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연예인들은 중앙정보부 비밀요원이었다"
  • 박동희│스포츠춘추 기자 ()
  • 승인 2014.03.31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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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야구인 백인천의 고백,“남산 중앙정보부에서 특수훈련도 받아”

국정원이 화두다. 연일 언론에선 국정원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국정원을 둘러싼 공방이 한창이다. 그런데 진실 여부를 떠나 요즘 세간의 화제로 떠오른 단어가 있다. ‘화이트 요원’과 ‘블랙 요원’이다.

두 요원은 첩보원이란 점에서는 같다. 하지만 신분이나 활동 영역은 판이하다. 먼저 화이트 요원은 국외에서 공식적으로 신분을 밝히고 첩보 활동을 하는 국정원 요원이다. 이들은 대개 외교관 신분으로 국외에 파견돼 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 근무한다. 그러니까 ‘공개된 스파이’다.

블랙 요원은 반대다. 신분을 숨기고 국외에서 첩보 활동을 진행한다. 일종의 ‘비공개 요원’인 셈이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화이트 요원은 면책특권을 활용해 국가가 신변 보호를 해주지만, 블랙 요원은 타국에서 문제가 생겨도 국가가 책임지지 않는다. 되레 끝까지 요원의 신분을 부정한다.

한국 프로야구 개막과 함께 국내에 복귀한 백인천은 MBC 청룡 감독 겸 선수로 활약했다. © 연합뉴스
많은 이는 ‘첩보원’ 하면 영화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처럼 특별한 이들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이 첩보원인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나 유명인이 국가를 위해 블랙 요원이나 정보원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과거 중앙정보부(국정원의 전신)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스포츠 스타와 연예인을 블랙 요원으로 활용했다. 대표적인 이가 바로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했던 백인천이다.

남산 중앙정보부에서 특수훈련 받은 백인천

백인천. 일본 프로야구와 한국 프로야구에서 활약했던 원로 야구 스타다.

지금이야 야구선수들의 국외 진출이 빈번하지만 1980년대까지 국외 프로 리그에 진출한 한국인(광복 이후 기준)은 백인천이 유일했다.

백인천이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 때는 1962년 2월이었다. 그 전년도에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한국 대표팀 멤버로 출전한 백인천은 출중한 기량으로 일본 야구 관계자의 눈에 띄었다.

그 가운데 일본 프로야구팀 도에이 플라이어스가 백인천 영입에 적극적이었다. 도에이는 당시로선 거액인 300만 엔을 계약금으로 제시하며 구애를 펼쳤다. 그러나 백인천은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다. 병역 미필자여서 국외 취업이 불가능했다.

난항을 겪던 백인천의 일본 진출은 이듬해 2월이 돼서야 실마리가 풀린다. 문교부가 백인천의 국외 진출을 허락하는 조건으로 두 가지 약속을 받아낸 덕분이었다. 하나는 ‘일본식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다른 하나는 ‘2년 뒤 귀국해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었다.

도에이에 입단한 백인천은 1963년 1군 무대에 오른 후 1973년까지 맹활약했다. 1972년엔 타율 3할1푼5리, 19홈런으로 리그 중심 타자로 우뚝 섰다.

하지만 그는 1973년 급격한 컨디션 난조를 겪는다. 전해 3할을 넘던 타율이 2할4푼대로 뚝 떨어졌다. 백인천은 “군 복무 영향이 1973년에야 나타났다”며 “그즈음엔 야구 외에도 생각할 게 너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잘나가던’ 백인천이 군 복무를 위해 귀국한 건 1971년 겨울이었다. 백인천은 모 사단에서 6주 기본 군사훈련을 받았다. 여기까진 특별할 게 없었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기본 군사훈련을 마친 백인천은 지프를 타고 서울 남산으로 향했다. 당시 남산엔 중앙정보부(중정) 청사와 훈련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에서 백인천은 6주간 특수훈련을 받았다. 유명 프로야구 선수가 중정에 간 것도 특이했지만 비밀요원이나 받는 특수훈련을 받았다는 건 더 생경한 장면이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백인천은 특수훈련이 끝나자마자 모 군사통신학교에 가서 6주간 교육을 받았다. 중정에 입사해 국정원 간부로 퇴사한 P씨는 “당시 국외 파견 정보요원들은 남산에서 체력·공수·해양 훈련 등 특수훈련을 받은 뒤 군사학교에서 통신 교육을 받는 게 기본 코스였다”며 “일반인이나 다름없던 백인천씨가 두 교육을 모두 이수한 건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했다. 총 18주 동안 군사 교육을 받은 백인천은 그해(1971년) 5월에야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원로 야구인 백인천씨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 박동희 제공
“안기부, 80년대도 연예인을 정보원으로 활용”

18주 동안 군사 교육을 받고 일본으로 돌아갔으면 제대를 떠올리기 쉽다. 요즘 병역 혜택을 받는 선수들은 4주간의 기초 군사 교육으로 병역 의무를 대신한다. 그러나 백인천은 아니었다. 그는 일본에서 프로야구 선수로 활동하며 남은 군 복무 기간을 채웠다.

