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산업개발, 엉터리 계약에 제 발등 찍다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4.06.18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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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주 자유총연맹 회장 동문에게 자회사 팔았다가 소송전

 “세 살 먹은 어린애도 이런 식으로 계약하진 않을 것이다.”

한국자유총연맹이 대주주인 한전산업개발이 소송전에 휘말렸다. 지난해 2월 자회사인 한산산업개발(한산)과 손자회사인 원일산업개발(원일)을 매각한 게 발단이 됐다. 한전산업개발은 이들 회사를 매입한 홍 아무개 대표를 배임 혐의로 고발하는 한편 사기 혐의로 고소까지 했다. 홍 대표가 매각 대금을 아직까지 주지 않고 있다는 게 주된 이유다. 반면 홍 대표는 적자투성이 회사를 인수해 오히려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며 한전산업개발을 상대로 우발 채무 정산금 지급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한전산업개발은 2013년 2월7일 골재 채취 및 파쇄 업체인 한산의 주식 80만주(100%)를 홍 대표에게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총 매각 금액은 10원이었다. 매각 대상에는 한산이 지분 100%를 갖고 있는 석산 개발업체 원일도 포함됐다. 당시 한산은 자산이 131억8300만원인 반면 부채가 152억700만원에 이르러 자본 잠식 상태에 있었다. 주식에 대한 장부가액은 0원이었다. 한전산업개발은 한산에 지급한 대여금 등 채권 41억원을 상환하기로 약정했다고 밝혔다.

서울 서소문동 한전산업개발(주) 본사 건물 ⓒ 시사저널 박은숙
자회사 한산 주식 80만주 10원에 매각

하지만 홍 대표는 계약금 2억1000만원을 지급한 후 38억9000만원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한전산업개발은 지난해 12월5일 계약 해지 통보를 하고 주식 80만주를 돌려달라고 요구한 상태다. 한전산업개발은 또 한산이 시설 자금으로 우리은행에서 대출받은 70억원에 대한 지급보증을 추가로 연장해주지 않았다. 이로 인해 한산은 현재 경매 처분될 위기에 놓여 있다. 우리은행은 5월30일부로 경매 처분을 하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산업개발 측은 홍 대표가 애초 매각 대금을 지급할 의사가 없었다고 보고 있다. 한전산업개발 관계자는 “홍 대표가 본 계약이 체결되기도 전에 설비 기계 3대를 팔았고 계약 체결 직후에도 한 대를 더 팔았다”고 주장했다. 또 “회사 토지를 담보로 15억6000만원을 받아갔다”고 밝혔다. 주식 60%를 제3자에게 넘긴 부분도 문제 삼았다. 이런 식으로 돈을 마련하고도 매각 대금은 전혀 지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회사를 매입해 정상적으로 경영할 의도가 없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반면 홍 대표는 자신이 오히려 사기를 당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그는 “한산이 5년간이나 적자를 본 회사라 은행 융자를 받을 수가 없다. 그래서 기계 명의를 이전한 것이다. 융자를 다 갚으면 다시 한산에 돌려주기로 한 것이다. 당시 공증까지 받았다”고 주장했다. 또 “낡은 기계 몇 대는 팔아서 회사에 입금했다”고 밝혔다. 토지 부분도 마찬가지라는 입장이다. 주식 양도의 경우 한전산업개발의 권한 밖이라고 주장했다.

오히려 홍 대표는 계약을 체결한 지 두 달여 만인 지난해 4월19일 우발 채무에 대한 정산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그해 7월9일 취하됐다가 올해 3월 다시 제기됐다. 홍 대표가 우발 채무라고 주장하는 부분은 석산 개발업체인 원일이 허가받았던 땅보다 많이 파헤쳐 이를 복구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말한다. 여기서 양측의 주장이 엇갈린다. 한전산업개발은 계약 때 이미 복구비 20억원이 계산됐다는 입장인 반면, 홍 대표는 일부만 계산됐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한전산업개발 관계자는 “본 계약을 채결하기 전 가계약 과정에서 계약 금액 산정을 할 때 복구비용으로 20억원을 책정했다. 홍 대표가 원일 사장을 맡고 있어서 복구비용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텐데 지금 와서 우발 채무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밝혔다. 반면 홍 대표는 “계약 때는 복구 허가 승인이 난 일부만 비용으로 책정된 것이다. 나머지는 허가가 안 나 비용 산정 자체가 안 됐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본 계약서에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없는 등 계약 자체에 허점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당시 계약 상황을 잘 아는 한 인사는 “홍 대표가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질러도 한전산업개발에서는 문제를 제기할 법적 근거가 없도록 계약이 됐다. 어떤 일이 생길지 뻔히 알면서도 계약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계약금만 받고 회사를 통째로 넘겼는데 일이 터지고 나서 고소·고발을 하면 뭐 할 것이냐”고 반문했다.

