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일본 총리에게
  • 김재태 | 편집위원 ()
  • 승인 2014.07.16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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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저지의 펠리세이즈파크 시립도서관 앞에는 작지만 의미 깊은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의해 처참한 인권 유린을 당한 위안부들을 기리기 위한 기림비입니다. 지난 7월2일(현지 시각) 일본 오사카 부 사카이 시의회의 히데키 이케지리 의원이 이곳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제임스 로톤도 시장을 만나 “양국 간 평화와 미래 세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며 위안부 기림비를 철거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로톤도 시장은 “당신을 이곳에 오게 한 그 에너지로 일본에 돌아가 일본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따끔한 일침을 가하며 그를 돌려세웠다고 합니다.

가미카제 자살특공대원의 유서를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시키려 했던 일만큼이나 어이없고 황당한 이 적반하장 식 해프닝을 서두에 꺼낸 이유는 간단합니다. 미국의 한 작은 도시 시장마저 곤혹스럽게 한 그 시의원의 행동에서 당신이 지금까지 보여온 시대착오적 언행 혹은 세계사적 인식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각의 결정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밀어붙인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은 일본도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자위대 족쇄를 풀었지만,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결정된 그 순간 이미 일본은 ‘보통 국가’가 아닌 ‘위험 국가’가 되었습니다.

당신은 지난 6월29일 도쿄 신주쿠에서 한 남성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반대하며 분신자살을 시도한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국민 한 사람의 안위까지 살뜰히 챙겨야 할 국가 지도자가 한 국민을 생사의 갈림길로 밀어붙인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당신은 물론 일부 소수의 저항쯤으로 치부할지 모르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주변 국가는 물론이고, 당신이 속한 일본 국민들마저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최근 마이니치신문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51%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또 그 이전에 실시된 또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헌법 개정 절차를 밟지 않고 내각의 판단으로 헌법 해석을 변경하려는 방식에 대해 ‘적절하지 않다’고 한 응답이 67%로 압도적이었습니다.

국민의 과반수가 반대하는 사안을 거침없이 밀어붙이는 당신의 독단은 철포도 없이 철포와 맞서 싸운다는 당신 나라의 말 ‘무철포(無鐵砲·무뎃뽀)’의 만용과 우매함을 떠올려줍니다. 또한 국민의 의사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군국주의의 망령에 사로잡혀 자국 국민들을 도탄에 빠뜨리고, 아시아 일대를 피로 물들였던 당신네 조상들의 ‘광기의 시대’를 되돌아보게 해줍니다.

어느 나라에서든 지도자가 국민의 뜻을 거스를 경우 그 결과는 자명합니다. 국민의 의사를 거역하고 역주행한 지도자의 말로를 새삼 일일이 거론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당신이 든든한 우군이라고 믿는 미국도 지금 당장은 중국과의 세력 관계를 고려해 당신을 편들어주고 있지만,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것이 외교의 일상사입니다. 국민과 맞서 싸울 만큼 든든한 배포를 지닌 당신이 그것을 모를 리는 없겠지요. 이래저래 일본군의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기 전에 당신 스스로를 지킬 자위권부터 챙겨야 할 때가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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