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그룹, 직원들에게 자사주 매입 강요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ss.com)
  • 승인 2014.04.09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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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20% 동부건설·동부제철 유상증자 참여 지침…회사 측 “자발적 참여 독려한 것”

유동성 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동부그룹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핵심 계열사의 700억원대 유상증자를 추진하면서 임직원들에게 주식 매입을 강요한 것으로 시사저널 취재에서 단독 확인됐다. 유상증자를 추진하고 있는 계열사는 동부건설과 동부제철로 유상증자 발표 후 연일 주가가 하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동부건설 지분 33.92%와 동부제철 지분 4.80%를 보유하고 있는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이번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동부그룹은 지난해 11월 고강도 구조조정안을 내놓으며 “김 회장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 일부를 팔아 1000억원가량의 재원을 확보한 뒤 동부제철 유상증자에 투자할 계획이다”며 김 회장의 사재 출연을 공언한 바 있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 연합뉴스
김 회장의 사재 출연 약속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는 가운데, 김 회장의 지난해 연봉 및 배당금은 72억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의 장남인 김남호 동부제철 부장도 94억원이 넘는 돈을 받았다.

동부그룹은 계열사가 64개에 이르는 중견 재벌이다. 2000년에는 10대 그룹에 포함되기도 했다. 4월1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14년 상호출자 제한 기업집단’ 관련 자료에 따르면, 동부그룹은 자산 총액 기준으로 현재 재계 순위 18위(17조8000억원)다. 그러나 재무구조 악화로 인해 핵심 계열사들을 매각하는 등 3조원가량의 자구계획안을 제시해 놓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동부그룹은 핵심 계열사인 동부건설과 동부제철의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지난 3월28일 동부건설은 보통주 1500만주(주당 발행가액 2675원)에 대해 401억2500만원 규모의 일반 공모 유상증자를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주 상장 예정일은 5월7일이다. 동부제철 역시 같은 날 303억원 규모의 일반 공모 방식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했다. 신주 발행 수는 1000만주(주당 발행가액 3030원)이며, 유상증자 예정일은 5월2일이다.

동부그룹 직원들이 작성한 유상증자 청약의향서. ⓒ 시사저널 입수자료
구체적 지분 참여 액수와 시기 하달

유상증자를 발표한 후 주가가 연일 하락하는 가운데 동부그룹은 임직원들에게 증자 참여를 강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룹 측에서 계열사로 내려온 지침 내용은 매우 상세하다. 지분 참여의 구체적인 액수와 시기까지 정해놓았다. 복수의 동부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동부그룹 측은 임직원들에게 기본급과 성과급을 포함한 연봉 실수령액의 20%를 ‘의무적’으로 투자하도록 강요했다. 동부화재의 경우 사원급은 720만원, 주임급은 900만원, 대리급은 1100만원, 과장급은 1200만원이다.

동부건설과 동부제철에 투자하는 비중도 하달됐다. 동부건설에 53%, 동부제철에 47%를 투자하라는 것이다. 이는 두 기업 중 상대적으로 우량한 기업에 자금이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상반기에는 63%를 투자하고 나머지 37%는 하반기에 투자하라는 구체적인 지침도 내려왔다. 동부화재의 경우 상반기에는 4월14일 일괄 투자하는 것으로 정해졌는데, 이날 기준 전 3거래일 평균 가격의 90% 가격에 임직원들에게 판매한다고 돼 있다. 지분에 참여할 자금이 없을 경우 “○○은행을 통해 0.38%의 이자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와 관련한 거래는 동부그룹 계열사인 동부증권을 통해 이뤄지도록 했다.

시사저널이 확인한 결과, 동부건설과 동부제철은 물론이고 동부엔지니어링, 동부화재 등도 증자 참여를 강요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복수의 동부그룹 관계자들은 “그룹 차원에서 지침이 내려와 계열사들에서 일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주식 매입 강요는 치밀한 계획 아래 진행됐다. 한 예를 살펴보자. 4월1일 저녁 7시쯤 동부화재 한 부서의 부장은 부서원들을 모은 자리에서 주식 매입에 대한 브리핑을 실시했다. 이 자리에서 직원들에게 주식 매입에 대한 설명과 할당량, 날짜와 대출 일시 등이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입단속을 위해 문서 형식이 아닌, 구두 전달과 메신저로 지침을 내려보냈다고 한다.

설명이 끝난 후에는 직원들에게 ‘청약의향서’를 작성토록 했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한 청약의향서에는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총 금액과 동부제철·동부건설에 각각 참여할 금액을 구체적으로 적으라는 내용이 쓰여 있다. 유상증자 청약 자금 조달 방법으로는 ‘개인적인 방법’과 ‘은행 대출을 통한 청약 자금 조달’을 선택하도록 했으며 동부증권 계좌를 적도록 했다. 동부화재의 경우 직원들에게 청약의향서를 4월2일과 3일 양일간 작성토록 해 취합한 후 4월4일 상부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해진 스케줄 아래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이다.

