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김신욱, ‘킬러 본능’을 깨워라
  • 서호정│축구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4.16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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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이커 득점포 터져야 16강…손흥민·이근호는 멀티플레이어로

2002년 한·일월드컵을 전후해 익숙해진 표현 중 하나가 ‘킬러 본능’이다. 골 결정력이 부족한 한국 축구에 상대를 확실히 잡을 수 있는 마무리를 지어줄 선수가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이 킬러를 강조한 것이다. 본선에서 한국은 황선홍·안정환·설기현·박지성 등 공격진이 킬러 역할을 수행하면서 4강 진출을 이끌었다. 브라질월드컵을 준비하는 홍명보 감독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도 승리에 방점을 찍을 킬러의 확보다.

아시아 축구는 21세기 들어 장족의 발전을 보였다. 유럽 무대에서 주역으로 활약하는 아시아 선수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의 성공 사례는 미드필더 포지션이다. 박지성과 나카타 히데토시로 대표되는, 유럽에서 성공한 아시아 출신 미드필더는 기술과 근면성, 전술 이해도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성공한 스트라이커는 찾아보기 힘들다. 역대로 차범근을 제외하면 유럽 최고 무대에서 인정받으며 다년간 주전으로 활약한 사례가 없다. 운동 능력, 기술, 축구 지능 등 가장 빛나는 재능이 필요한 포지션에선 여전히 세계의 벽이 높다는 얘기다. 메이저리그에서 15승 투수는 다수지만 30홈런 이상을 친 파워히터는 마쓰이 히데키 단 한 명인 것과 비슷한 경우다.

박주영 ⓒ 연합뉴스
월드컵에서도 이 같은 모습은 여실히 드러난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도 한국과 일본이 나란히 16강에 진출하며 아시아 축구의 한계를 뛰어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양팀 모두 스트라이커에 의한 득점 비중은 낮았다. 뛰어난 조직력을 기반으로 상대를 괴롭히지만 골은 2선의 미드필더와 측면 공격수들에 의해 나왔다. 한국의 경우 매 대회를 앞두고는 스트라이커의 활약 여부에 눈길이 쏠리지만 기대를 채워준 선수는 몇 되지 않는다. 1986년과 1994년 대회에서는 김종부와 황선홍이 각각 대표팀이 기록한 4골 중 1골을 책임졌을 뿐이다. 1990년과 1998년 대회에는 아예 스트라이커의 득점이 없었다.

스트라이커가 제 몫을 하기 시작한 것은 히딩크 감독 시절부터다. 2002년 대회에서 황선홍·안정환(2골)이 결정적인 골을 넣었다. 최전방이 뚫리자 박지성·설기현 등 측면과 2선 공격도 힘을 받았다. 2006년 대회 때도 안정환이 토고전에서 역전골을 넣었다. 2010년 대회에서는 박주영이 스트라이커로서 골 맛을 봤고 박지성·이청용(2골)이 좌우에서 도왔다. 역대 대회를 보면 스트라이커의 팀 득점 비율은 50%를 넘지 않는다. 대신 최전방에서 물꼬를 틀 경우 팀 득점은 올라가고 자연스럽게 16강 이상의 성과가 가능했다.

 ‘믿을맨’ 박주영, 런던올림픽 시나리오 재현?

이번 브라질월드컵에서 홍명보 감독이 가장 믿는 공격수는 박주영이다. 이미 두 차례 월드컵에 참가했고 지난 남아공월드컵에서는 골을 기록한 바 있다. 현 시점에서 국제대회 경험이 가장 풍부한 스트라이커다. 홍명보 감독과의 궁합도 좋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 와일드카드로 선발됐던 박주영은 후배를 이끄는 리더이자 해결사로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홍명보 감독은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도 박주영을 와일드카드로 뽑았다. 당시 박주영이 소속팀 아스널에서 경기를 거의 소화하지 못하던 상황인 데다 병역 회피 의혹으로 논란의 도마에 올라 있던 때여서 반대가 거셌다. 홍명보 감독은 박주영을 대동한 기자회견에서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고 했고 결국 올림픽에서 동메달 획득이라는 성공을 거뒀다.

