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반환 미적거리다간 북한에 다 넘어간다
  • 혜문 스님 |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
  • 승인 2014.08.0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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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법정, 한일협정 문서 공개 재판에서 ‘문화재 목록 비공개’ 판결…한·일 간 새로운 갈등 불씨

독도 문제 등 영토 분쟁과 역사 왜곡이 그동안 한·일 관계를 악화일로로 접어들게 했다면, 향후에는 문화재 반환 문제가 양국 간 갈등 요소에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일본 정부가 과거 일제 강점기 약탈해 간 우리 문화재 목록을 은폐해왔고, 또 뒤늦게나마 공개할 것을 요구하는 재판 청구에서 이를 거부하는 법원 판결이 나와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될 전망이다. 

사건의 발단은 2008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와 최봉태 변호사가 일본 시민단체와 함께 원고가 되어 ‘한일협정 문서 공개’ 재판을 청구하면서였다. 소송을 제기한 지 4년 만인 2012년 10월11일 일본 도쿄 지방법원 민사2부(재판장 가와카미 유타카)에서 역사적인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한일협정 문서 공개에 대해 ‘승소 판결’을 내렸다. 물론 100% 공개는 아니지만,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공개하라는 취지였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한일협정 문서 전면 공개 요구를 거부해왔다. 북·일 관계 및 북·일 조약에 미칠 영향, 한·일 간의 신뢰 관계에 손상을 줄 수 있다는 점, 독도 문제를 둘러싼 외교적 분쟁, 해상 경비에 대한 기밀 사항, 일본 천황과 한국 정부 고위직의 대화 내용 공개가 미칠 부정적 영향 등을 이유로 들었다.

2012년의 승리는 소송을 제기한 지 4년 만에 이룬 쾌거였다.  판결이 나온 후 이용수 할머니는 재판장을 향해 “고맙습니다. 재판장님”이라며 깍듯이 인사까지 했다. 동행했던 태평양전쟁 희생자 유족 등도 일제히 감격에 겨워 만세를 불렀다. 당시 승소는 지금까지 일본 외무성을 상대로 소송을 내 유일하게 이긴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2012년의 승리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로부터 4년 후인 지난 7월25일 도쿄 지방재판소 고등법원은 “한일협정 문서 중 문화재 관련 문서 등을 비공개로 한다”고 판결했다. 이 문서가 공개될 경우 “문화재 반환 문제가 재연될 우려”가 있고, 향후 북·일 수교 시 일본 정부의 입장이 곤란해질 수 있다는 일본 외무성의 입장을 반영한 판결이었다.

일본 국립박물관이 과거 일제가 강탈했을 개연성이 큰 조선 왕실의 투구와 갑옷 등을 소장하고 있다고 공식 인정함에 따라 환수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 중인 임금의 의전용으로 추정되는 ①용봉문 갑옷 ②고종의 것으로 여겨지는 왕실 투구 ③고종의 관복(동달이)과 여성용 당의(왼쪽). ⓒ 연합뉴스
일본, 우리 문화재 불법 취득 사실상 시인

물론 이번 판결이 1심 판결 중의 내용을 뒤집는 것이긴 하지만, 나름으로 의미 있는 결과도 도출됐다. 당초 1심 판결에서 비공개로 설정되었던 문서 중 2점이 이번에 추가로 공개됐다. 또한 일본 외무성이 과거 한일협정 당시 문화재 반환 문제가 졸속 처리되었다는 점과 일본 국립기관 소장 문화재들이 불법적이고 부도덕한 방식으로 취득되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시인한 것도 이번 2심에서 얻은 소기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원고 중 한 명인 법무법인 삼일의 최봉태 변호사는 “한일협정으로 문화재 청구권 문제가 종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일본 외무성과 법원이 인정한 판결이다. 문서가 공개될 경우, 문화재 반환 문제가 재연된다는 것이 판결에 언급됨으로써 기존의 청구권이 해결되었다는 주장이 결국 허위란 것이 입증되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실제 필자가 판결 요지와 관련 자료를 분석한 결과, 문화재 반환 문제가 새로운 이슈로 떠오른 중요한 진전이었다. 특히 문화재 관련 문서에 대해 ‘공개될 경우 북한이나 한국이 반환을 요구하면 (일본이) 궁지에 몰리게 된다’고 언급한 대목은 인상적이었다. 최근 전개되고 있는 북·일 수교 협상과 관련해 북한이 문화재 반환에 관한 자료를 입수하게 될 경우, 일본의 국익에 문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먹칠을 한 채 공개한 일본 내 한국 문화재 목록. ⓒ 연합뉴스
‘오구라 컬렉션’ 불법성 주장, 우리 정부 묵살

