 말리부 디젤이 판매에서  어떤 ‘출력’을 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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