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대참사 막을 수 있었다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4.04.21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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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해운 3주 전에도 해상 사고 진도 참사 이틀 전 ‘사고 방지 대책’ 인천항만청에 보고

언제까지 대형 참사에 무기력해야 하나. 진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를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은 참담하다. 시신이 한 구씩 늘어날 때마다 슬픔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한 줌의 빛도 들지 않는 캄캄한 배 안에 갇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공포에 떨고 있을 어린 학생들을 생각하면 비통함에 억장이 무너진다. 왜 이런 비극이 끊이지 않는 걸까.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국민 안전’을 최우선 국정 과제로 제시했다.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이름까지 바꿨다. 정부 출범 후 ‘안전한 한국 사회’를 만들겠다며 각종 정책을 추진했다. 1년 후 자화자찬까지 했다. 안전행정부는 2월14일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지난 한 해를 평가하면서 ‘50년 만에 처음으로 사망자 10명이 넘는 사건·사고가 단 한 건도 없었음’을 강조했다.

4월17일 진도 앞바다에 침몰한 세월호 주변에서 해양경찰 등이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구윤성
하지만 불과 사흘 뒤인 2월17일 경주 마우나오션 리조트가 붕괴되면서 신입생 환영회에 참가한 대학생 등 10명이 숨지고 100여 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그리고 4월16일 인천에서 제주도로 향하던 청해진해운 소속 초대형 여객선이 침몰해 300명 가까운 승객이 실종되거나 사망하는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다. 정부가 ‘더 안전한 국민 행복 시대를 만들겠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한 지 두 달 만에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어린 학생들이 대거 죽음으로 내몰린 것이다.

박 대통령의 약속은 이제 공염불이나 다름없게 됐다. 사전 대비에서부터 후속 대처에 이르기까지 정부가 그토록 강조해온 ‘안전’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번 참사는 충분히 미리 막을 수 있었던 인재(人災)였다. 정부 당국의 철저한 관리·감독하에 선사가 선박을 규정대로 운항했다면 사고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거나 발생했더라도 이토록 참담한 피해를 입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부 당국 “안전 운항 철저 기하도록 감독”

기회는 여러 차례 있었다. 시사저널은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4월16일 청해진해운 소속 다른 여객선이 3주 전에도 해상에서 사고가 난 적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일부 언론에 짧게 보도가 되기도 했다. 3월28일 인천항을 출발해 백령도로 향하던 데모크라시 5호가 어선과 부딪혀 회항했다는 소식이었다. 여객선 오른쪽 아랫부분이 5m가량 길이로 찢어지고 어선 앞부분이 일부 파손됐지만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아 다행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날 사고는 그렇게 간단치 않았다. 시사저널은 4월17일 수소문 끝에 연락이 닿은 승객으로부터 당시 상황을 상세히 들을 수 있었다. 이 승객은 “쿵 하는 굉음과 함께 충격이 가해진 후 5분쯤 지나 배가 멈췄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선실에 있던 승객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원인 파악은 안 되고 승객 안전은 뒷전이었다”고 전했다.

외부적으로 드러난 인명 피해가 없었을 뿐 이번 세월호 사고와 여러 면에서 유사점이 발견된다. 사고 당시 안내 방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의 대처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이때 이미 안전에 대한 경고등이 켜졌던 셈이다. 이 여객선에 탔던 승객은 “우리가 탄 배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큰일이 일어날 수 있겠구나 싶었다”고 밝혔다.

정부 당국도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4월3일 이 사고에 대한 민원을 접수한 해양수산부 산하 인천지방해양항만청은 다음 날인 4월4일 청해진해운에 관련 사안에 대한 처리 내용 확인과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청해진해운은 해당 사고의 경우 짙은 안개에 대한 적절한 대처가 미흡해 발생했다고 소명하면서 유사 사고의 재발 방지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인천항만청에 보고했다.

청해진해운이 철저히 시행하겠다고 밝힌 주요 계획은 다음과 같다. △월 1회 비상시 대응 훈련 실시 △분기 1회 선박 관련 종사자에게 여객선 안전에 관한 사항 교육 △기상 악화로 안전 운항에 지장 초래 시 운항 중지·회항 등 조치 △사고 발생 시 승객 등 인명의 안전 확보에 최우선적인 조치 △사고 발생 시 비상 상황 처리 절차에 따른 신속 보고 △구명·소화 설비 등 비치 상태 및 성능 철저한 사전 점검 등이다.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후 지적되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대비책이 총망라돼 있다. 정부 당국도 책임감을 내비쳤다. 인천항만청은 ‘선장을 포함한 전 승무원이 유사시 관련 사항의 신속한 안내와 여객선 안전 운항에 철저를 기하도록 적극 지도·감독하겠다’고 밝혔다. 이 중에서 한두 가지라도 지켜졌다면 이번 대참사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지켜진 게 없다. 청해진해운이 사고 방지 대책을 인천항만청에 보고한 날이 4월14일이었다. 사고가 일어나기 불과 이틀 전이다.

