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주무르는 돈줄 차단하라
  • 김원식│미국 통신원 ()
  • 승인 2014.05.2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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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달러 갑부 코치 형제가 자금줄…민주당, 타깃으로 삼고 파상 공세

미국 민주당 지도자인 해리 리드 상원 원내대표가 연방의회 의사당에 섰다. 그는 또다시 ‘코치 형제’를 끄집어냈다. “양심도 없고 미국인도 아니다. 코치 형제는 미국을 자신들의 부를 창출하는 시스템이라 믿고 있는 것 같다.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그들의 적대적 인수 시도는 자신들이 더 큰 부자가 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그는 올해에만 벌써 130여 회에 걸쳐 ‘코치 형제(Koch Brothers)’라는 단어를 의사당에서 토해냈다. 리드 원내대표가 생각하는 코치 형제는 공화당을 움직이는 실세이자 자금줄이요, 민주당에는 공적이다.

찰스 코치(78)와 데이비드 코치(73)를 일컫는 ‘코치 형제’는 에너지·섬유·제지 관련 기업인 ‘코치 인더스트리’를 소유하고 있다. 이들의 재산 규모는 추정하기 불가능할 정도며 세계 최대 갑부 반열에 들어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두 형제가 보유한 주식 규모를 합치면 대략 1000억 달러가 넘는데 세계 최대 갑부로 알려진 빌 게이츠(795억 달러)를 능가한다”고 보도했다. 이 형제가 미국 정가를 움직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친(親)공화당 정치단체인 ‘번영을 위한 미국인들(American for Prosperity)’이나 ‘자유동반자(FP)’ 등을 움직여 정치권에 압박을 가하는데, 이들 단체의 핵심 돈줄이 코치 형제다.

2013년 5월15일 코치 형제의 LA타임스 인수설이 떠돌자 시위대가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 XINHUA 연합
공산주의 혐오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

2012년 ‘자유동반자’가 정치 광고 등에 사용했다고 세무 당국에 공식 보고한 금액만 무려 2억5000만 달러(약 2560억원)였다. ‘번영을 위한 미국인들’은 11월에 열리는 중간선거에만 1억2000만 달러(약 1230억원) 이상을 쓰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엄청난 자금을 쏟아붓겠다는 계획의 뒤편에는 공식적으로 잡히지 않는 코치 형제의 기부가 존재한다. 공화당 외곽 단체인 ‘티파티(Tea Party)’도 코치 형제의 자금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미국 정가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자금줄에서 밀린 민주당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택한 전략은 ‘코치 형제 죽이기’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억만장자 톰 스테이어(57)가 선봉에 나섰다. 대대적인 TV 광고를 내보냈는데 화면에서 비판의 대상으로 등장한 사람은 정치인이 아니라 코치 형제였다. 공화당 뒤에 숨어 있는 실세가 사실 악덕한 부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환경 문제에 몸을 던지고 있던 앨 고어 전 부통령도 “공화당은 코치 형제들에게 버림받을까 봐 지구온난화 문제를 공론화하기 꺼려 한다”며 정치판에 다시 나섰다.

수많은 언론이 인터뷰를 원하지만 코치 형제는 철저하게 거부 중이다. 공화당이 아니라 자신들이 공격 목표가 되는 것은 피하려고 한다. 이들이 유일하게 공식 입장을 밝힌 때가 4월2일이었다. 형인 찰스 코치는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글을 통해 민주당 등 자신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집단주의자(collectivists)’라고 불렀다. 그는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인격 살인에 몰두하고 있다. 그런 전략은 자유 사회가 요구하는 것과 정반대다. 집단주의자들은 지금 자신들이 어떤 현명한 답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폭로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오늘날 미국 보수 세력을 움직이는 실세인 코치 형제를 있게 한 것은 아버지인 프레드 코치다. 그는 프레드릭, 찰스 그리고 쌍둥이인 데이비드와 빌 등 네 아들을 두었는데 탁월한 경영 능력으로 이 네 아들의 직책을 바꿔가며 관리했고, 오늘날 찰스와 데이비드가 코치가(家)를 거대하게 만들었다. 프레드 코치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반공’이다. 반공을 주제로 한 주간지를 260만 부나 발간해 미국 전역에 배포할 정도로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가 컸다.

어느 날 아들인 찰스가 헤밍웨이의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집에 갖고 오자 프레드는 “헤밍웨이는 공산주의자”라며 책을 문밖으로 집어 던지기도 했다. 이런 가풍에서 자란 코치 형제가 보수 진영을 후원하고 나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경제 부문에서도 자유를 강조하는데, 과도한 세금 부과를 거부하며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정치단체들이 코치 형제의 후원 대상이다.

정책  입맛 안 맞으면 공화당 의원도 찍혀

단지 민주당만 이들의 적은 아니다. 정책이 입맛에 맞지 않으면 공화당 의원도 코치 형제의 적이다. 강력한 비난 광고는 기본이고 낙선운동까지 주도한다. 5월20일 미시간 주가 디트로이트 시의 파산을 막으려고 1억9500만 달러(약 2000억원) 규모의 금융 지원을 입법화하려 했다. 그러자 코치 형제가 반대를 외치고 나섰다. 이 법안을 주도하고 있는 곳은 디트로이트 시의회에서 다수를 자치하고 있는 공화당이며 법안 지지자인 릭 스나이더 주지사 역시 공화당 소속이다. 하지만 코치 형제의 후원을 받은 정치단체들이 “해당 법안을 통과시킬 경우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각 의원들에게 유인물을 돌리는 등 제동을 걸었다. 은퇴연금을 충당하고 시 소유 박물관 등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자금이지만 정치단체들은 “세금을 투입하지 마라. 연금지급을 줄이고 그 자산들을 매각해서 처리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공화당 의원들이 움찔하며 난감해하는 모습은 코치 형제의 힘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민주당이 공화당이 아닌 코치 형제를 정치적 타깃으로 삼은 이유는 4월에 있었던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 때문이다. “개인의 정치후원금 총액 제한은 위헌”이라는 대법원의 결정은 돈의 위력을 더 강화시켰다. 특히 코치 형제처럼 보이지 않는 자금들, 이른바 ‘검은돈’이 공화당과 보수단체 쪽으로 몰릴 것은 불을 보듯 빤했다. 2010년과 2012년에 출처 불분명한 정치 후원금 중 무려 88%, 85%가 공화당 차지였다.

이번 중간선거에서는 지난 선거보다 최고 10배나 많은 정치 자금이 동원될 것이라는 게 정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코치 형제가 정치단체에 쏟아부은 금액만도 2012년의 두 배를 넘어섰다. 공개되지 않은 자금을 합한다면 더욱 많을 수밖에 없다. 과다한 자금 집행을 막아보려 하지만 ‘반공’으로 똘똘 뭉친 형제의 진격은 더욱 거센 상황. 민주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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