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철의 판 흔들기, 그 끝은?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4.04.3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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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E 무한 요금제로 SKT·KT에 선제공격…이동통신업계 판도 변화 주목

LG유플러스는 4월2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음성과 문자 데이터, 부가서비스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LTE8 무한대 요금제’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이상철 부회장이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 요금제 출시 배경과 시장의 우려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이 부회장은 “무한 요금제가 회사에 가져다주는 이득은 없다. 1500억원 가까운 매출 손실을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손해를 보면서도 무한 요금제를 출시한다는 얘기다. 이유는 간단하다. 고객 이탈을 방지하면서 불법 보조금 과열 경쟁 이미지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기자간담회가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기자석이 술렁였다. 경쟁사인 SK텔레콤(SKT)이 LTE 무제한 요금제를 출시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이다. 이날 저녁에는 KT도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 출시 계획을 밝혔다.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 ⓒ 시사저널 포토
SKT·KT, LG유플러스 요금제 베끼기 논란

LG유플러스는 불쾌감을 내비쳤다. 간담회에 참석한 유필계 부사장(CR전략실장)은 “LTE 무한 요금제를 준비하는 데 3개월이 걸렸다”며 “경쟁사 CEO가 직접 나와 기자간담회를 하는 중에 보도자료를 뿌린 것은 상도의에 어긋난 처사”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SKT와 KT 측은 “LG유플러스의 요금제를 베낀 게 아니다”고 반박했다. SKT 측은 “오랜 기간 LTE 요금제를 준비해왔다. 경쟁사에 출시 타이밍을 빼앗긴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KT 측도 “경쟁사가 무한 요금제를 내놓는 데 대해 이전부터 준비를 해왔다”고 강조했다.

통신업계에서는 SKT와 KT가 LG유플러스를 견제하기 위해 서둘러 무제한 요금제를 만들어 발표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과거 3G(3세대 이동통신) 서비스 때만 해도 LG유플러스는 SKT와 KT의 경쟁자가 못 됐다. 경쟁사들이 2G(2세대 이동통신)에서 3G로 순항을 하는 동안 LG유플러스는 지켜보고 있어야 했다. 지난 2006년 남용 부회장이 IMT2000 사업을 포기하면서 3G 서비스를 사실상 포기했기 때문이다. ‘만년 꼴찌’ 혹은 ‘영원한 3등’이라는 꼬리표가 LG유플러스를 항상 따라다녔다.

2010년 1월 이상철 부회장이 LG유플러스 대표에 취임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 부회장은 LTE(4세대 이동통신)에 승부수를 던졌다. LTE 전국망 구축에 1조7000억원을 투입했다. LG그룹 내부에서조차 “과연 되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LG유플러스는 2012년 말 596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며 적자로 전환됐다.

이 부회장은 LTE에 대한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LG유플러스는 2013년을 전후로 LTE 시장에서 통신업계 맏형인 KT를 앞서기 시작했다. 현재는 LTE 시장 점유율을 놓고 KT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하고 있다. 2011년 17%였던 시장 점유율은 19%대까지 올라갔다. 지난 3월 미래창조과학부가 발표한 이통 3사의 시장 점유율은 SKT 50.42%, KT 29.86%, LG유플러스 19.72%다.

통신업계에서는 이상철 부회장의 ‘판 흔들기 전략’이 시장에서 먹힌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월 헤비 유저를 위한 LTE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발표했다. 4월에는 망내외 무제한 통화 요금제를 내놨다. 그때마다 SKT와 KT도 비슷한 요금제를 출시했다. 결과적으로 시장 선도 업체들이 만년 꼴찌인 LG유플러스를 쫓아가는 모양새가 됐다. 지난 4월2일 SKT와 KT가 약속이나 한 듯 LTE 무제한 요금제를 발표한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는 관측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SKT나 KT는 LTE 서비스로 전환하면서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폐지했다. 상위 1% 고객이 데이터의 30%를 독점하는 폐단 때문이었다”며 “LG유플러스의 독주를 두고 볼 수 없어 전략을 바꾼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왼쪽 두 번째) 주최로 4월16일 이동통신 3사 최고경영자 간담회가 열렸다. ⓒ 연합뉴스
LTE 무한 요금제, 과부하 가능성도 

실제로 LG유플러스는 4월5일부터 18일까지 11만5275건의 번호 이동 순증을 기록했다. 하루 평균 8234명이 SKT와 KT에서 LG유플러스로 옮겼다는 계산이다. 이런 시장 점유율 변화에는 경쟁사의 영업정지 특수도 일정 부분 작용했다. SKT와 KT 측은 불법 보조금과 사전 예약 가입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LG유플러스의 고공비행을 단순히 경쟁사 영업정지에 따른 수혜로 치부하는 것 또한 무리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업계의 한 인사는 “이 부회장의 취임 일성 중 하나가 ‘탈(脫)통신’”이라며 “기존 통신 공룡의 빈틈을 공략하는 이 부회장의 ‘판 흔들기’ 전략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상철 부회장의 파격 행보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다. ‘100% LTE가 아니라 대책 없는 LTE’라는 비아냥거림이 경쟁사에서 나오는 이유다. LG유플러스는 SKT나 KT와 상황이 다르다. 3G를 건너뛰고 2G에서 4G로 바로 넘어온 만큼 망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해 말 ‘2013년도 통신 서비스 품질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SKT의 LTE-A 다운로드 속도가 56.2Mbps로 가장 빨랐고, KT는 50.3Mbps로 2위를 차지했다. LG유플러스는 43.1Mbps로 3위를 기록했다. 업로드 속도 역시 SKT(15.5Mbps), KT(13.3Mbps), LG유플러스(15.3Mbps) 순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LG유플러스의 경우 음성 주파수와 데이터 주파수의 구분이 없다”며 “당장은 지장이 없어도 데이터 사용량이 늘어나면서 과부하가 생기면 음성 통화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이상철 부회장은 망 안정성을 위한 충분한 대책을 마련했다고 강조한다. 이 부회장은 4월2일 기자들과 만나 “1000억원 이상을 추가로 투자해 기지국과 네트워크망을 정비하고 있다”며 “무제한 데이터를 악용하는 사용자를 막을 대책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시장 선도 업체인 SKT와 KT를 상대로 ‘돌직구’를 던진 이 부회장의 승부수가 얼마만큼 통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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