동부그룹 내 일부 직원은 청약의향서를 사실상 강요로 받아들이고 있다. 동부 계열사의 한 직원은 “의향서라고 돼 있지만 유상증자에 전원 참여하도록 강요하는 분위기”라며 “인사고과에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도 돌고 있어 울며 겨자 먹기로 유상증자에 참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청약의향서’와 내부망 문건 단독 입수

동부그룹 측은 이에 대해 강요는 없었으며 자발적인 참여를 독려하는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일반 공모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유상증자가) 성공하려면 임직원이 많이 참여해야 한다. 따라서 그룹 차원에서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연봉의 20%를 (유상증자에) 투자하라는 얘기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준 것일 뿐이다. 내가 알고 있는 직원들은 더 많이 투자하지 못해 안달이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사저널이 입수한 또 하나의 내부 문건 내용은 동부그룹 측의 설명과 다르다. 사실상 증자 참여를 강요하고 있는 대목이 확인된다. 다음은 동부그룹 계열사 중 한 곳의 내부망에 3월31일 올라온 회사 지침이다. 

 

동부제철 및 동부건설 유상증자 참여는 각 직급별로 연봉의 20%를 유상증자에 참여해야 합니다. 혹시라도 직원들 PI(생산 장려금) 사용 계획 있으면 보류토록 해주시고 이번에는 유상증자 참여해야 하니 참조 바랍니다. 상세 취지 및 운영 방향에 대하여는 (4월)2일 석회 시간에 전 직원 있는 데서 공지 설명토록 하겠으며 2일 전 직원 설명회 후 3일 팀장들 주관 직원 재면담 교육 후 유상증자 참여 신청서 징구하여 목요일(3일) 취합 후 금요일(4일) 제출해야 하니 참조 바랍니다.

 

증자 참여가 결코 손해가 아니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성격은 개별 유상증자 참여 형태이므로 언제라도 사고팔 수는 있지만 제철이든 건설이든 최저점 상태이고 회장님이 반드시 가지고 가고자 하는 업종이므로 장기간 보유할수록 수익률은 좋을 거로 판단됩니다. 증자 가격도 시장가 대비 10% 저렴한 가격으로 한다 하니 직원들이 불이익을 보는 일은 없을 겁니다.

강남구 테헤란로에 있는 동부그룹 사옥. ⓒ 시사저널 최준필
회사 측 “강요 아니며 자발적인 형식”

이에 대해 동부그룹 측에서는 “각 계열사에서 어떤 식으로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부망 내용은) 조금 오버한 것 같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절대 강요는 아니며 증자 참여 금액도 그리 큰 액수는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유상증자 참여를 강요받고 있는 내부 직원들의 불만은 고조되고 있다. 30대 초반의 동부화재 직원 ㄱ씨는 “사내 커플들의 경우 대리급만 돼도 유상증자 참여 금액이 2000만원을 훌쩍 넘어가, 차 한 대 값에 이를 정도”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동부 계열사의 30대 중반 직원 ㄴ씨는 “이번 유상증자 참여 강요는 인턴을 제외한 신입사원까지 전해진 것으로 알고 있다. 금액은 일반 사원급보다 적긴 하지만 신입사원에게까지 출혈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에 가까운 것”이라고 비판했다.

직원들의 불만이 큰 이유 중에는 유상증자를 하는 동부제철과 동부건설이 수익을 낼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불안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상증자를 한 후 떨어진 주가를 회복할 만한 동력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동부건설과 동부제철의 신용등급은 신용부적격 등급보다 한 단계 위인 BBB-다. 또한 동부건설의 경우 지난 2012년 8월 54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는데, 전체 신주 발행 물량의 80%를 차지하는 주주배정 청약률은 14%, 실권주 일반공모 경쟁률도 0.6대 1에 그쳤다. 이 때문에 700억원 조달 목표는 540억원으로 줄 수밖에 없었다. 반면 동부건설 우리사주 할당량(20%)은 꽉꽉 채워졌다. 이상하게도 일반 투자자들이 외면한 주식을 동부건설 직원들만 높게 평가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발행가 5000원이었던 주식은 현재 2000원대 후반 수준까지 하락했다. 한 직원은 “김준기 회장이 동부제철과 동부건설을 꼭 가지고 가려 한다는 이유로 직원들의 피를 빨아 산소호흡기를 대는 것이 아닌가 모르겠다. 두 회사의 경영 악화 원인이 직원들에게 있는 것도 아닐 텐데, 경영진은 뒷짐 지고 직원들만 사지로 내몰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동부그룹 측은 “동부건설과 동부제철은 동부그룹의 핵심 계열사다. 반드시 일어설 것이고, 그때가 되면 투자자들도 큰 이익을 볼 것이다. 김 회장의 1000억원 사재 출연은 이번 유상증자와는 별도로 진행될 것이다. 일반 투자자들은 사지 못해 안달인데 직원들이 불만을 가지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경실련 관계자는 “증자 참여가 강요에 의해 이뤄졌다면 법적으로도 문제 소지가 있다. 더구나 이번 경우는 회사에 대한 책임을 직원들에게 떠넘기고 경영진은 빠져나가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만약 동부건설·동부제철이 최악의 상황(부도)에 빠진다면 직원들이 투자한 돈은 누가 책임지는가. 김준기 회장의 1000억원 사재 출연 약속이 경영권을 방어하는 데 쓰이지는 않는지 감시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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