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왜 가난한 이웃까지 돌봐야 하나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4.09.30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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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유로 분리독립 움직임 곳곳에서 꿈틀 스코틀랜드 후폭풍에 몸살 앓는 유럽

하마터면 하일랜드 땅에서 유니언잭 깃발이 사라질 뻔했다. 스코틀랜드는 그들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주민투표를 실시하며 영토국가 체제에 도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대통합을 확대하려는 유럽의 움직임을 거스른 이 역사적인 사건은 9월18일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다만 영국으로부터의 스코틀랜드 독립에 대한 가부를 묻는 주민투표에서 찬성이 45%나 나왔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었다. 올해 초 독립 논의가 시작됐을 때 “30%만 나와도 대성공”이라는 전망과 비교하면 더욱 그랬다.

국제 질서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올 뻔한 초대형 사건이었기에 독립 부결 소식을 환영하는 국가들은 지금 한둘이 아니다. 우선 당사국인 영국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국토의 32%와 인구 8%, 관광산업으로 생기는 110억 유로, 위스키 수익으로 얻는 54억 유로가 사라질 뻔했다.

ⓒ EPA 연합
북해 유전의 석유 자원을 생각하면 더욱 아찔했다. 영국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다민족으로 구성된 유럽의 여러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안정적인 국가 형태를 띠고 있지만 독립 요구를 받는 곳이 의외로 적지 않아서다. 그러나 여전히 ‘스코틀랜드 독립운동’의 후폭풍이 거세다.

당장 1992년 올림픽을 개최한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한 스페인 카탈루냐 주에서는 스코틀랜드 모델에 따라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이곳은 역사적으로 프랑스와의 관계가 강하고 스페인어와 별도로 카탈루냐어가 사용되고 있는, 독립 지향적인 곳이다. 13세기부터 자치권을 갖고 있다가 18세기 초반에 일어난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서 한 번 자치권을 상실했다. 이후 다시 되찾은 게 1931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코 독재 시대 때는 카탈루냐어 사용이 금지되기도 했다. 프랑코가 사망한 후 1979년 다시 공용어로서의 지위를 회복했다.

바르셀로나, 180만명 모여 독립 요구

카탈루냐 주의 면적은 약 3만2000㎢로 우리의 경상남북도를 합친 것과 비슷하고 인구는 약 750만명이다.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며 경제력은 유럽 전체로 따져도 상당하다. 스페인의 국내총생산(GDP)은 약 1조3556억 달러로 우리보다 조금 많다. 이 중 약 20%를 카탈루냐 주가 담당한다. 덴마크와 비슷한 규모이며 핀란드나 아일랜드, 포르투갈을 뛰어넘는 경제 규모다. 그러나 2008년 리먼브러더스 쇼크 이후 다른 지역을 지원하면서 카탈루냐 주의 재정이 악화되자 주민들의 불만이 커짐과 동시에 독립파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9월11일은 왕위 계승 전쟁 때 카탈루냐 주가 자치권을 잃은 날로 ‘카탈루냐의 날’로 불린다. 스코틀랜드의 독립 열기와 맞물려 이날 시위 참가자는 바르셀로나 경찰 추산에 따르면 180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카탈루냐 지방정부는 11월9일 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선언했다. 아르투르 마스 카탈루냐 주지사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인 영국이 독립을 결정하는 주민투표를 허용했다. 같은 회원국인 스페인도 투표를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립을 지지하는 스페인 좌파당(ERC)을 중심으로 카탈루냐 주의회는 주민투표 시행을 승인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분리독립 해서 더 부유하게” 기치 내걸어

최근 스페인 정부가 경제 회복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점은 이들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었다. 오리올 훈케라스 ERC 대표는 “만약 내가 투자자라면 시민과 대립하는 스페인보다는 의무를 이행할 준비가 돼 있는 독립적인 카탈루냐가 더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주민투표 결과 찬성이 과반을 넘을 경우 카탈루냐 주는 중앙정부와 독립 논의를 시작할 계획이지만 스페인 정부는 “헌법상 정부만이 이 같은 주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다”며 주민투표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이런 카탈루냐의 움직임은 이곳보다 더 큰 자치권을 누리고 있는 수도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한 바스크 지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탈리아도 분리독립 움직임이 활발한 곳이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를 끼고 있는 북동부의 베네토 주는 3월에 주 유권자 380만명을 대상으로 분리독립 의사를 묻는 비공식 인터넷 투표를 실시했다. 60% 정도인 230만명이 참여했는데 89%가 독립을 원한다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웹사이트 plebiscito.eu에 게시된 이 조사를 이끈 지안루카 부사토는 스코틀랜드와 카탈루냐로부터의 영향을 부인하지 않는다. “독립을 향한 바람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베네토 주에서 매년 710억 유로(약 10조원)의 세금을 걷는다. 하지만 베네토 주에 돌아오는 서비스는 약 210억 유로(약 3조원) 정도에 불과하다. 독립을 주장하는 지역 정당인 ‘베네타 독립당’ 관계자는 “경제가 어려운 남부 유럽에 대한 지원책이나 소득이 낮은 이탈리아 남부 지역에 우리의 세금이 낭비되고 있지만 방지책이 불충분하다”고 독립 지지가 높은 이유를 설명했다.

