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리’ 떠나면 어디서 돈 빌리지?
  • 박덕배│현대경제연구원 전문연구위원 ()
  • 승인 2014.06.11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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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업체들 저축은행 진출…러시앤캐시, 6월 중 오케이저축은행으로 영업 시작

대부업체가 저축은행을 인수하면서 서민 금융업계에 커다란 파장이 일고 있다. 오래전부터 저축은행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대부업체의 저축은행 인수를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대부업체들이 인수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명했지만 오랜 기간 성사되지 못했다. 대부업체가 수신 기능이 있는 저축은행을 인수할 경우 저축은행을 자금 조달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저축은행을 건전하게 경영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말 정부는 엄정한 인수 자격 심사와 금융 당국의 철저한 사후 관리·감독 방안을 마련해 대부업체의 저축은행 인수의 길을 터주었다. 먼저 정부는 인수 주체에 대해 까다로운 기준을 세워 제한했다. 저축은행 자본 적정성(BIS 비율) 요건 및 향후 증자 수요 등을 감안해 충분한 자본력을 갖추고 저축은행 운영 및 내부 통제 능력을 겸비한 대부업체로 한정했다.

ⓒ 일러스트 김세중
이러한 엄격한 기준과 심사 결과 대부업계 자산 규모 3위인 웰컴크레디라인(브랜드명 웰컴론)은 예신저축은행과 해솔저축은행을 인수해 상호를 웰컴저축은행으로 바꾼 후 지난 5월7일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대부업계 자산 규모 1위인 에이앤피파이낸셜대부(러시앤캐시) 역시 현재 예나래저축은행과 예주저축은행 등 2개 가교 저축은행에 대한 최종 인수 신청서를 금융위원회에 제출한 상태다. 저축은행 인수가 이뤄지면 상호를 오케이저축은행으로 변경하고  6월부터 영업을 시작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진다.

영향력 있는 대부업체가 속속 저축은행으로 진출하면서 대부업계와 저축은행업계 모두 잔뜩 긴장하고 있다. 먼저 대부업의 경우 대형 대부업체들이 사실상 대부업을 포기하고 저축은행으로의 변신을 꾀하면서 업계 판도가 크게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에이앤피파이낸셜대부와 웰컴크레디라인은 각각 업계 1위와 3위로 막강한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6월 기준으로 대부업체 총 대부 잔액 9조1793억원 중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24%(2조1990억원)에 달한다.

대부업체가 저축은행을 인수하려면 ‘향후 5년 내 총자산(대부 잔액) 40% 축소’라는 조건을 갖춰야 한다. 이 조건을 따르려면 이들 대부업체들은 향후 5년간 약 1조1000억원 이상의 자산을 감축해야 한다. 1인당 평균 대부 금액은 약 300만원 정도인데 이를 단순 적용하면 향후 30만~40만명이 대부업체의 대출을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대출 통로가 좁아진 영세 서민들이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몰려갈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업계 전체적으로 영향력이나 활동이 줄어들면 장기적으로 대부업이 다시 음지화될 가능성도 걱정하고 있다.

기존 저축은행업계도 새로운 경쟁자의 진입에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게 됐다. 대부업 계열 저축은행 출범으로 저축은행업계에 ‘연 20%대 중(中)금리 신용대출’ 경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웰컴저축은행과 오케이저축은행은 금융 당국과의 진입 조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초반부터 브랜드 이미지 구축과 신규 고객 유치를 위해 파격적인 금리의 신용대출 상품을 내놓으면서 공격적인 영업을 꾀할 것이다. 기존 중대형 저축은행들도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에 맞서 과거의 영업 방식에서 벗어나 고객 데이터, 수익 모델 등을 분석해 중금리 신용대출 상품을 쏟아낼 것으로 예상된다. 저축은행업계에서 중금리 대출이 확산되면 중소형 저축은행들의 대출 금리 인하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경쟁력이 약한 저축은행들은 영업력이 급격히 떨어지게 될 것이다. 

서민 금융 대부업 공백 누가 메우나

대부업체가 저축은행으로 간판을 바꿔 달면서 이제 서민 금융시장에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각 금융기관의 서민 금융 소홀로 인해 서민에 대한 금융 지원이 약화된 상태인데 이러한 질서 재편이 향후 어떤 영향을 미칠지 미지수다.

금융 당국 입장에서는 대부업계의 축적된 신용평가 노하우 전파 등을 통해 저축은행업계 전반의 혁신 유도를 기대하고 있다. 저축은행업 시장에 대부업체 유입을 허용함으로써 ‘메기 효과’(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토대로 한 플레이어를 등장시켜 기존 저축은행들이 자신에게 적합한 비즈니스를 모색하도록 유도)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부업계와 저축은행업계 모두 새로운 질서에 대비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이들 업계는 서민 금융시장에서 경쟁자의 입장이 아닌 협력자로서 서민 금융시장이 커질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또 이들의 업무 영역을 구분해 서민 금융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명확히 나눌 필요가 있다. 저축은행 등은 당초 설립 목적대로 중소기업이나 가계의 중장기 자금 지원을 하고, 등록 대부업은 단기 건전 무담보 소비자 금융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저축은행 전환으로 축소시켜야만 하는 대부업체의 대출 자산으로 인해 대부업의 무담보 소비자 금융시장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줄어든 대부업체의 대출 자산을 건전한 중형 대부업체들이 잘 이어갈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대부업과 저축은행의 관계가 경쟁이 아닌 협력 및 보완의 관계로 발전할 경우 위축된 제도권 서민 금융시장이 다시 제 역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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