한전산업개발 측도 계약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한전산업개발 관계자는 “가계약서에는 복구비용이 20억원으로 명확히 나와 있는데 본계약서에는 빠져 있다. 그렇다 보니 홍 대표가 우발 채무를 들고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가계약서에는 잔금 38억9000만원을 완납한 후에 본계약을 체결하도록 돼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잔금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 본계약이 체결됐다. 계약을 서둘러 진행한 부분이 있다”고 인정했다. 이 관계자는 “주식의 경우 허위 양도가 아니라면 소송에 이기더라도 이행 불능 상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전산업개발은 내부 감사를 통해 계약 담당자를 징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금만 받고 회사 통째로 넘겨”

그렇다면 한전산업개발은 왜 이런 식으로 계약을 체결한 것일까. 이와 관련해 홍 대표가 계약 체결 당시 자유총연맹 회장을 맡고 있던 박창달 전 의원의 대학 동문이라는 사실이 계약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자유총연맹은 한전산업개발의 지분 31%를 보유한 1대 주주다. 그 다음으로 한국전력공사가 29%의 지분을 갖고 있다. 실제 한전산업개발의 경영과 인사에 자유총연맹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 대표는 “전혀 사실 무근”이라고 밝혔다. 그는 “대학 동문인 건 맞지만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다. 박 전 회장이 도와준 건 하나도 없다. 오히려 박 전 회장 때문에 손해만 봤다. 이익을 본 게 없는데 무슨 특혜가 있었겠느냐”고 주장했다. 한전산업개발 관계자는 “당시 (한전산업개발) 김영한 대표가 박 전 회장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며 박 전 회장과의 친분이 계약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자유총연맹 고위 간부 출신의 한 인사는 “자회사를 홍 대표에게 팔라는 압력이 상당했는데, 당시 김 대표가 배임이라며 반대해 여러 차례 무산됐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영한 전 한전산업개발 대표는 “당시 매각을 반대했다. 공정하게 한다고 해도 친구니까 오해를 살 수 있다고 봤다. 그리고 조건이 안 맞으니 팔지 못하던 것인데, 박 전 회장은 내가 일부러 안 판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이사회에서 이에 대한 질책이 있었다”고 밝혔다. 김 전 대표는 “하지만 매각 과정에 불공정한 일이 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반면 당시 계약 상황을 잘 아는 한 인사는 “홍 대표가 회사를 인수할 때 돈이 한 푼도 없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박 회장과의 친분 때문에 한전산업개발에서 홍 대표에게 함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계약이 불합리하더라도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한 정치권 인사는 “홍 대표가 박 전 회장에게 이득을 줬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전산업개발이 이 같은 구설에 휘말리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유총연맹에서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내는 관행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2월20일 임명된 이삼선 대표는 이한동 전 자민련 총재가 국무총리로 있을 때 비서실에서 비서관으로 근무했다. 이보다 한 달가량 전에 취임한 우종철 자유총연맹 사무총장도 2002년 대선 출마를 준비하던 이 전 총재의 특보로서 이 대표와 함께 캠프를 이끈 바 있다.

올해 3월에 취임한 윤기영 감사는 새누리당 중앙위원회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자유총연맹 부총재이기도 한 윤 감사가 한전산업개발에서 자리를 맡은 것을 두고 유력 정치인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윤 감사는 “그 정치인은 사적으로 만나본 적이 없다. 얼토당토않는 말이다”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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