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을 아시아 재즈의 허브로 만들고 싶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4.10.02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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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섬 국제재즈페스티벌 예술감독 인재진

지방자치 시대가 되면서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지역 축제의 범람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조사에 따르면 지역 축제는 555개지만 실제는 120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 많은 축제가 ‘세계’ ‘국제’라는 이름을 달고 ‘지역’의 욕망을 담아내고 있지만 자생력과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 것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적다. 부산국제영화제, 광주비엔날레, 자라섬 국제재즈페스티벌(자라섬페스티벌) 정도다.

이 중 자라섬페스티벌은 군 단위(가평군) 지자체가 세계적인 규모의 행사로 키워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2004년 시작된 이 행사는 아시아 최대의 재즈 축제로 꼽히고 있고, 세계 최대 재즈 축제인 스위스 몽트뢰 재즈페스티벌에 비길 만한 존재감을 갖춰가고 있다. 비만 오면 잠기는 한강 상류의 ‘쓸모없는’ 모래톱이 연 20만명의 관객이 즐기는 축제의 장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오는 10월3일부터 5일까지 열리는 이 축제를 만들어낸 인재진 예술감독을 9월24일 만나 지역 축제와 재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자라섬 2013 재즈 아일랜드 ⓒ 자라섬 재즈 축제 제공
지난 4월 펴낸 그의 에세이집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지역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는 ‘말단 미직’ 공무원에 대해 존경을 표시한 부분이다. 인 감독은 지방 군청 공무원 3명의 이름을 실명으로 끄집어 올렸다. 첫 축제를 열면서 돈이 부족해 문화관광과 김한교 과장, 민병엽 계장, 이문교 주사에게 돈을 빌렸다는 것이다. 이들은 “공직 생활 26년째에 업자가 찾아와서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건 처음이다. 이런 경우는 듣도 보도 못했는데 왠지 빌려줘야 할 것 같았다”며 없는 돈을 빌려서, 마이너스 통장으로, 아내에게 융통해서 건네줬다. 열정 하나만 갖고 덤비다 보니 예산이 턱없이 부족해 벌어진 일이었다. 이들은 첫해 축제 때 비가 와서 공연장이 아수라장이 되는 소동을 겪고도 관객이 무대와 함께 흥겨워하는 것을 보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자라섬페스티벌은 세계적인 재즈 축제로 발돋움했다.

해마다 20만명의 관객이 찾는다. 축제 기간엔 가평 관내 4000여 실에 달하는 펜션이 꽉 찬다. 한 해 예산의 33% 정도는 국비와 군비, 도비 지원을 받고 30%는 스폰서십, 35%는 티켓 판매, 나머지 2~3%는 기념품 판매로 충당한다. 그는 “전국 지역 축제 중 재정적으로 가장 건전한 축제다. 공무원이 부러워하는, 지자체가 갖고 싶어 하는 모델”이라고 소개했다. 사람이 몰리고 축제가 잘되자 지역민도 신이 났다. “가평은 민관의 역할이 잘 분리돼 있다. 재즈는 전문적인 장르다. 트로트 축제라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웃음). 나는 공무원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그들은 내 역할을 존중한다. 나는 돈을 잘 써서 축제를 잘 만들고 멋진 무대를 올려야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지역에 뿌리를 내려야 하는 축제라 지역민의 가려운 곳은 다르다. 지역 경제 활성화에 대한 기대가 있다. 우리나라 축제 중 가장 취약한 부분이 머천다이징 부분이다. 그래서 지역 특산물을 이용한 상품 개발을 하고 있다. 자라섬페스티벌은 수백억 원의 브랜드 가치가 있다. 이 브랜드를 2차적으로 활용해 지역에 도움이 되는 마케팅 활동을 하는 것이 또 다른 숙제다.”

숙성 과정에서 재즈를 들려준 가평 재즈막걸리, 가평산 와인과 그 와인으로 만든 자라섬뱅쇼라는 특산물은 이런 과정에서 나왔고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지역민과 지역 공무원, 재즈 공연 전문가가 힘을 모은 결과다.