백인천은 “난 소속이 두 개였다”며 “공개적으론 도에이 플라이어스 소속의 프로야구 선수, 비공개적으론 대사관 소속이었다”고 말했다. 사실이었다. 그의 근무지는 주일 한국 대사관, 직책은 무관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백인천은 주일 대사관 소속의 중정 화이트 요원이자, 프로야구 선수로 신분을 위장한 채 활동하는 블랙 요원이었다.

백인천은 “지금이야 털어놔도 괜찮겠지” 하고 말문을 열고서 자신이 “중정의 특수요원이었다”고 고백했다. 물론 어떤 활동을 펼쳤는지와 관련해선 “다 지난 이야기”라는 말로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 다만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뛰어다녔다”며 “그 때문에 일본 정보부와 언론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 역시 사실이다. 1972년 일본 국회에선 한바탕 ‘백인천 스파이’ 소동이 벌어졌다. 한 일본 중의원이 국회에서 “일본 내에서 활동하는 중정 비밀요원들이 상당하다”며 대표적인 이로 백인천을 지목한 것이다. 일본 언론은 연일 백인천의 ‘중정 비밀요원설’을 기사화했다. 우익 단체에선 “중정의 스파이 백인천은 당장 일본을 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주일 대사관은 “백인천은 병역 특혜에 민감한 한국민의 정서를 고려해 대사관 무관으로 근무하는 것처럼 꾸몄을 뿐 실제 근무한 적이 없다”며 “중정과도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게 통했는지 일본 언론과 국회에서 더는 ‘백인천 스파이설’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연 백인천은 중정 비밀요원으로 어떤 활동을 했을까. 1980년대 중정에서 고위급 요원을 지낸 P씨는 “백씨가 유명 프로야구 선수라는 명망성과 신뢰성을 활용해 일본 유력인과 접촉하고 그들로부터 얻은 고급 정보를 중정으로 보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덧붙여 주일 대사관이 “백인천이 우리 대사관에 근무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중정 비밀요원이겠느냐”고 항변한 것에 대해선 “6주간의 통신 군사 교육을 받은 백씨라면 굳이 대사관을 찾지 않아도 집에서 능히 한국에 정보를 보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인천은 “나뿐만 아니라 중정 비밀요원이 일본에 무척 많았다”며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 연예인이 중정의 비밀요원으로 활동했다”고 귀띔했다.

“미모의 여가수는 안기부가 가장 신뢰한 정보원”

P씨는 “백씨의 말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1970년대 일본에서 활동하던 연예인 가운데 몇몇은 중정 요구로 정보원 노릇을 했다. 그들은 조총련과 반정부 인사들의 움직임을 파악해 주기적으로 중정에 보고했는데, 특히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 때 모 연예인의 정보가 유용하게 쓰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안기부로 이름이 바뀐 1980년대에도 연예인은 유용한 정보원으로 활용됐다. P씨는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미모의 여가수는 안기부가 가장 신뢰하는 정보원이었다. 조총련계 인사와 가까워 대북 정보를 빼내기가 좋았고, 그의 후원자로 일본 정·재계 인사들이 포진해 있어 고급 정보를 자주 들을 수 있었다. 귀찮을 법도 한데 한 번도 안기부 요구에 얼굴을 찌푸리지 않고 적극 협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회상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 이 같은 정보원은 계속 존재했다. P씨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좋아한다고 소문난 가수가 있었다. 그 가수가 방북한다는 소식을 듣고 ‘김 위원장을 만난 뒤 우리에게 정보를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그즈음 내가 회사(국정원)를 나오는 바람에 성사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며 “그저 후배에게서 ‘일이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라는 말만 들었다”고 밝혔다.

2000년대 중반부터 국외 체류 유명인의 정보원 활용은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P씨는 “과거엔 애국심과 정보부에 대한 두려움으로 요청에 응하는 이가 많았으나, 한국과 북한 관계가 호전되고 정보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줄어들면서 요청을 하는 이도, 요청을 수락하는 쪽도 사라진 것으로 안다”며 “언젠가 시간이 흐르면 나라를 위해 헌신한 유명인 블랙 요원들에게 감사를 표시할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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