비공개 처리된 문서 항목에는 ‘북조선과의 국교 정상화를 상정한 경우, 일본 정부의 재산·청구권 문제의 처리 방법에 관한 기본적인 사고방식의 검토 내용이 기재돼 있어 공개가 어렵다’고 되어 있다. 또 다른 페이지에는 ‘정보가 공개돼 (문화재) 입수 시기나 입수 방법 등이 밝혀지면 북조선 및 한국이 앞으로 우리나라(일본)와 교섭함에 있어 문화재 등이 당연히 자신들에게 귀속돼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단서를 얻는 것이 된다. (중략) 우리나라에 대해 일방적이고 자의적으로 상기 문화재 등의 인도나 대상 조치를 청구해오는 것이 용이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번 판결 이후 국내 언론에는 일본 정부가 일제 강점기에 반출한 한국 주요 문화재 목록을 장기간 은폐했다는 점이 주로 보도됐다. 하지만 일본이 공개 거부 이유로 북·일 수교를 내세운 것을 특히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이 사실상 문화재를 북한에 돌려주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의 진술로 볼 때 만약 우리 정부가 문화재 반환에 미온적인 태도로 나선다면, 일본 국공립기관 소장 문화재 중 일부가 북한으로 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우리 정부는 이번 사건의 판결을 접한 뒤, 7월29일 외교부 논평을 통해 “정부는 불법·부당하게 반출된 문화재 환수를 위해 외교적 노력을 다할 것이며, 제반 사항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또 “반환 문제는 불법·부당하게 반출되었는지 여부에 대한 반출 경로 조사와 양자·다자 조약 등 국제법적 검토가 필요한 사항”이란 점도 분명히 했다. 그러나 과연 이 같은 외교부의 논평이 얼마나 실질적 효과와 노력으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다.

사실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이 일제 강점기에 한반도에서 불법적으로 문화재를 약탈한 정황은 우리 문화재청이나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측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도쿄국립박물관이 소장한 ‘오구라 컬렉션’의 경우 경주 금관총 유물, 경남 창녕 출토 유물 등이 일제 강점기에 약탈된 것으로 이미 오래전 확인됐고, 출토지와 불법적인 유통 경로까지 다 밝혀진 지 이미 오래다.

그러나 정부 당국은 오구라 컬렉션의 불법성을 지적하고 적극적으로 반환 요청을 하라는 시민단체의 요구를 사실상 묵살한 채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미 출토지와 불법성을 확인하고도 아무런 조치 없이 세월을 보내온 정부 당국이, 이번 한일협정 문서 공개로 불법 약탈 사실을 추가 확인했다고 해서 갑자기 적극적 행동으로 나서는 등 변화한 모습을 보여주리라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정부는 2011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설립하고 ‘문화재 환수’에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공언했지만, 3년이 경과한 지금까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국외 소재 문화재에 대한 조사와 매입 문제에만 매달려왔을 뿐, 실질적으로 약탈된 문화재 환수에 관심을 보인 적은 없었다. 일본의 문서 비공개 결정이 억울하지만, 정부의 적절한 대응이 기대되지 않는 점 또한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다.

부디 이번만큼은 문화재 반환 문제가 사회 여론화되어 그동안 미온적 태도로 일관해온 정부 당국이 좀 더 사명감 있는 자세로 한·일 간 문화재 반환 문제에 임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더 늦으면 이 소중한 문화유산들은 아마 북한으로 반환되어 우리 국민들을 더욱 큰 충격에 빠뜨리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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