인재진 감독에게 음악은 삶의 모든 부분과 관련돼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지역 축제가 세계 축제로 자리 잡아

인재진 감독은 자라섬페스티벌을 만들기 전 재즈 공연 기획자로 일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학창 시절 수업보다는 취주악부 활동에 더 열심이었다. 하지만 색소폰 부는 것보다는 축제 무대에 올릴 뮤지션을 섭외하는 데 더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대학 졸업 후 자리를 잡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언론사 시험도 많이 봤다. “그때 시사저널 입사 시험도 봤다”며 그는 웃었다. 그러다 공연 기획이라는 천직을 찾았다. “재즈 공연도 만들고 음반 기획도 했다. 페스티벌 이전에 1000번 정도 공연을 올렸고, 그중 990번은 말아먹고 10번 정도는 성공했다. 그때는 많은 사람이 하는 일은 하지 말자는 원칙이 있었다. 마침 재즈 쪽 일은 아무도 하려 하지 않았다. 돈이 됐으면 다 덤볐겠지만 돈이 안 되니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선진국 사례를 보면 재즈가 트렌드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시장이라는 측면에서 재즈는 성장주일까. 그는 “국내에서는 재즈 관객이 늘어나는 추세다. 미국에서는 성장세가 꺾였고 유명 뮤지션은 유럽 쪽에서 더 많이 나온다. 유럽 뮤지션이 우리나라에 오면 관객이 젊다고 깜짝 놀란다. 우리 시장은 커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우리 재즈 관객은 퓨전 쪽에 더 호응을 하고, 나이 든 쪽에서는 어쿠스틱 사운드에 더 반응이 좋다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성 관객이 늘어나는 것은 확실한데 재즈 공연을 음악으로만 듣지 않고 기념품 정도로 여기는 것은 아쉽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해외 유명 뮤지션의 내한 공연에서도 세종문화회관을 꽉 채우는 경우가 많지 않다. 재즈 뮤지션의 경우 매번 다른 내용, 다른 레퍼토리, 다른 조합으로 공연을 하지만 국내 관객 중 상당수가 ‘한번 봤으면 됐지’라는 식의 관람 이력서를 채우는 데 만족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자라섬페스티벌이 자리를 잡자 해외 유명 뮤지션이 섭외에 적극 응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그러면서 축제의 주빈국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올해는 노르웨이가 주빈국으로, 그 나라 출신의 재즈 뮤지션이 집중적으로 소개된다. 인 감독이 10년 동안 찾아온 아티스트 중 가장 아쉬운 팀은 스웨덴의 피아노 트리오 에스비욘 스벤슨 트리오(EST)다. 첫해 축제에 찾아와 빗속에서 멋진 무대를 보여줬던 이 팀은 이후 정점으로 치닫다가 몇 해 전 리더가 스킨스쿠버를 하다가 스크루에 휘말려 사고사하면서 팀이 해체됐다. 

아내인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은 11월 공연

그의 이야기를 하면서 아내 나윤선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유럽에서 더 유명한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은 일로 인 감독을 만났다가 결혼까지 한 경우. 인 감독이 8년 전 가평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나윤선도 1년에 5개월 정도만 그곳에 산다. 나머지 7개월은 투어로 지구를 떠돈다. 찾는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길 위의 삶이 돼버린 것. 인 감독과 인터뷰하던 날 새벽에 미국 투어를 마친 나윤선이 귀국했다. 

