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와 민주당 ‘큰 싸움’ 터진다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4.04.0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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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기초선거 무공천 논란 구민주당 내부에서 거센 반발

“누가 전략을 짜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완전히 잘못됐다. 기초선거 무공천은 민주당이나 안철수 의원뿐만 아니라 새누리당도 대선 공약으로 내건 사안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무공천 약속을 지키려고 했다면, 먼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향해 압박을 강하게 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데 대한 책임을 묻는 걸 우선해야 했다. 그런데 새누리당과 싸움을 하기보다는 당내 분란만 일으킨 꼴이 돼버렸다. 새 정치의 칼끝이 새누리당이 아니라 자신들을 겨누는 꼴이 돼버렸다.”

과거 열린우리당과 국민참여당 창당 과정에서 선거 전략을 주도했던 ‘친노(親노무현)’ 진영의 한 핵심 인사가 새정치민주연합의 기초선거 무공천 논란을 두고 한 분석이다. 이 인사는 “이제는 돌이키기엔 타이밍이 늦었다”며 “이대로 가면 새정치민주연합의 지방선거는 필패”라는 전망도 곁들였다.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 체제의 신당이 무공천 원칙을 번복하기도, 새누리당을 압박하기도 어정쩡하게 돼버렸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안철수 진영의 새정치연합과 통합을 밀어붙인 데는 ‘야권 단일화’라는 노림수가 작용했다. 민주당은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수도권 기초단체인 시장·군수·구청장 선거에서 66곳 중 46곳을 석권했다. 무상급식 공약을 매개로 야권 연대의 단일화 효과를 통해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을 압도하며 수도권에서 70%에 달하는 기초단체장 자리를 휩쓸었다. 

통합 신당 발표 이전인 2월20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촉구 정치권·시민사회 공동기자회견에서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새정치연합 중앙운영위원장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의원들, 무공천 좌시하지 않을 것”

새정치민주연합이 창당하면서, 지난 지방선거처럼 여야 일대일 대결 구도라는 밑그림이 다시 완성되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안철수 진영과 민주당 간 통합의 지렛대 구실을 한 기초선거 무공천이 화근이 됐다.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 기초선거 무공천 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당내 일각에서는 “이대로 가다가는 새누리당에 모두 빼앗기고 우리 후보는 괴멸할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창당한 지 채 일주일도 안 된 당 지도부를 향해 반기를 드는 모양새다. 친노 진영을 대표하는 문재인 의원도 “상대방인 새누리당에서 게임의 룰을 바꾸려는 의사가 없는 상태에서 민주당만 무공천을 할 경우 일방적인 선거 결과가 우려된다”고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바 있다. 무공천에 대해서는 ‘비노(非노무현)’ 진영에서도 비판적인 견해가 나오고 있어 자칫 이 문제는 당내 계파 갈등을 더욱 부채질하는 악재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이미 일부 기초선거에서 구민주당 측과 안철수 진영 간 본선 경쟁이 벌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등 3월26일 통합 신당 창당의 축포 소리가 채 멎기도 전에 내부에서 ‘화학적 결합’은 고사하고, 충돌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충청 지역에서 10여 년간 조직 관리를 해온 구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신당이 창당되면 으레 들떠야 하는데 요즘 당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맘이 편치 않다”며 “다들 기초선거에 튀어나가려고만 하고 정작 선거를 지원해줄 사람은 없다. 기초선거 무공천이 당의 지역 조직을 일순간에 무너뜨렸다”고 토로했다. 당의 밑바닥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통합의 명분으로 기초선거 무공천을 내걸었던 당 지도부는 원론적인 말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안철수 공동대표는 3월26일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자신들의 실리를 위해 국민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낡은 정치 세력과의 비교를 거부한다”고 말했다. 2012년 대선 당시 기초선거 무공천을 공약으로 내건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뿐만 아니라 당내 반발 움직임에도 쐐기를 박으려는 발언으로 읽힌다.

당 지도부의 진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내 기초선거 무공천 철회 요구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민주당 출신의 서울 지역 현역 기초단체장과 예비후보들을 중심으로 반발의 강도가 거세지고 있다. 기호 2번을 버리고 무소속으로 출마할 경우 후보 난립에 따른 표 분산이라는 ‘무공천 직격탄’을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친노 성향으로 서울 지역 기초단체장 선거에 나선 한 예비후보는 “통합 명분은 야권의 분열을 막겠다는 것이다. 광역선거야 이 명분이 먹혀들겠지만 기초선거는 상황이 반대”라며 “야권 분열을 막는다던 통합이 후보의 분열을 초래한 셈이 됐다. 누구 머릿속에서 나온 아이디어인지 모르지만 대책 없는 이야기를 당 지도부가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의 원칙론 고수에도 불구하고 결국 철회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구 민주당의 비주류 계보 지역 기초단체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한 예비후보는 “기초선거 무공천은 철회될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들로서도 자신의 지역구가 기초선거에서 깨지면 다음 선거를 기약할 수 없다. 중앙당에서 기초선거 무공천과 관련한 의견을 당원들에게 다시 들어볼 수 있도록 조치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철수 진영, ‘새정치실천연대’로 세력화

