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의 몰락, 정치의 몰락
  • 김재태 | 편집국장 ()
  • 승인 2014.09.24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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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에는 ‘선거를 잘하는 당’과 ‘선거를 지지리도 못하는 당’, 두 개의 정당이 있습니다. 충성도 높은 보수층의 지지를 끌어당기는 데 능란한 제1당은 연전연승하고, 고정 지지층마저 챙기지 못하는 제2당은 선거마다 딱 부러진 전략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한 채 연패를 거듭합니다. ‘선거를 잘하는 당’이 ‘선거만 잘하는 당’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정치 성향에 따라 의견이 갈릴 수 있겠지만, 제2당이자 제1야당인 현재의 새정치민주연합이 보여주는 무기력함에 대해서는 대체로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분위기입니다.

“답이 없다.” 요즘 새정치연합이 화제에 오를 때마다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 이것입니다. 선거에 걸려 넘어진 후 좀처럼 털고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데 따른 반응입니다. 최근에는 외부 인사 영입을 둘러싸고 내홍을 겪은 끝에 박영선 원내대표가 탈당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가장 부끄럽고 참담한 일주일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일단 박 원내대표가 복귀 의사를 밝히면서 소동이 진정되기는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봉합에 불과합니다. 계파 간 갈등이 여전하고 심지어는 분당 가능성까지 점쳐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정당에 계파가 분립하는 것은 정치역학상 당연한 현상입니다. 계파끼리 선의의 경쟁을 벌이면서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도 있습니다. 내부 갈등도 일종의 필요악입니다. 내연기관이 연료를 태워 에너지를 얻듯 그런 마찰을 통해 중요한 이슈를 생산해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새정치연합에는 그냥 내분만 있을 뿐입니다. 갈등도 이슈를 만들어낼 만큼 화끈하지도 못한 채 그냥 ‘아웅다웅’ ‘티격태격’일 따름입니다. 오죽하면 내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행동하는 양심’이 되라고 강조했지만 지금은 ‘행동하는 욕심’이 너무 많다”라는 일갈이 나오겠습니까.

야당의 침체 혹은 몰락은 우리 정치를 위해서도 결코 이롭지 않습니다. 우선 가뜩이나 깊어진 정치 혐오나 정치 불신을 더욱 부채질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큽니다. 그리고 여당의 일방 독주를 막을 제동 장치가 제거돼 정치의 불행을 자초할 수 있습니다.

세월호 특별법 처리라는 중차대한 현안 앞에서 적전분열에 몰린 새정치연합이 이대로 무너진다면, 그것은 대선에서 그들에게 절반 가까운 표를 몰아준 국민에 대한 무례이자 직무유기입니다. 하루빨리 대오를 정비해 정치 앞으로 나서야 합니다. 그러려면 파격에 가까운 혁신이 절실합니다. 21년 전 이건희 삼성 회장은 “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꿔라”고 했지만, 지금 새정치연합엔 뭘 빼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기득권을 깔끔하게 내려놓고 남김없이 비운 다음에 새로 채운다는 각오로 모든 것을 바꿔, 말 그대로 환골탈태를 해야만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또다시 세월호 특별법 재협상이 필요하다는 국민 다수의 뜻과는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이 나온 이후 여당의 행보도 연일 강경 모드입니다. 이재오 의원이 “야당이 어려우면 여당이 출구를 열어줘야지 틀어막으면 안 된다”고 쓴소리를 했지만 새누리당은 휘청거리는 야당을 비웃기라도 하듯 더 강한 기세로 몰아붙입니다. 죽을 쑤는 야당도, 그 틈을 노려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려는 여당도 정치의 미래를 위해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입니다. 경쟁이 없는 정치는 결국 파국으로 나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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