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과 세월호
  • 김인숙 | 소설가 ()
  • 승인 2014.09.24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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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세기에 일어났던 세계 최대의 재앙이라고 일컬어지는 사건 중에는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가 있다. 이때 누출된 방사능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의 400배에 이른다. 이 사고로 수백만 명에 이르는 직·간접적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원전 반경 30㎞에 이르는 지역은 거주 불능 및 사용 불가능 지역으로 선포되었다. 사후 대책은 체르노빌 원전을 콘크리트 석관으로 덮는 것밖에 없었다.

그 후 약 30년 세월이 흘러가면서 노후 석관을 뚫고 다시 방사능이 누출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이 거대한 재앙의 지역은 누군가에게는 고향이기도 하다. 1986년 사고 당시 지역 바깥으로 대피하거나 이주 명령을 받았던 사람들이 정부의 명령을 어기고 자신의 목숨을 걸면서까지 이 죽음의 지역으로 돌아왔다. 끔찍한 재앙으로 인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중 많은 수가 타지에서 실직·빈곤과 싸워야 했다. 결국 죽어도 집에서 죽겠다는 각오에 이른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다시 돌아온 체르노빌에서 그들은 80이 넘거나 90이 가까운 고령이 되었는데, 어쩐 일인지 방사능과는 무관한 지역의 노인들보다 더 장수를 누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에게는 떠나는 것이 죽음이었고, 돌아온 것이 오히려 삶이었던 것이다. 죽음보다도 더한 것을 이겨내는 힘은 아직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믿음이었을 것이다.

체르노빌은 지금도 버려져 있고, 여전히 방사능 위험 지역이고 죽음의 지역이다. 목숨을 걸고 집으로 돌아온 사람들만이 간신히 그곳의 역사적 교훈과 미래의 희망을 희미하게나마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는 돌아갈 곳이 어디일까. 세월호 사건은 대재앙이다. 다섯 달 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이 엄청난 인재에 대해 슬픔과 분노와 수치를 느끼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필자는 그때 원고 마감과 실제 출판의 간격이 두 달이 넘는 한 잡지에 세월호 관련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슬픔과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너무 깊어서 그저 이 글이 지면에 실리게 될 두 달 뒤에도 아무도 이 슬픔과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잊지 말자고만 썼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두 달 뒤를 생각하는 것도 미안했는데, 어느새 다섯 달이 지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유가족이 아직도 그들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철저한 규명을 외치게 되는 것은 그 사건의 피해자들만을 위해서는 아니다. 죄지은 자를 찾아 엄벌을 하기 위해서만도 아니다. 그보다는 그것이 사회의 정의와 믿음이기 때문이다. 상식이 상식대로 이루어지고 정의가 정의롭게 이루어지는 사회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누구보다 내가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의 상처가 더는 깊게 남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문제의 근원들을 체르노빌의 석관처럼 봉인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 바닥까지 뒤집어 깨끗이 해야만 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나. 이 모든 일이 굳이 목숨을 걸어야만 이루어질 일들인가. 참사가 일어나던 첫날의 미안함을 잊지 않는 것부터 다시 시작할 일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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