이런 과거를 보면 박주영의 선발은 당연한 선택으로 보이지만 여론의 반발이 만만찮다. 올림픽 이후에도 박주영은 셀타비고(임대)와 아스널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셀타비고에서의 임대를 마치고 아스널로 복귀한 이후가 특히 심했다. 리그컵 1경기 출장이 전부였다. 결국 지난 1월 겨울 이적 시장 마감 직전 2부 리그의 왓포드로 임대를 떠나며 월드컵을 위한 출전 기회 확보에 애썼다. 홍명보 감독은 3월6일 그리스전에 박주영을 소집했다. 대표팀 감독 취임 후 첫 소집이었다. 대다수 여론은 ‘소속팀에서 경기를 뛰지 못하는 선수가 무슨 활약을 하겠느냐’는 반응이었지만 선발 출전한 박주영은 전반 18분 감각적인 골을 터뜨렸다. 햄스트링에 이상을 느껴 전반전 45분만 뛰고 교체됐지만 여론을 ‘박주영은 월드컵의 성공을 위해 필요한 선수다’로 돌아서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손흥민 ⓒ 연합뉴스
전문가들도 박주영이 현재 홍명보 감독의 스트라이커 제1 옵션이라는 데는 이견을 보이지 않는다. KBS 해설위원으로 변신한 이영표는 “대표팀이 대부분의 포지션은 적임자를 찾았지만 원톱에 설 공격수가 없어 골 가뭄을 겪었다. 박주영의 복귀는 확실한 해결책이다”라고 말했다. 전북 현대의 최강희 감독도 “박주영은 현 시점에서 한국 축구가 세계 무대에서 가동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수다. 홍 감독의 선택은 당연하다”고 언급했다. 빠른 공수 전환과 2선의 미드필더와의 유기적인 연계를 강조하는 홍명보 감독에게 다재다능한 박주영은 가장 이상적인 스트라이커다.

문제는 월드컵 본선까지의 선수 관리다. 현재 박주영은 소속팀 일정을 접고 국내에 들어온 상태다. 오른쪽 두 번째 발가락에 걸린 봉와지염으로 인해 간단한 수술을 받고 치료 중이다. 여전히 왓포드에서 경기를 뛰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차라리 국내에서 치료를 하며 심리적 안정을 찾고 월드컵 준비까지 곧바로 들어가는 것이 대표팀엔 더 나은 상황이다. 지난 런던올림픽을 앞두고도 박주영은 조기에 귀국했고 대표팀의 이케다 세이고 피지컬 코치와 한 달가량 개인 훈련을 통해 경기력을 끌어올린 바 있다. 다시 한 번 박주영의 부활 프로젝트를 놓고 홍명보 감독은 고심에 돌입했다.

홍명보 감독, 제3의 공격수 고심 중

현 시점에서 ‘제1 옵션 박주영’의 가장 유력한 대안은 김신욱이다. K리그 클래식 울산현대에서 뛰고 있는 김신욱은 현재 유지하고 있는 경기력과 골 감각 면에서는 박주영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는다. K리그 개막 후 3경기 연속골을 포함해 7경기에서 5골을 넣었다.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3경기 연속골을 터뜨렸다. 196cm의 큰 키를 이용한 힘과 높이의 축구에 발을 이용한 기술까지 가미하며 날로 성장하고 있다. 홍명보 감독은 이미 김신욱의 가능성을 확인한 상태다. 지난해 11월 있었던 스위스, 러시아와의 2연전에서 최전방 공격수로 활약했다. 부진한 경기력으로 대표팀이 큰 비판을 받았던 1월 전지훈련 때도 유일하게 제 몫을 했다. 3월 그리스와의 평가전 때도 박주영을 대신해 후반전을 소화하며 좋은 연계 장면을 만들어냈다.

김신욱 ⓒ 연합뉴스 이근호 ⓒ 시사저널 임준선
기본적으로 김신욱은 박주영의 대안, 그리고 상대에 따른 맞춤형 옵션으로 여겨진다. 유럽의 큰 선수를 상대로도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증명했기 때문에 조별리그 러시아·벨기에와의 경기에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게다가 현재의 모습대로라면 박주영의 컨디션 여부에 따라 아예 주전으로 기용될 가능성도 있다. 김신욱은 “대표팀에서 어떤 역할을 주문받든 100% 소화해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울산의 조민국 감독은 “헤딩을 통해 플레이의 완성도를 높이라는 조언을 한다. 월드컵에서 김신욱이 맡아야 할 역할을 생각해야 한다”며 월드컵을 염두에 둔 선수 관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명보 감독이 고심하는 부분은 제3의 공격수다. 원톱 시스템을 선호하는 홍명보 감독은 3명의 스트라이커 자원을 최종 엔트리에 넣을 것으로 보인다. 박주영과 김신욱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지동원이 다음 카드로 유력하다. 그러나 지동원 역시 소속팀에서 꾸준히 뛰지 못하는 상태다. 1월 이후 득점 소식이 없다. 손흥민·이근호 같은 최전방 공격까지 커버할 수 있는 선수를 멀티플레이어로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 “최종 엔트리에 뽑을 90%는 확정한 상태”라고 밝힌 홍 감독이 어떤 계획으로, 누구를 최전방 공격수로 세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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