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구할 ‘골든타임’ 놓치는 바람에…
  • 부산=이혜숙 객원기자 ()
  • 승인 2014.04.3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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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요양원에서 치매 노인 타살 사건 늑장 응급 조치가 사망 원인 중 하나로 추정

부산의 한 요양원에서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이 같은 병실을 쓰던 치매 노인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급격한 고령화 시대를 맞아 노인이 점점 설 곳을 잃어가고 있는 요즘, 치매 노인 전문 요양원도 더 이상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4월5일 부산시 진구 H요양원에서 70대 치매 환자인 강 아무개씨(여·71)가 같은 병실 치매 환자인 최 아무개씨(여·70)에게 목이 졸려 숨졌다. 이 사건을 담당한 부산진경찰서는 강씨의 목과 환자복 등에서 발견된 최씨의 피부 세포, 혈흔 등을 증거로 최씨에 대해 폭행치사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다.

최씨는 부산의료원에서 치매 등급을 받고 지난 2월 강씨가 입원한 H요양원에 입원한 후 줄곧 강씨와 같은 병실을 써왔다. 최씨는 범행 직후 경찰 조사에서 살인 혐의에 대해 “전혀 기억이 안 난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 일러스트 정찬동
치매 환자는 치매 증세가 악화되면 인지 저하와 충동 조절 장애를 일으키거나 자기와 타인에 대한 폭력성 및 공격성이 나타난다. 이런 경우 요양원은 치매 정도에 따라 환자를 분리 수용하거나 적절한 보호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럼에도 평소 공격 성향을 보였던 최씨는 다른 치매 환자 3명과 함께 별다른 조치 없이 같은 병실을 썼던 것으로 밝혀졌다.  

요양원 측의 조직적 은폐 의혹

그런데 시사저널 취재 결과, 이 요양원은 최씨에 의해 목이 졸린 상태였던 강씨에게 적절한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6분 정도를 그대로 방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강씨를 살릴 수 있었던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요양원 측이 최씨의 폭행 사실을 피해자 가족은 물론 경찰 조사에서도 은폐하고 있다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가 나오자 뒤늦게 시인했다는 점이다. 이같은 사실은 사건 현장에 설치돼 있는 CCTV 영상에 대한 경찰 분석 자료 및 강씨 유족과 요양원 관계자의 녹취록을 통해 드러났다. 

사건이 일어난 병실 앞에 설치된 CCTV 2대의 화면을 보면,  강씨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 찍힌 것은 병실 앞에서 서성거리던 오후 10시37분. 이때만 해도 강씨는 혼자 걸어다닐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 시간 뒤인 11시39분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대원에 의해 강씨가 실려 나갈 때의 모습은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경찰은 강씨가 오후 11시30분쯤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강씨의 사인은 경부 압박 질식사(목이 졸려서 사망)로 밝혀졌다.

경찰에 따르면 사건 당일 야간 근무자였던 요양보호사 이 아무개씨(59)가 강씨의 몸에 올라탄 최씨를 발견하고 끌어내린 게 오후 11시17분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강씨는 “괜찮으냐”는 이씨의 물음에 희미하게나마 반응을 하는 등 생존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씨는 강씨에 대한 즉각적인 응급조치를 하지 않은 채 요양사 대기실로 가서 침대 커버를 가지고 나와 다른 병실의 시트를 교체하는 등 일상 업무를 봤다.

이씨가  강씨에게 다시 돌아온 시간은 사건 발생 6분 후인 오후 11시23분.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즉시 응급조치를 실시했다면 강씨를 살릴 수도 있었던 ‘골든타임 6분’을 그대로 허비했던 것이다.

의학적으로 심정지가 발생한 직후 호흡·순환·뇌기능이 정지된 상태를 임상적 사망이라고 한다. 임상적 사망 중에는 심폐소생술 등의 응급 처치로 혈액순환이 회복되면 심정지 이전의 중추신경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심정지 상태에서 대뇌가 손상을 받지 않고 견딜 수 있는 시간은 고작 4~6분에 불과하다. 이 시간을 놓치면 세포가 소생할 수 없는 생물학적 사망으로 이어진다. 

당시 사건 현장에 출동한 119대원은 “현장에 도착해 보니 강씨는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며 “통상적으로 목이 졸려 질식하는 경우 사건 발생 후 5분 이내 심폐소생술 등의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소생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치매 노인 타살 사건이 발생한 부산의 H요양원. ⓒ 이혜숙 제공
“목 졸려 질식 후 5분 이내 심폐소생술 해야”

하지만 이씨가 동료 직원들과 함께 강씨에 대한 응급조치를 취한 것은 사건 발생 7분이 지난 오후 11시24분이었다. 이와 관련해 이씨는 경찰에서 “최씨가 목을 조르는 것을 보지 못했고 강씨의 몸 위에 올라간 것만으로 강씨가 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씨의 유가족은 이에 대해 “얼굴에 온통 피멍이 든 데다 입술 안쪽이 깊게 파여 피가 고였었는데도 환자를 그대로 방치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며 “발견 즉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더라면 살릴 수 있었는데 요양원 측의 과실로 환자가 사망했다”고 반발했다. 요양원 측은 사건 직후 이 같은 사실을 숨긴 채 “강씨가 주무시는 중에 이상해졌다”고 가족들에게 연락했다. 그런데 얼굴의 상처를 이상하게 여긴 병원 응급실 의료진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뒤늦게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게 됐다.

요양원의 간호 책임자 양 아무개씨는 어떻게 된 일인지를 묻는 유족에게 “어머니(강씨)가 주무시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얼굴이 창백해져서 병원에 모시고 왔다”고 말했으며 강씨에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던 요양보호사 송 아무개씨도 “주무시는 중에 갑자기 얼굴이 창백해져 심폐소생술을 했다”고 말해, 요양원 측이 고의로 은폐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 같은 고의 은폐 의혹에 대해 요양원 측은 유족에게 “그런 부분은 이야기가 와전된 것 같다. 이게 숨긴다고 될 일이 아니지 않으냐”고 부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씨는 경찰의 세 차례에 걸친 조사에서도 최씨의 폭행 사실을 숨겼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오후 11시17분 폭행 사실을 처음 인지했음에도 경찰 조사에서는 “그때 최씨를 화장실에 모셔다드리고 있었다”고 거짓 진술을 했다. 이로 인해 경찰의 초기 수사도 혼선을 빚었다. 이후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자, 이씨는 유가족에게 “너무 당황해서 경찰의 3차 조사까지 (사건에 대해) 말을 안 했다. 왜 바보같이 말을 안 했는지 나도 모르겠다”고 전했다고 한다. 강씨의 유가족은 이씨와 해당 요양원에 대해 관리 책임을 들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고소할 예정이다.

이와 별도로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은 “경찰로부터 4월14일 사건을 송치받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요양원 측은 이 사건에 대해 “어떠한 공식 인터뷰도 거절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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