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운명, 광주 표심이 가른다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4.04.23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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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안’ 윤장현 후보 선출이 1차 관문…광주 못 잡으면 대권 행보에 큰 차질

“윤장현 예비후보를 전략 공천하든지, 최소한 강운태 현 시장을 컷오프 탈락시키든지 둘 중 하나를 이뤄내지 않으면 광주도 안철수의 ‘새 정치’에 등을 돌릴 것이다.” 오랜 기간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새정치연합) 공동대표를 도와온 광주 지역의 한 정치권 인사는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동요하는 광주 지역 ‘안철수 지지층’의 속마음을 이렇게 정리했다.

안 대표에게 광주는 ‘기회의 땅’이었다. 새 정치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가장 컸던 곳이다. 시사저널은 이른바 ‘안철수의 새 정치’가 꿈틀대던 지난해 5월부터 광주 지역을 꾸준히 오가며 지역 민심을 살펴왔다. 민주당에 대한 실망감이 컸던 광주 민심은 ‘안철수’라는 새 인물에게 쏠려 있었다. 광주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 중 한 곳을 방문했을 때도 민주당 인사가 아닌 ‘안철수의 사인’이 걸려 있었다. ‘안철수 신당’ 역시 광주 지역을 사실상의 교두보로 삼았다. 기존 정치에 실망하고 정권 교체를 이뤄줄 ‘큰 인물’을 기다리던 광주는 새 정치가 싹트는 데 ‘온도와 습도’가 가장 잘 맞는 조건을 갖고 있었다.

2월28일 안철수 당시 새정치연합(가칭) 중앙운영위원장이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광주시당 발기인대회에서 윤장현 공동위원장을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그랬던 광주 민심이 최근 동요하고 있다. 기회의 땅은커녕 자칫 ‘새 정치의 무덤’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민주당과 통합한 안철수 대표에 대한 실망감이 신호탄이 됐다. 광주는 그 어느 지역보다도 민주당을 열렬히 지지했고, 그랬기에 실망감도 컸다. 통합 선언 직후 안철수 대표를 지원하던 광주 지역의 몇몇 인사들은 기자에게 “이쪽 동네 지금 완전 허탈해부요. 나도 이제 (지지 활동) 그만 할라요”라며 노골적으로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후 통합 과정에서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내용이 정강·정책에서 빠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광주 민심이 한 번 더 술렁였다.

광주시장 선거에서 ‘안철수 브랜드’ 입증해야

안철수 대표에겐 아직 살릴 수 있는 불씨가 남아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른바 ‘안철수의 사람’을 얼마나 당선시키느냐가 관건이다. 단순히 당내 헤게모니 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다. ‘안철수’라는 브랜드 경쟁력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상황이 녹록지 않다. 경기도지사에 출마하는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도 지금 여론조사 결과 등을 보면 승리를 장담하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결국 광주가 핵심이다. 안철수 새 정치의 베이스캠프와도 같았던 광주에서 순수하게 안철수 브랜드를 가진 사람을 시장으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김두관 새정치연합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4월15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광역단체장을 전부 기존 민주당 사람이 맡게 된다면 도로 민주당처럼 보일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이른바 ‘안철수의 사람’으로 통하는 광역단체장 후보들 가운데, 이석형 전남도지사 예비후보와 강봉균 전북도지사 예비후보는 기존 민주당 사람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상징적 인물은 결국 김상곤 경기도지사 예비후보와 윤장현 광주시장 예비후보로 요약된다. 이 가운데 본선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쪽은 윤 후보라는 설명이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광주와 윤장현이라는 인물이 갖는 상징성을 우회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2월5일 광주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이용섭 의원이 5·18 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 새정치연합 소속 광주 지역구 의원 5명이 국회 내 한 의원실에서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 강기정(북 갑)·장병완(남)·임내현(북 을)·김동철(광산 갑)·박혜자(서 갑) 의원 등이다. 광주 지역 새정치연합 소속 의원 7명 가운데 이용섭(광산 을)·박주선(동) 의원을 제외하고 모두가 동참한 것이다. 회동 도중 한 의원이 문을 박차고 나가는 등 심각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 회동이 있고 불과 며칠 후인 4월13일 이들 의원 5명은 “6·4 지방선거 광주시장 후보로 윤장현 후보를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광주 지역이 발칵 뒤집혔다. 이들의 이런 움직임은 광주시장 예비후보로 나선 이용섭 의원 측에서도 전혀 모를 정도로 비밀리에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대표적인 ‘친안(親안철수)’ 의원으로 꼽히는 박주선 의원은 참여하지 않았다. 박 의원은 광주 지역 의원 5명의 지지 선언 이후 “대단히 부적절한 방법이었다”며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새정치연합 인사들과 광주 지역에서는 이미 박 의원도 다섯 의원이 지지 선언을 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광주 지역 사정에 밝은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광주 지역 의원 5명이 기자회견을 하기 불과 한 시간 반 전에 박 의원 측에 전화해 함께하자고 전화했다. 박 의원은 본인을 제외하고 비밀리에 진행된 회의에 대해 큰 반발을 갖고 있었는데 지도부에서 달래 그 정도에 그친 것”이라고 전했다. 광주에서 활동하는 새정치연합의 한 당직자 역시 “박주선 의원은 지도부의 만류에는 동의했지만 자신과 미리 상의를 안 한 것에 대해 큰 불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이용섭 후보를 제외한 광주 지역 의원 전원이 안철수 대표의 손을 들어주고 나선 셈이다.