4월16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이날 오전 침몰한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구조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안개로 출항 지연·사고 감추기 급급 ‘닮은꼴’

청해진해운이 사고 예방 대책을 이처럼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은 앞선 사고에 대한 문제제기가 그만큼 구체적이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해당 선사와 정부 당국이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는지 의문이다. 만약 그랬다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두 여객선은 모두 짙은 안개로 인해 2시간 30분가량 출항이 지연됐다. 도착 시간을 최대한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운항하다가 사고를 당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는 이유다.

선박이 항로를 벗어났다는 의혹도 마찬가지다. 데모크라시 5호 승객은 사고 직후 스마트폰으로 현재 위치를 확인했는데 여객 항로보다 한참 남쪽이었다고 한다. 이 승객은 “인천항에서 백령도로 가는 항로가 표시된 점선에서 한참 밑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세월호에 대해서도 기존 항로를 이탈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구조에 나섰던 어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사고가 난 지점은 여객선이 다니는 뱃길이 아니다. 여수에서 부산으로 가는 화물선 항로라는 지적도 나왔다.

사고가 난 후 승객들에게 사고 내용을 감추기에 급급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도 닮은꼴이다. 데모크라시 5호가 멈춰서자 승객들이 웅성대기 시작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런 와중에 한 승객이 조타실에서 나오는 승무원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자 이 승무원은 언성을 높이며 방송할 테니까 들으라고 했다고 한다. 세월호의 경우 사고 초기 방송에서 자세한 설명 없이 “선실에서 대기하라”는 말만 되풀이한 것이 대형 참사를 불러온 결정적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러다 보니 승객이 휴대전화로 직접 구조 요청을 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데모크라시 5호 승객은 “사고가 난 것은 알겠는데 무슨 사고인지 말을 안 해주니까 답답한 마음에 신고를 한 승객이 여러 명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세월호에서는 승무원이 구조 요청을 하기 전에 승객이 먼저 구조 신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 대피 요령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던 것도 마찬가지였다.

구명 장비가 무용지물이 된 것도 뼈아픈 대목이다. 데모크라시 5호의 경우 침수가 되지 않아 실제 구명 장비를 사용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사고가 난 것을 직감한 승객들은 비상구가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하고 구명조끼도 찾았다고 한다. 그런데 철문으로 된 비상구는 잠겨 있는 데다 끈으로도 묶여 있었다는 게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승객의 증언이다. 이 승객은 “구명조끼함이 안 열린다는 얘기도 나왔다”고 말했다. 세월호에는 모든 승객이 다 탈 수 있도록 구명보트가 46개나 준비돼 있었지만 이 중에서 달랑 한 개만 제 기능을 했다.

데모크라시 5호 승객은 “사고 당시는 물론 인천항으로 돌아온 후에도 다친 사람이 있는지 등 승객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것으로 보여 항의가 많았다”고 밝혔다. 주주총회에 갔다는 회사 대표는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사고가 발생한 직후에도 대표 대신 상무와 부장이 사과하고 상황 설명을 했다. 이튿날에야 병원에서 치료 중이던 김한식 청해진해운 대표가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며 사과했다.

무엇보다 정부 당국이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세월호가 사고를 당한 후 정부가 보여준 모습은 한마디로 우왕좌왕 갈지자 행보였다.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탑승 인원에서부터 구조자 수 집계까지 혼선에 혼선을 거듭했다. 사고 당일 오후 생존자가 368명이라고 발표했다가 두 시간 만에 절반에도 못 미치는 160여 명이라고 번복해 국민의 공분을 샀다. 안전행정부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해양수산부의 해양경찰청은 오류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3월28일 인천항에서 해양경찰이 백령도로 향하다가 어선과 충돌해 파손된 여객선 데모크라시 5호를 조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해수부·항만청·해양경찰 책임 떠넘기기

앞선 사고에 대한 민원 처리를 두고는 해양수산부와 산하 기관인 인천항만청·인천해양경찰이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특히 인천항만청은 4월17일 취재진이 해당 민원에 대해 묻자 “인천해경에서 보고받은 것으로 안다”며 발뺌부터 했다. 이에 대해 인천해양경찰 측은 “선사 관계자로부터 사고 보고서를 항만청에 제출하면서 별첨으로 사고 방지 대책을 같이 보고했다는 진술을 받았다”고 밝혔다. 인천항만청에 관련 보고서가 제출됐다는 것이다.

인천항만청은 이 같은 내용을 전달받은 다음 날이 돼서야 해당 민원을 처리한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청해진해운이 보고한 사고 예방 대책에 대해서는 “항만청은 면허 관청으로 안전 관리 부문은 우리 권한이 아니다”며 “확인하려면 책임이 있는 곳으로부터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민원이 들어오면 해당 지방항만청으로 내려보낸다”며 인천항만청으로 화살을 돌렸다. 세월호 침몰 사고 후 정부에 대한 비난 여론이 쏟아지면서 ‘사고’ ‘안전’ ‘책임’이라는 말에 과민 반응을 보이는 듯한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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