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가 숨어서 소곤거릴 일인가
  • 안창남 |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 ()
  • 승인 2014.09.29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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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내서 복지 하겠다’ 발상 더 나빠…고소득자 중심으로 증세해야

요즘 세간의 화두 중 하나는 증세다. 담뱃값 인상, 주민세와 재산세 및 자동차세 인상 등이 연거푸 발표됐고 이를 위한 세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정부는 증세는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의도하지 않은 증세’ 또는 ‘사실상 증세’ 등의 말로 얼버무리고 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증세 없이 복지 재원 마련이 가능하다”고 공약(公約·실행 약속)한 것이 공약(空約·헛된 약속)으로 변질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는 공무원의 처지를 대변하고 있다고 본다. 그들 입장에서는 증세의 ‘ㅈ’자를 꺼내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증세정책이 그토록 숨어서 소곤거릴 정도로 나쁜 것인가. 그 반대로 감세정책은 대낮에 벌거벗고 다녀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당당한 것일까. 오히려 ‘빚내서 복지를 하겠다’는 발상이 더 비난받을 일이 아닌가 싶다. 사실 감세정책 이론인 ‘낙수 효과론(trickle down effect·세금을 낮추어준 만큼 소비를 해서 경제가 활성화되며 몇 년 뒤 감세한 금액보다 세수가 더 늘어난다는 주장)’은 이미 미국의 부시 정권에서 실패한 정책으로 판명됐다. 오히려 국가가 세금을 가지고 경기 활성화 정책을 펴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다.

9월24일 새정치민주연합은 ‘재정 파탄·서민 증세 점검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 ⓒ 시사저널 이종현
그동안 우리나라 부자들이나 기업들이 이명박 정부 이후 감세받은 금액을 낙수 효과론처럼 모두 다 소비했는지, 아니면 그 돈으로 주식 투자를 했거나 은행 빚을 갚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복잡한 경제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냥 길거리를 가는 사람 막고 물어봐도 답은 나온다. 현 최경환 경제팀의 생각도 국가가 적극적으로 경제 활성화에 개입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그는 세금으로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적자 재정, 즉 빚(국채 발행 등)을 내서 하겠다고 했다. 경제 활성화는 기업이 할 수 있지만 국가도 경제 주체로서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복지와 세금은 동의어

박근혜 대통령은 증세를 완전히 거절한 것은 아니다. 국민적 동의가 있다면 증세도 가능하다고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국민적 동의가 무엇일까. 불분명하지만 ‘국민적 양심’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자신의 빚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부모가 과연 있을까.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손으로 갚으려고 할 것이다. 그게 인지상정이고 사회적 통념이다. 그런데 집안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적 공동체로 나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시쳇말로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것처럼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국가의 돈을 공짜로 여기고 ‘제 논에 물 대듯이’ 마구 끌어다 쓰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고는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나 몰라라 한다. 이래서는 선진국이 될 수 없고 자칫 국가의 재정 건전성이 악화돼 남유럽과 같은 국가 부도 사태가 올 수도 있다.