벨기에 북부의 플랑드르도 독립 후보군 중 하나다.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벨기에 남부와 달리 네덜란드어를 주로 사용하는 이 지역의 경제는 벨기에 남부를 떠받치고 있다는 점에서 이탈리아와 상황이 비슷하다. 5월 총선에서 벨기에 북부의 독립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플랑드르 동맹’(NVA)이 플랑드르 지역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분리해서 더 부유하게’라는 기치는 스코틀랜드나 베네토와 같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플랑드르 동맹’은 “자치권 강화를 두고 영국과 협상에 들어갈 스코틀랜드가 더 많은 권한을 쟁취할 수 있도록 성공을 기원한다”는 코멘트를 남겼다. 이 지역의 급진적 분리와 독립을 주장하는 플랑드르 이익당(VB)의 한 관계자는 “스코틀랜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 오래된 국가의 틀을 재편하려는 움직임은 당연한 흐름이며 스코틀랜드와 카탈루냐, 플레미시는 새로운 유럽을 구성하는 요소다”고 말했다.

비슷한 이유로 분리독립의 움직임이 일고 있는 곳은 여러 곳이다. 프랑스의 코르시카,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몰도바로부터 벗어나려는 트란스니스트리아 등이 대표적이다. 비록 실패했지만 스코틀랜드 이슈는 EU에 많은 고민을 떠안겼다. 기존 회원국에서 새롭게 독립한 국가를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에 관해 질문을 던졌고 논의가 이루어졌다. 스코틀랜드 국민당(SNP)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하비에르 솔라노는 “투표가 가결될 경우 EU는 내부적으로 더욱 확장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는 분리독립 움직임에 대해 ‘EU의 약점을 강타한 어뢰’라고 표현했다. “유럽의 분리가 아닌 통합을 위해 창설된 EU가 기존 회원국에서 떨어져 나온 신생 독립국을 받아들이기란 무척 어려울 것”이라는 게 그의 예상이었다.

9월19일 스코틀랜드 독립이 부결되자 독립 반대 시위대가 유니언잭 깃발을 들고 축하 시위를 벌이고 있다. ⓒ EPA 연합
과거 독립 키워드 ‘민족’,  지금은 ‘경제’

과거 독립의 키워드가 ‘민족’이었다면 오늘날 독립의 키워드는 ‘경제’다. 좀 더 잘살 수 있는 수단으로 독립을 선택하는 지역이 늘어나면서 유럽이 들썩이는 게 특징이다. 스코틀랜드 국민당이 “독립을 하면 1인당 600파운드(약 102만원)의 수입이 더 생긴다”는 논리를 설파했다. 출발점은 2008년부터 유럽을 강타한 경제 위기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때부터 중앙 집권과 지방 분권이라는 두 개의 축이 격돌했다. 한 국가 내에 있는 부자 지역과 가난한 지역의 자원 배분을 둘러싼 충돌이 심해진 결과를 이탈리아의 베네토와 벨기에의 플랑드르가 증명한다. 독립까지 바라지 않지만 독일에서 가장 부유한 바이에른 주와 헤센 주는 가난한 북동부 지역에 국가 보조금을 제공하는 ‘재정 평준화 제도’에 대한 이의신청을 법원에 제기했다.

경제력에 따른 독립의 문제는 더 작은 국가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스코틀랜드가 주민투표 실시를 두고 한창 시끄러울 때 스코틀랜드 북동쪽에 위치한 셰틀랜드 제도에서는 스코틀랜드가 독립할 경우에 대비해 자신들도 스코틀랜드로부터 독립해야 하는지 여부를 두고 논의가 이루어졌다. 15세기 노르웨이에서 스코틀랜드로 편입된 이곳은 스코틀랜드 북단에서 160km 떨어져 있는 섬들로 석유 자원과 수산 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석유 자원을 바탕으로 대형 정유업체들의 투자가 이어져 스코틀랜드의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실업률도 낮고 공공 서비스도 잘 이뤄지고 있다. 자신들의 부유함을 유지한 채 자치권을 강화하는 게 이들의 목표다. 

작은 국가들의 등장에 대해 EU가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제네바 대학 국제문제연구소의 니콜라 루브라 교수는 “작은 국가의 증식이 EU 통치 시스템의 개혁을 촉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새로운 국가가 많아지면 각국 대표로 구성된 EU의 방식은 수정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6개 나라로 시작해 이제 28개국을 유지하며 그런대로 작동해온 제도가 100개 회원국을 받을 경우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비록 독립에는 실패했지만 스코틀랜드는 주권국가가 쪼개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유럽 전역에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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