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현실 속에서 유연하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4.07.02 11: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교조 탄생 산파역 김진경 초대 정책실장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초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진경씨를 6월25일 서울 인사동에 있는 한 찻집에서 만났다. 전교조 탄생의 산파 역할을 한 그는 한때 전교조와 각을 세우기도 했다. 학생보다 교사 이익만 대변한다는 비판이 그것이었다. 그는 지금의 교육부와 전교조의 정면 대립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는 여전히 전교조에 대해 강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전교조가 교육 개혁에 중추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는 충고를 잊지 않았다.  

김씨는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나와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1985년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1년2개월 복역한 후 전교조 창립에 관여해 초대 정책실장을 지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끝까지 복직하지 못하다가 2000년 교실로 돌아갔으나 3년 후 교단을 떠났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부터 1년 동안 대통령 비서실 교육문화비서관으로 근무했다. 책을 내 경쟁력 위주의 교육 정책을 비판했으며 현재는 동화책을 쓰는 작가로 활동중이다.

 

ⓒ 시사저널 최준필
교육 개혁, 말은 많지만 정작 잘 진행되지는 않는 것 같다. 

1990년 초 전교조 교사들이 복직했더니, 교실에는 1980년대 아이들과 전혀 다른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그 시기는 학생들이 머리를 염색하기 시작한 즈음이었다. 나도 2000년에 복직했을 때 교실 뒤편 쓰레기통에서 갈기갈기 찢긴 교과서가 수북이 쌓여 있어서 충격을 받았다. 시대에 따라 학생들이 변한 것이다. 그러니 옛날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단절될 수밖에 없었다. 이 단절이 20년 이상 이어지면서 교육은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태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회복하지 않고는 교육 개혁이 불가능하다.

아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헝겊으로 만든 원숭이 인형과 철사로 만든 원숭이 인형이 있다. 두 마리의 새끼 원숭이를 각각 ‘헝겊 원숭이’ ‘철사 원숭이’와 지내도록 했다. 헝겊 원숭이와 자란 새끼 원숭이는 정상에 가까웠지만 철사 원숭이와 같이 산 새끼 원숭이는 비정상적으로 성장했다. 이 실험은 관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중요한 연구다. 과거에는 학교에 지식 전수 기능을 요구했지만, 요즘처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학교의 지식 전수 역할은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기능은 헝겊 원숭이 역할이다. 예전에는 한 가정에 자식들이 많아 서로 부대끼며 살았고, 동네에서 친구들과 놀았고, 이웃집 아저씨·아줌마의 보살핌도 받았다. 지금은 맞벌이 가정에서 혼자 지낸다. 또래가 없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아이들이 변하지 않을 수 있나. 이들에게는 헝겊 원숭이가 필요하다.

‘헝겊 원숭이’를 현실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일제 식민지 시대에 교육은 중앙에서 내리찍는 방식으로 도입됐다. 광복 후 각 지역에 우후죽순으로 학교가 생겼다. 동네에서 땅을 내놨고 집집이 쌀을 기부해 학교를 설립하면서 그 지역 특성에 맞는 학교가 생겼다. 그런데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지역색을 띤 학교가 사라지고 다시 중앙에서 찍어 누르는 방식의 교육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다시 지역 특성에 맞는 학교를 만들어야 서울 강남 중심의 헤게모니를 깰 수 있다.

서울 강남의 헤게모니란 무엇을 말하는가.

교육 관료가 강남에 살고 남들이 쫓아오지 못하도록 제도와 환경을 만들어왔다. 아이들을 남들보다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사교육이 난립했다. 모두 서울 강남을 따라 아이를 공부시키고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만 한다. 이런 점을 깨야 한다.

구체적인 방법이 있나.

혁신학교로 탈바꿈하고 지역 학교들이 클러스터를 구성해야 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놔두더라도 고등학교는 그 지역에서 연합해 공동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지자체와 교육청이 지원해서 질 높은 교육을 해야 한다. 또 교육의 질도 공동으로 평가하고 고교 내신에도 반영하면 된다. 이를 대학이 받아들이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래서 지역 학교의 학생들이 좋은 대학에 가고 인정받으면 서울 강남 중심의 교육 헤게모니는 서서히 무너지게 된다.

지역 특성을 살린 질 높은 교육이란 무엇인가.

예를 들면 강원도에는 숲이 많으니 임업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서울대 임업 관련 학부에 임업을 전혀 모르는 서울 강남 지역 고등학교 졸업생보다 강원도에서 교육받은 아이들이 들어가야 옳지 않겠나. 지역 고등학교 클러스터가 대학과 MOU(양해각서)를 맺어 그런 학생을 뽑도록 하면 된다.

현실적으로 가능하리라 보는가.

당장 모든 고등학교가 그렇게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단 몇 곳이라도 그런 시도를 하면 서서히 전국으로 확산할 것이다. 예를 들어 세종시에 밀집된 고등학교 교사들이 모여 교육 정보를 공유하고 우수한 교육 프로그램을 짜서 특출한 아이들을 배출하고, 대학에서 그 애들을 뽑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면 된다. 작은 구멍 하나로 큰 둑이 무너지는 것처럼 작은 시도가 한국 교육 개혁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한두 지역에서 이런 시도가 성공하면 각 지자체 교육감 선거에 나온 후보들은 그와 관련된 공약을 내놓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의 전교조는 그런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같은 노력을 전교조 교사들이 할 수 있다고 본다. 아이들에게 관심을 두고 그들 개개인의 특징을 파악하면 각 지역에 맞는 좋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측이 대거 등장한 배경에는 학교 서열화에 지친 중산층과 학생들이 있다. 이들이 선거를 통해 교육에 변화를 요구한 것이다.

전교조가 초심을 잃었다는 지적이 있다.

초심이 사라진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과거와 현재의 전교조를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시대가 변하면서 전교조도 자연스럽게 적응해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과거처럼 교사 개인이 참교육을 실천하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전교조만이 교육에 대해 발언하는 집단이 아니다. 전교조의 발언 위상도 과거처럼 크지 않다. 교육 현장에서 전교조 교사들은 열심히 교육에 전념하고 있다. 다만 전교조는 교육 문제의 근원을 정확하게 보고 시야를 넓혀 좀 더 적극적인 활동을 펼 필요는 있다.

시사저널이 일반 학부모와 학생, 교사에게 전교조를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더니, 전교조 활동은 지지하지만 아이들에게 이념 교육은 곤란하다는 우려가 공통적으로 제기됐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런 우려가 있다. 반대편(보수)에서 이념 교육을 한다고 공격할 때 내세우는 점이다. 전교조는 구성원의 의식을 규정하는 단체가 아니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문제가 됐다고 해서 그가 몸담았던 중앙일보가 친일파라고 할 수 있겠나. 말이 안 되는 논리다. 약 6만명의 전교조 교사마다 이념과 성향이 다르다. 일부 그런 교사가 있겠지만, 전체 전교조는 그렇지 않다.

일반인은 전교조가 교육 외적인 이슈에 나서는 것은 정치적 행동이라고 걱정한다.

한국은 분단된 특수 사회여서 일반적 상식이 행동으로 옮겨진 것이라고 본다. 교사도 시민이어서 편향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원칙은 그렇지만, 전교조가 현실 속에서 좀 더 유연하고 현명하게 대처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