의원 5명 지지 선언은 사실상 ‘安心’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광주 지역 다섯 의원이 윤장현 후보를 지지하고 나선 것은 “지도부 뜻과 무관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러 내부 관계자들과 새정치연합 광주 지역 인사들, 정치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이번 지지 선언은 곧 ‘안심(安心)’이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당 지도부 몇몇 인사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사람들이 모든 지역의 광역단체장 후보로 나서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광주시장 출마를 선언한 이병완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이미 3~4주 전부터 새정치연합 내부에서 ‘일반 절차로 해서는 (윤장현 위원장 공천의) 솔루션이 안 나온다’고 하더라. 이번 지지 선언도 결국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으로 의심된다”고 전했다. 황태순 위즈덤센터 수석연구위원은 “새정치연합에서 호남에 대한 공천권은 곧 임명권을 의미한다. 의원 5명이 지지 선언을 하고 나선 이번 사태는 사실상 당 지도부가 임명권을 갖겠다는 것인데 이건 기초선거 무공천을 주장하던 정신과 배치되는 것이다. 안철수 대표가 점점 정치적으로 풀기 어려운 늪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운태 광주시장이 3월15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KIA와 두산의 시범경기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제는 현재 시장 후보로 뛰고 있는 강운태 시장과 이용섭 의원이 전혀 양보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두 후보는 의원들의 ‘윤장현 지지 선언’ 후 곧바로 강하게 반발했다. 강운태 시장은 현재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무소속 출마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강 시장은 2008년 총선 때도 당시 통합민주당의 공천을 받지 못할 것으로 보이자 광주 남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바 있다. 이 때문에 새정치연합 내부에서도 강 시장을 이번 선거의 독립변수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최근 여론조사는 ‘이용섭-강운태-윤장현’ 순

더 큰 변수는 이용섭 의원이다. 그는 ‘윤장현 지지 선언’을 계기로 사실상 ‘친안’으로 돌아선 다른 모든 광주 지역구 의원들과 맞서야 하는 힘겨운 상황에 놓였다. 이 의원은 현재 본격적으로 광주시장 경선을 준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의원이 ‘친노’ 쪽에 가깝다는 점을 들어 광주 지역에서 ‘친안과 친노의 싸움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하지만, 지역 특성을 고려할 때 그러한 구도에는 무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설사 친노가 이 의원을 돕고 싶다 하더라도 지역 특성상 나서지 않는 게 도와주는 것이란 분석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광주는 친안보다 친노에 대한 반감이 더 크다. 친안에게는 직접적인 피해를 받은 것이 없지만 친노에게는 가시적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맨파워’로 승부해야 하는 상황인데 지금으로서는 포기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4월15일 ‘광주타임즈’ ‘톡톡뉴스’ ‘미디어 전남’이 한백리서치연구소에 의뢰해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 의원은 39%의 지지를 얻어 34.2%를 얻은 강운태 시장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윤장현 예비후보는 15.3%에 그쳤다(광주 지역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 대상, RDD(임의 번호 걸기) 방식 조사, 표본 오차 ±3.1%포인트, 신뢰 수준 95%, 응답률 6.0%).

윤장현 후보는 “전략 공천을 받지 않고 당당히 경선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세 후보는 어떤 방식으로든 붙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윤 후보가 강운태·이용섭이라는 두 광주의 거물을 꺾을 수 있느냐에 따라 현 지도부의 명운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로선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새정치연합 광주시당의 한 관계자는 “이 상태라면 설령 당이 윤 후보를 전략 공천해도 강 시장이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질 가능성이 크다. 전략도 없이 무조건 깃발만 꽂으려 하면 광주는 크게 반발할 것”이라고 전했다. 황태순 수석연구위원은 “만약 윤 후보가 새정치연합으로 나와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강운태 시장에게 진다면 새정치연합은 사실상 새로 당을 만들어야 할 판이 돼버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80년대 ‘용팔이 사건’ 보는 줄 알았다” 


4월16일 오후 4시 반. 새정치연합 광주시당 사무실에서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공천관리위원장을 맡고 있는 임내현 의원이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순간 정체불명의 남자들이 그의 옷을 잡아당기고 폭언을 퍼부었다. 이 남자들은 “윤장현 예비후보 지지를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임 의원은 이 때문에 위원장실에 한 시간이나 감금돼 있어야 했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시당 관계자는 “각목만 안 들었지 완전 1980년대 ‘용팔이 사건’을 보는 줄 알았다”고 전했다.

용팔이 사건은 1987년 김대중·김영삼 등 야권 정치인들이 통일민주당을 창당하는 과정에서 정치깡패인 ‘용팔이’ 김용남씨가 각목으로 무장한 폭력배들을 동원해 창당대회를 무산시키려 한 사건을 말한다. 광주시당은 이번 사건을 심각한 사안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광주시당 관계자는 “중앙당에서 공식적으로 경고를 하려 했는데 이번 세월호 사건 때문에 일단 나서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미 채증도 해놓은 만큼 한 번 더 이런 식의 사태가 일어나면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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