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게 한판 살다 가는 거다, 인생 뭐 있나?”
  • 조철│문화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8.20 15: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설집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펴낸 천명관

천명관 작가(50)는 총천연색 영화를 찍고 있다. 그런데 이번 소설집은 오래된 흑백영화 같다. 혹은 총천연색 필름을 쓸 여력이 없어 오래된 흑백 카메라로 찍은 단편영화 같다. 소설집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기억은 현실에서 남들에게 보이는 것보다 칙칙하다. 보이기 싫은 일상까지 추적한 작가의 집요한 관찰 혹은 상상 탓이다. 그가 늦깎이로 매달리고 있는 영화는 어떨지 궁금해진다.

천 작가는 젊어서 밑바닥부터 경험해본 영화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아니 불혹을 넘어 흔들리지 않았고 지천명이 되어 모종의 계시를 받았나 보다. 그는 소설집을 낸 이후로 영화 제작에만 몰두하고 있다. 7년 만에 내는 소설집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에 공을 들인 것을 보면 그가 준비하는 영화도 소설집과 색깔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이건 독자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 박민주 제공
육체노동자들의 목소리가 큰 이유

풀리지 않는 인생, 고단한 밑바닥의 삶이 작가 특유의 재치와 필치로 살아나는 여덟 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웃음이 나면서도 한순간 먹먹해지는 감동을 얻게 되니 말이다. 골프숍 점원, 보험회사 영업사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서른이 넘어 영화판에 뛰어들었던 그이기에 소설 속 주인공의 마음을 다 이해하나 보다. 아니 그가 겪었던 신산한 삶의 곡절 덕에 감동을 주는 이야기꾼이 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육체노동자들은 목소리가 크다. 화통을 삶아 먹은 것 같다. 술집을 가든 당구장을 가든 제일 큰 소리로 떠드는 이들은 노가다들이다. 그것은 그들이 늘 시끄러운 공사판에서 일하느라 소리를 지르는 게 습관이 되어서다. 아무도 그들의 말을 귀담아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래고래, 악을 쓰며 고함을 지르는 것이다.”

이번 소설집의 표제작에서 육체노동자에 대해 말하는 대목이다. 그의 소설은 고통받고 방황하는 절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삶과 죽음, 꿈과 현실을 오가며 때로는 통쾌하게 때로는 쓸쓸하게 담아낸다. 그들은 한때 잘나가던 트럭운전사였지만 이혼 후 가족이 함께 밥도 먹지 않는 하루살이 막노동꾼이거나, 부푼 꿈을 안고 귀농했지만 ‘파리지옥의 끈끈이’에 들러붙어 괴로워하는 파탄 난 가족이거나, ‘3만원의 행운’을 바라며 매일 밤 어두운 도로를 오가는 대리기사들, 혹은 섬에서 혹독한 삶을 감내해내야 하는 질투 많은 여자들이다.

사회의 주류에 편입된 듯이 보이는 등장인물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인기 작가는 어린 시절 폭력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며 여전히 내적으로 방황하거나, 20년 이상 출판사에서 일하며 편집장까지 지낸 주인공은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리며 밤새 잠들지 못한 채 길고 외로운 시간을 견뎌낸다.

“언제부턴가 지독한 불면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게 된 거였다. 완전한 체념이었다. 더는 애면글면 잠을 이루려고 애쓰지 않았고 체내에 중금속이 축적되듯 피로가 쌓여 당장 쓰러질 것 같아도 울지 않았다. 다만 깊고 달콤한 잠에 대한 갈망과 아득한 상실감만이 그녀의 깡마른 몸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가수면의 상태로 꿈속을 헤매거나, 현실을 악몽처럼 살아가거나, 혹독한 현실과 꿈의 괴리를 메우지 못해 좌절한다. 불면 혹은 절망의 시간을 버텨내기 위해 나약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은 다름 아닌 투약 또는 복용이다. 밥을 먹고 나면 소화제를 먹고, 잠을 자기 위해 수면제를 먹고, 머리가 지끈거려 진통제를 먹고, 섹스를 위해 비아그라까지 먹어야 하는 ‘화학적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암에 걸리지 않기 위해 비타민을 과다 복용하기도 한다. 대리운전을 하기 위해 신경안정제에 의지한 채 몽롱한 상태로 운전을 하고, ‘노가다’들은 소주를 약 삼아 마시며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꼬이는 인생과 함께 달려주는 슬프고도 따뜻한 유머

천 작가가 이야기의 주제로 삼은 것은, 비극의 원인은 있지만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그렇게 됐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인생사의 비애와 아이러니다. 비극의 궁지에 몰린 인물들이 난관을 헤쳐 나가기 위해 택한 해결책들은 예상하기 힘들 만큼 극단적인 방법이거나 독자의 기대와 오히려 엇나가는 방향이다. 소설의 아이러니는 단순한 농담이나 해학을 넘어선 비극적 깨달음이라는 데 이르면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지는 것이다. 주인공들이 자신의 파편일 수도 있고, 가족이거나 이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비극의 원류를 알 수 없어도 삶이 지속되듯 인생의 목적지가 없어도 우리는 어디론가 향하고 있고, 그 과정에는 대부분 필연 같은 우연이 작용한다.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에서 작가는 인생이, 예기치 않게 손에 들어온 칠면조가 지독하게 따라붙는 상황과 같을지도 모른다고 귀띔한다. 이 우연의 산물은 어느새 ‘당당한 존재감’으로 삶을 새롭게 지배하는 무엇이 되기도 한다.

냉동창고에서 일을 하다 우연히 거대한 냉동 칠면조 고기를 받게 된 노동자. 그는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고 ‘지독하게도 따라오는’ 칠면조를 들고 다니다가 길에서 만난 빚쟁이를 칠면조로 흠씬 두들겨 패주면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런 다음 노동자는 벤츠 트럭을 훔친 뒤 가족이 다시 한자리에 둘러앉을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전 부인을 만나러 간다. 아내는 그가 불쑥 내미는 칠면조를 반가워할까? 이 예측할 수 없는 길을 함께 달려주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주인공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가 밟는 가속 페달에 힘을 실어주며 응원하게 된다.

훔친 트럭의 엔진 소리를 들으며 달리는 동안 노동자의 마음은 조금씩 가라앉는다. 두려움도 걱정도 사라진다. 11톤 트럭 안에 앉아 있으니 든든한 기분도 드는 것이다. 깨어지지 않는 어떤 단단한 보호막이 자신을 지켜주는 느낌이랄까. 노동자는 이렇게 되뇐다.

“그래, 까짓것. 거칠게 한판 살다 가는 거다. 인생 뭐 있나?”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