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억이든 5억이든 마련할 테니 공천해달라”
  • 김지영 기자 (abc@sisapress.com)
  • 승인 2014.06.25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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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우 의원 공천헌금 파문으로 드러난 지역 정치 폐해

지역주의 정치가 판을 치면 지역 패권 정당의 공천은 곧바로 당선으로 연결된다. 그 때문에 당내 공천 경쟁이 본선(선거)보다 더 치열해지기 마련이다. 공천 경쟁은 사실상 공천권을 쥔 지역구 국회의원과 예비후보자 간의 먹이사슬로 변모한다. 그 폐해가 바로 공천 헌금이다. 최근 불거진 유승우 의원의 공천 헌금 파문이 그렇다. 이번 파문은 전통적으로 새누리당 텃밭이었던 경기도 이천에서 일어났다.

유승우 의원은 2012년 19대 총선 때 이천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국회의원으로선 초선이지만, 이천 지역에서 유 의원의 위상은 대단했다. 그는 이천에서 태어나 이천 바닥부터 훑으며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그는 이천농고를 졸업하고, 1977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발을 들였다. 1994년 관선 이천군수에 임명됐고, 95년 실시된 제1회 지방선거에서 첫 민선 군수로 당선됐다. 96년 이천이 군에서 시로 승격된 이후에도 98년과 2002년 지방선거에 연이어 이천시장에 당선하며 3선을 역임했다. 2008년 18대 총선 때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여주·이천 지역구 후보로 나섰으나, 당내 경선에서 여주 출신의 이범관 후보에게 밀렸다. 19대 총선 때 이천이 여주와 분리돼 단일 선거구가 되면서 그는 후보 지명은 물론 무난히 당선까지 됐다.  

유승우 의원(가운데)은 공천 헌금 파문으로 지난 6월18일 새누리당에서 제명됐다. ⓒ 시사저널 자료사진
유 의원과 갈등 일으킨 현역 시장, 끝내 탈당

이천 지역에서는 유 의원을 말할 때마다 반드시 따라다니는 또 하나의 이름이 있다. 바로 조병돈 현 이천시장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남다르다. 우선 두 사람은 이천농고 동기동창이다. 유 의원이 이천시장이었을 당시 조 시장은 건설도시국장으로 일하며 유 의원을 보필했다. 유 의원이 3선 제한에 묶여 2006년 지방선거 출마를 못 하게 됐을 때 그 후임으로 나선 이가 바로 조 시장이다. 조 시장도 이천 지역에서 승승장구했다. 2006년에 이어 2010년 시장 선거에서도 연이어 승리했다. 그리고 그는 이번 6·4 지방선거에서 3선 도전에 나섰다. ‘친구’ 유 의원과 똑같은 정치 코스를 밟는 셈이었다. 그래서일까. 지역 내에서는 “조 시장이 유 의원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등장하고 있다”는 얘기가 회자됐다. 조 시장이 2016년 총선에 출마할 경우 유 의원의 위치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이 때문에 유 의원이 조 시장을 견제한다는 등 두 사람 간 갈등설이 불거졌다.

하지만 지역에서 국회의원과 기초단체장 사이에 힘의 우열은 뚜렷했다. 의원은 지역구 내 지방선거 출마자들의 공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특히 유 의원은 경기도당 공천관리위원장까지 맡았다. 결과적으로 조 시장은 새누리당 공천을 받는 데 실패했다. 그 배경에 유 의원이 있다는 게 지역 내에서 정설로 떠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조 시장을 도왔던 임송만 홍보팀장의 말이다. “새누리당 시장 후보 선정 과정에서 실시된 모든 여론조사에서 우리가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천시를 여성 전략 공천 지역으로 한다는 소식을 뉴스를 보고 알았다. 유 의원에게 전화했더니 외국에 나가 있더라. 전략 공천에 따라 새누리당 후보로 나선 김경희 후보는 조 시장 밑에서 부시장을 지냈다.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는 얘기를 여러 차례 했는데 갑자기 전략 공천 후보로 선택됐다. 정말 유 의원이 전략 공천을 막으려고 했다면 공천위원장으로서 충분히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 텐데 중앙당 차원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결국 우리를 견제하려는 것 아니겠나.” 조 시장은 새누리당의 전략 공천에 반발해 탈당했다. 그리고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당적을 옮겨 이번 선거에서 3선 시장 도전에 성공했다.