외부의 비판도 거세다. 통합 신당의 정치 혁신안을 만들고 있는 정치비전위원회가 마련한 토론회에서조차 ‘기초선거 정당 공천 폐지’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쏟아진 것이다. 3월25일 열린 토론회에서는 새누리당이 기초선거 공천 폐지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무공천을 전면 백지화해야 한다는 강경한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기초선거 무공천은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가뜩이나 화학적 결합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안철수 진영 후보와 민주당 출신 후보들이 갈등 양상을 빚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월14일 국회 정론관에서는 서울 지역 기초단체장 선거에 출마하려는 안철수 진영의 예비후보 7명이 무더기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자신들의 소속을 가칭 ‘새정치실천연대’라고 소개했고 연대의 심벌까지 들고나올 정도로 조직적이었다.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이들은 “(창당될) 새정치민주연합의 기초선거 무공천 약속이 형식적 수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 정치의 가치를 실천할 수 있는 실질적인 약속 이행이 될 수 있도록 6·4 지방선거에서 기초단체장 후보로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기초선거 무공천으로 격앙된 민주당 출신 예비후보를 자극할 수밖에 없는 집단행동이다. 이날 기자회견을 연 이들은 정책네트워크 내일 실행위원과 새정치연합 청년위원 출신 등으로 안철수 의원의 신당 창당 과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해온 인물들이다. 참석자 7명 중 5명은 구민주당 소속 현역 구청장이 출마할 지역에 출사표를 던진 상태다.

일부 민주당 출신 예비후보들은 새정치실천연대가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이른바 ‘안심(安心)’을 등에 업고 ‘세 과시’를 하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민주당 출신 예비후보들 사이에서도 새정치실천연대에 맞설 별도의 연대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출신의 한 기초단체장 예비후보는 “안철수 진영 쪽에서 새정치실천연대로 연대 전선을 형성하는데 우리로서도 가만히 손 놓고 지켜볼 수만은 없지 않느냐”며 “새정치실천연대에 상응할 수 있는 연대 전선을 형성하기 위한 대책을 후보들 간에 숙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3월14일 가칭 ‘새정치실천연대’ 소속 서울 지역 구청장 후보들이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중앙당이 적합 후보 ‘내천’해야”

기초선거 무공천 파문이 예상 외로 확산되면서, 새정치민주연합 일각에서는 고육책도 나오고 있다. 기초선거 무공천 영향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미칠 수도권 등은 예외 지역으로 하자는 안도 당내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면적인 기초선거 무공천을 당 지도부가 기정사실화한 마당에 이해득실에 따라 선별적으로 무공천을 적용하는 것은 역풍을 맞을 수 있어 안철수 진영 측을 중심으로 부정적인 의견을 제기하고 있다.

새누리당을 압박해 기호순위제 폐지를 추진해야 한다는 대안도 나와 눈길을 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상곤 경기도지사 예비후보는 3월2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풀뿌리 민주주의로서 지방자치의 정상화를 위해 이번 지방선거부터 정당 후보자 기호순위제를 폐지할 것을 제안한다. 정당·후보자 기호순위제는 기초선거 공천 폐지와 관계없이 반드시 청산해야 할 구정치의 유물”이라고 말했다. 기초선거 무공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새누리당을 압박하는 한편, 무공천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양동 전략인 셈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새누리당이 무대응으로 일관할 수 있고, 법 통과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

안철수 공동대표 등 당 지도부는 원칙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당 일각에서는 “현실적으로 당이 적합 후보를 ‘내천(內薦)’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기초선거 공천 폐지와 상관없이 출마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민주당 출신의 한 기초단체장 예비후보는 “현역 구청장이 됐든 새로운 인물이 됐든 중앙당 차원에서는 후보를 정리해야 할 것이다. 일종의 내천을 하는 선에서 교통정리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 아니냐”고 반문했다. 중앙당에서 기초단체장 후보로서 경쟁력과 도덕성을 갖춘 인물을 선별해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와 함께 찍은 사진을 선거운동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거나 선거 지원 유세를 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내천도 사실상 공천이나 다름없어 당 지도부로선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다. 기초선거 무공천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 공격을 받는 새누리당에 새정치민주연합의 내천은 반격의 빌미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당으로서는 뒤로 물러설 수도, 앞으로 나갈 수도 없는 궁색한 처지가 된 셈이다. ‘기초선거 무공천 약속 이행’이라는 원칙론과 ‘기초선거 괴멸’이라는 현실론 사이에서 안철수 공동대표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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