어찌됐든 우리나라는 복지 시대에 들어섰다. 박근혜정부는 기초연금을 시행한 첫 번째 정부다. 이 점에 대해서는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가야 할 길은 멀다. 우리나라 복지 수준은 유럽에 비하면 그 질이 절반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제 시작 단계다. 복지 시대가 대세라면 국민적 동의를 위해서라도 우선 우리나라가 지향해야 할 복지 모델과 수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현행 기초연금만으로는 노인 계층의 생활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유럽 형태의 사회적 평등을 구현할 것인지, 아니면 미국 형태의 기초적 생활 보장 수준에 머무를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유럽 형태의 고(高)복지 수준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당연히 세금 부담을 늘려야 한다. 그 반대로 미국 형태의 중(中)복지 또는 저(低)복지 수준이라면 세율 인상 등 직접 증세 대신에 비과세나 감면 축소 또는 지하경제 양성화 등 간접 증세 정책을 통해서도 그 재원 마련은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고복지 수준의 혜택을 받고자 하면서도 세금을 적게 내겠다는 발상이나 그와 같은 생각을 부추기는 정부정책이 있다면 그것은 매우 위험하다. 세금은 누구나 적게 내고 싶어 한다. 입으로는 성실 납세를 말하지만 손은 어느새 주머니 안쪽의 돈을 움켜잡고 어떻게든 안 내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빚은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그들이 속한 사회 공동체의 빚을 다음 세대로 물려주는 것에 대해 죄의식이 없는 태도야말로, 박근혜 대통령의 말처럼, 우리 사회에서 도려내야 될 ‘오랫동안 쌓인 폐단’ 즉 적폐가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도 자칫 아버지 세대는 기초연금으로 잘살았지만 아들 세대는 그 빚을 갚느라고 어렵게 살 수밖에 없었다는 고약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사실 빚을 지고서 하는 복지는 어떤 정권도 할 수 있다고 본다. 빚이 부담돼서 못했을 뿐이다.

9월23일 통합진보당 경남도당 관계자들이 담뱃값 인상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복지 수준에 대한 국민적 합의 필요

그러면 누구로부터 그 재원을 충당할 것인가. 일반적으로 소득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국가는 소득세 개편을 통한 소득 재분배 효과(소득이 많은 자가 적은 자보다 세금 부담을 많이 하는 것)를 통해서 복지 재원을 마련하고 그것으로도 부족하면 일반 서민도 같이 동참하는 이른바 ‘간접세 분야의 증세정책’을 펼친다. 반면 빈부 격차가 상대적으로 낮은 국가는 소득세 대신 간접세 분야의 세율 조정을 통해서 재원을 조달한다. 1977년 우리나라에 도입된 부가가치세 세율이 10%였지만 지금도 그대로다. 반면 프랑스는 19.6%로 인상됐고, 독일이나 덴마크는 20%를 훌쩍 넘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소득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우리나라는 소득세나 법인세 중심의 증세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특히 연간 소득이 5억원을 넘는 슈퍼리치에 대한 소득세 세율 인상이나 이명박 정부 때 인하한 법인세 세율을 다시 25%로 원위치시켜야 한다. 현행 소득세 세율 구조는 1억5000만원을 번 부장에게나 5억원을 번 회장에게나 모두 38% 세율이 적용된다. 합리적일 수 없는 구조다.

정부는 사내 유보금 제도를 통해 법인세를 기업에 더 부담시키겠다고 하지만 유보금을 쌓고 말고의 결정은 주주 몫이지 정부가 할 일은 아니다. 차라리 법인세 세율을 올리는 것이 논리적이다. 1% 인상하면 2조원 넘게 법인세가 증세된다. 이명박 정부는 법인세를 25%에서 22%로 낮췄는데 환원하면 7조~8조원이 넘는 금액이다. 그러고도 부족하다면 그때는 간접세 중심의 증세도 고려할 만하다. 참고로 담뱃값을 2000원 인상할 경우 연간 2조원 정도 세입이 늘어난다고 한다. 증세 대상을 ‘서민을 포함한 전 국민’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우선 소득이 많은 사람이나 기업을 중심으로 할 것인가는 정책자의 판단 사항이지만 소득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는 우리나라는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정부는 증세라는 말 대신에 국민 건강을 위해 담뱃값을 인상한다고 주장한다. 그 말이 진정성을 지니려면 주세도 올려야 한다. 국민 건강을 해치는 주범이 술과 담배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 아닌가. 할 자신이 있는가. 없다면 소득세나 법인세부터 정상화해 복지 재원을 마련해보자. 국민 모두가 평등하게 잘살자는 입장에서 보면, 복지나 세금은 동의어다. 단지 단어만 달리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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