이 와중에 유승우 의원이 다른 새누리당 예비후보로부터 돈을 받은 정황이 드러났다. 지난 3월31일 박연하 전 이천시장 예비후보(여·58)가 경기도 광주의 한 스포츠센터에서 유 의원의 부인 최 아무개씨에게 1억원을 건넸다. 새누리당 이천시장 후보로 공천되는 것을 도와달라는 청탁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닌 다른 여성 후보가 전략 공천될 것이 확실해지자 4월8일 유 의원 집을 찾아가 1억원을 돌려받았다. 이 과정이 녹음되면서 그 자리에 유 의원도 함께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유 의원 입김 크니까 돈까지 바치려 한 것”

뉴스타파가 입수한 녹취파일에 따르면, 박씨는 4월8일 유 의원 집을 찾아가 “(후보) 경선이라도 하게 해달라.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고, 유 의원은 “내가 결정권이 없다. 내가 아무리 얘기해도 전략 공천이라서 방법이 없다”고 답했다. 그러자 박씨의 전 남편은 자신들이 1억원을 줬음을 유 의원에게 상기시키며 “나머지 4억이든 5억이든 정치자금 마련할 테니 이 사람(박씨)을 경선을 시켜주든지 공천을 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자 유 의원의 부인은 집 안에서 돈을 가져와 박씨에게 가져가라고 말했다. 부인 최씨는 이 자리에서 처음 돈을 받을 때 돌려주려 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다른 녹취파일에도 최씨가 박씨의 보좌관 역할을 하는 강 아무개씨와의 통화에서 “살려줘. 무서워. 다 잘될 수 있잖아”라고 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뉴스타파는 보도했다. 양측 간에 뭔가 거래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셈이다.

실제 이 소란이 있은 후 박연하씨는 새누리당 이천시의회 비례대표 1번을 받았다. 박씨의 권력욕이 공천 헌금으로 이어졌다는 얘기도 나온다. 박씨는 이번 선거 말고도 지난 18대와 19대 총선에서 여주·이천 선거구에 후보로 출마한 적이 있다.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수원지검 여주지청은 유 의원에게 1억원의 공천 헌금을 제공한 혐의로 박씨와 보좌관 강씨를 구속했다. 돈을 받은 유 의원의 부인 최씨도 구속됐다. 여주지청의 한 관계자는 “현지에서는 시의원으로 출마하려면 5000만~1억원, 도의원은 3억~5억원을 줘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며 “유 의원이 비록 초선이지만, 이 지역 시장을 3선까지 하고 현직 국회의원인 만큼 지역 상황을 잘 알지 않겠는가. 유 의원의 입김이 크니까 돈까지 바쳐서 (박씨가) 정치를 하려고 한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실제 이번 6·4 지방선거에서 이천 지역에 출마한 한 정치인은 “(유 의원이) 행사에 나타나면 병아리가 어미닭 따라다니듯 (지역 정치인들이) 졸졸 (유 의원을) 쫓아다녔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이 이천 지역을 여성 전략 공천으로 결정한 것도 유 의원 작품이라는 정황이 제기되고 있다. 새누리당은 지난 3월17일 밤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어 경기 이천시를 여성 우선 추천 지역으로 선정했다. 이에 따라 새누리당 이천시장 후보는 경선 절차 없이 전략 공천하게 됐다. 이때 후보로 선택된 이가 김경희 경기개발연구원 사무처장이다. 그런데 유 의원이 새누리당 이천시장 후보를 여성 우선 추천 지역으로 선정하기 나흘 전에 김 사무처장이 6·4 지방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지 자격 여부를 선거관리 당국에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유 의원은 이 같은 모든 의혹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유 의원 측 관계자는 “돈을 받은 시점이나 당시 상황이 보도된 내용이 사실과 다른 점이 많다. 진실은 재판에서 가려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6월18일 유 의원을 제명하고 출당 조치했다. 최흥석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방선거에서 지역 국회의원이 선거 때마다 동원돼 중앙당에 종속되고, 그 과정에서 공천 과정이 투명하지 않게 전개되는 것이 기초자치단체 공천의 가장 큰 문제”라며 “상향식 공천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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