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4~1616 셰익스피어의 귀환
  • 이은경│연극평론가 ()
  • 승인 2014.04.09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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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450주년 맞아 <햄릿> <맥베스> 등 잇따라 무대에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년) 탄생 450주년인 올해는 문화계 전반에 셰익스피어 열풍이 거셀 듯하다. 바즈 루어만 감독의 1996년작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이 18년 만에 재개봉된 것도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체호프와 더불어 셰익스피어를 열렬히 경외하며 추종하는 연극계에서는 이미 셰익스피어 바람몰이가 시작됐다.

한국 연극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모두 셰익스피어 작품에 손을 대고 있다. 이들은 원작에 충실한 무대와 ‘21세기, 한국’이라는 관점에서 재해석한 무대 등 다양한 작품을 올리고 있다.

국립극단은 셰익스피어의 원형·본질에 대한 탐구를 표방한 ‘셰익스피어 450년 만의 3색 만남’이라는 기획을 선보였다. 첫 작품은 <맥베스>였다. 4대 비극 중 가장 극적이면서도 현실적이고, 시적이면서도 강렬한 언어 구사가 돋보이는 원작의 골격을 유지하면서 시각적 이미지를 강화해 인간 욕망의 허망함을 표현했다.

ⓒ 국립극단 제공
원작의 근간 유지하며 새로운 해석

두 번째 작품 <노래하는 샤일록>(4월5~20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은 <베니스의 상인>을 각색한 작품이다. 재일교포 연출가 정의신은 원작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세밀한 인물 구축과 맛깔나는 대사, 재치 있는 상황 설정으로 희극성을 강화했다. 희망의 메시지와 치유의 힘을 전할 이 작품은 정의신 작품 전반에 담겨 있는 ‘남루한 삶 속의 희망’이란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듯하다. 제목에서도 예상되듯이 음악적 요소도 중요하게 활용된다.

세 번째 작품은 <템페스트>(5월9~25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다. 후기 걸작으로 불리는 <템페스트>는 노작가의 심도 깊은 통찰력이 담겨 있고 극작의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이다. 지적이며 섬세한 연출력을 보여주는 김동현이 원작에 대한 집요한 탐구와 치밀한 상상력으로 순환적 세계관을 담아낼 예정이다. 특히 관록의 배우 오영수와 개성파 배우 오달수의 출연이 어떠한 앙상블을 보여줄지 궁금해진다.

명동예술극장은 <줄리어스 시저>(5월21일~6월15일 명동예술극장)를 준비하고 있다. “브루터스 너마저!”라는 유명한 대사로 기억되는 정치극으로 로마의 정치인 시저의 삶과 죽음을 그린 작품이다. 남자들의 의리와 배신이 폭풍처럼 몰아치는 강렬한 무대를 텍스트 분석과 장면 연출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는 김광보가 연출해 선보일 예정이다.

게릴라극장은 해외극 페스티벌 ‘셰익스피어의 자식들’을 기획했다. 셰익스피어를 동시대 감각으로 새롭게 해석한 작품들이 무대에 오른다. 첫 번째 작품은 독일 작가 모리츠 링케(Moritz Rinke)의 <로미오와 줄리엣 발코니 장면을 연습하다>(4월4~27일 게릴라극장)를 이채경이 연출을 맡아 무대화했다. 세상의 종말을 앞둔 마지막 나흘 동안 <로미오와 줄리엣>의 발코니 장면을 완성해가는 세 남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아직 공연 일정이 공지되지 않았지만 오세혁 작·연출의 <늙은 소년들의 왕국>, 백하룡 작·연출의 <길 잃어 헤매던 어느 저녁에>, 일본 극단 신체의풍경의 <맥베스>, 극단 골목길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이어질 예정이다. <로미오와 줄리엣> <리어왕> <맥베스>를 재창작한 작품들로 젊은 연극인들이 셰익스피어를 어떻게 수용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획이다.

극단 목화는 <템페스트>(3월27일~4월13일)를 재공연하고 있다. 원작에 <삼국유사>의 ‘가락국기’를 더하고 문학적 대사에 우리말의 3·4조, 4·4조의 운율을 덧입혀 한국적 정서가 담긴 작품으로 재창작했다. 방대한 이야기를 갖고 있는 원작에 오태석 연출 특유의 생략과 비약, 의외성과 즉흥성이 더해지고 전통 연희인 백중놀이·씻김굿 등이 어우러졌다.

국악뮤지컬집단 타루의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3월7일~4월13일 국립극장 별오름극장)는 햄릿의 자아를 4명으로 설정해 내적 갈등을 극대화한 국악 뮤지컬이다. 심리 상태와 내면세계를 다층적으로 형상화해 햄릿을 입체적인 인물로 표현했다. 햄릿의 현실성은 살리면서 고전의 무게는 덜어내 햄릿이 결코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주)아리인터웍스의 뮤지컬 <오필리어>(5월16~23일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는 오필리어의 관점에서 <햄릿>을 재해석할 예정이다. 청순가련하고 순종적인 여성의 상징인 오필리어를 사랑에 적극적인 여성, 아버지를 위한 ‘복수’와 ‘진정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가혹한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헤쳐 나가는 현대적 여성으로 그린다.

ⓒ 극단물결 제공
2016년까지 공연 뜨겁게 이어질 듯

‘모든 시대에 속한 작가’로 평가될 만큼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여전히 동시대적 의미를 담보하고 있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보편적인 공감을 얻고 있는 그의 작품이 현재로 소환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1990년대 이후 등장한 포스트드라마에 대한 반동이다. 환상주의에 기댄 사실주의적 연극 문법을 철저하게 거부하는 포스트드라마는 드라마(희곡)에 종속됐던 연극에서 벗어나 드라마의 해체를 지향한다. 서사의 약화, 시각적 장면 연출의 강조를 통해 작가의 시대에서 연출가의 시대로 연극의 중심축을 이동시켰다. 눈은 호강하지만 가슴은 자극하지 못하는 포스트드라마에 식상한 관객은 매력적인 캐릭터, 강력한 이야기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셰익스피어는 이에 대한 연극계의 화답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연극인에게 강렬한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킨다. 연극의 교과서라고 일컬어질 만큼 그의 작품은 갈등을 풀어내는 스토리텔링과 캐릭터의 묘사가 완벽하다. 다양한 해석과 재창작이 아직 가능할 만큼 풍부한 서브텍스트로 다층의 의미망을 확보하고 있다. 그렇기에 전 세계에서 매일 그의 작품이 다양하게 변주되면서 공연되는 것이다. 

물론 ‘탄생 450주년’이란 전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마케팅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침체된 연극계에 활기를 불러일으키는 데 이만한 호재도 드물다. 그렇기에 셰익스피어에 대한 열기는 탄생 450주년에 불붙어 서거 400주년이 되는 2016년까지 뜨겁게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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