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 김재태 | 편집위원 ()
  • 승인 2014.09.02 13:3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군대에서 일어난 각종 폭력 사건의 여진이 쉬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현직 도지사의 아들이 가해자로 조사를 받은 사실까지 알려져 충격이 더합니다. 그러나 윤 일병 사건과 같은 군대 내 폭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30년 전에도 있었고 10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뿌리 뽑히지 않은 채 계속 이어져오는 것은 폐쇄적인 군대 문화와 군 간부들의 안일한 대응에도 그 이유가 있습니다. 자신의 진급에 지장을 받을까 봐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축소·은폐에 급급해온 행태가 폭력의 뒷배가 되어준 것입니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지는 것을 두려워하며 회피하기 위해 꼼수를 부리는 동안 폭력은 더욱 잔혹한 모습으로 진화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최근에 일어나는 군대 내 폭력을 보면 차마 인정하고 싶지 않은 어두운 단면이 또 하나 드러납니다. 바로 폭력의 ‘수직 계열화’입니다. 학교에서부터 군대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왕따’의 사슬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강고하게 펼쳐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 아이들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폭력의 공포에 갇혀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축소·은폐되고 외면받는 사이 견고하게 구조화된 폭력 앞에서 ‘안전’을 말하는 우리의 입이 얼마나 초라하고 위선적인지 부끄럽기만 합니다. 우리 모두가 아이들 앞에서 세월호의 안내 방송처럼 대책도 없이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이 시대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확연하게 구분될 것이라고, 또 구분되어져야만 한다고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목소리의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일부에서는 스스로 쓰레기가 되어버린 언론을 앞세워 변화의 기운을 억누르기 위해 역습을 노리는 듯한 기운마저 느껴집니다.

세월호 이후의 세월은 아무것도 바꿔놓지 못한 채 흘렀습니다. 국민 안전은 말로만 외쳐졌을   뿐 폭력의 공포는 더욱 깊어졌습니다. 최근 안전행정부가 공개한 ‘4대악 근절 국민 안전 체감도 조사’에서는 국민 10명 중 4명이 우리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고 답했다는 결과도 나왔습니다. 박근혜정부가 내세운 ‘4대악 근절’의 효과에 대해서도 국민 과반수가 회의적 반응을 보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 아버지와 어머니는 참 많이 불안하고 부끄럽습니다. 입대를 앞둔 아이를 향해 “우리 시대에는 매일 얻어맞을 정도로 구타가 심했지만 이젠 군대도 많이 좋아졌다더라”라며 안심시켰던 말은 어이없는 거짓말이 되어버렸습니다. ‘학교에 가면 좋은 친구도 많이 만날 수 있다’고 달랬던 말도 그렇습니다. 이제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나날이 ‘대략난감’입니다.

민족의 큰 명절인 한가위입니다. 모처럼 흩어져 있던 가족·친지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때입니다. 함께하는 그 자리에서 가까이 있는 아이들의 표정을 한 번 찬찬히 바라보십시오, 그들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지, 또 슬픔에 차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아이들의 손을 꼬옥 잡아주십시오. 언젠가는 모두가 밝게 웃으며 살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어깨를 다독여주십시오. 그것 말고는 더 해줄 게 없다 해도, 그렇게라도 아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시대가 참 슬퍼도, 슬픔에 지지는 말아야 합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