올해 자라섬페스티벌 라인업에 나윤선의 이름이 안 보인다. “지난해에 나왔으니까, 5년에 한 번 정도 나오는 게 적당하지 않나 싶다. 지난해에 출연할 수 있었던 것도 2년 전에 미리 얘기해서 섭외할 수 있었다. 국내에서는 오는 11월에 나윤선 공연이 있다.” 나윤선은 지난해 12월 나흘간의 국립극장 공연을 전석 매진시킬 정도로 국내에서도 엄청난 티켓 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재즈를 좋아했고 재즈 공연을 기획하고 재즈 가수를 아내로 둔 인재진 감독은 지금에 만족한다. “가평이 재즈 페스티벌을 만들어냈지만 이제는 재즈라는 음악으로 가평이라는 지역을 재창조하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다. 가평을 아시아 재즈의 허브로 만들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이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공간과 끊임없는 콘텐츠 생산, 그리고 그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있고 이것을 지역 주민이 동의해야 가능하다.” 이를 위해 당장 자라섬에 상설극장을 만들고 싶지만 자라섬이 하천 부지라 법적으로 고정 시설을 만들 수 없다. 그는 “비가 오면 물에 잠기는 것을 감안해 시설을 만들면 된다. 규제 개혁 차원에서라도 관계 기관에서 허가를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 자라섬 재즈 축제 제공
2004년 1회 때 3일간 2개 무대에서 27개 팀, 관객  수 1만명으로 출발한 자라섬페스티벌은 이제 16개 무대에 113개 팀(초청 팀 52개)이 서고 연인원 20만명이 찾는 아시아 최대 축제가 됐다.

올해의 헤드 라이너는 펑크 재즈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마세오 파커(10월4일)다. 그래미상을 열두 번 탄 쿠바 출신의 색소포니스트 파키토 드리베라, 기타리스트들에게 ‘사부’로 불리는 앨런 홀스워스, 퓨전 재즈의 대가 옐로재킷, 스팅의 오른팔로 불리며 영화 <레옹>의 주제가인 <Shape of my heart>를 작곡한 기타리스트 도미닉 밀러 등이 자라섬에 모습을 보인다.

색소폰 연주자이자 보컬리스트인 마세오 파커는 펑크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임스 브라운의 밴드 멤버로 합류한 이래 1980년대 말까지 최고의 펑크 세션 아티스트로 불렸다. 록밴드 레드핫칠리페퍼스, 프린스 등과 작업하는 등 활동의 폭이 넓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유쾌한 무대 매너로 관중을 춤추게 만들고 있다.

지난 1월 말에 있었던 제56회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베스트 라틴 재즈 앨범상은 파키토 드리베라와 트리오 코렌테의 <Song for Maura>에 돌아갔다. 이로써 쿠바 출신의 색소포니스트 파키토 드리베라는 열두 번째 그래미상 트로피를 손에 쥐었다. 이번 자라섬 무대에는 트리베라와 트리오 코렌테가 함께 오른다.

스웨덴 태생의 피아니스트로 북유럽 재즈계의 대표적인 피아니스트인 얀 룬드그렌이 결성한 얀 룬드그렌 트리오는 자라섬 무대에서 하모니카 연주자 그레구아르 마레와 협연 무대를 갖는다.

도입부의 기타 연주 소리가 유독 귀에 감기는 <Shape of my heart>의 주인공은 기타리스트 도미닉 밀러다. 그가 작곡했고 연주했다. 도미닉 밀러는 1991년 발표된 스팅의 세 번째 솔로 앨범 <소울 케이지>부터 함께하기 시작해 투어에도 동행하고 있다. 자신의 이름으로도 14장의 앨범을 발표한 도미닉 밀러 밴드는 내년 1월 스팅&사이몬 가펑클의 투어 공연에도 동행한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 그는 록과 클래식, 재즈와 뉴에이지가 결합된 그만의 퓨전 스타일을 선보인다.

올해 축제의 주제인 노르웨이 포커스를 통해 북유럽 재즈 최강국인 노르웨이의 대표적 재즈 아티스트가 한국 무대에 모습을 보인다. 기타의 거장 테르예 립달과 피아노의 거장 케틸 비외른스타드, 트럼페터 마티아스 아익 등이 바로 그들이다.

테르예 립달과 케틸 비외른스타드는 기타와 피아노로 고요 속에 펼쳐지는 격변의 순간을 듀오 무대로 펼쳐 보인다. 2009년 나윤선과 듀오로 국내 7개 도시 투어를 펼쳐 국내 팬에게 낯익은 마티아스 아익(트럼펫)은 이번엔 퀸텟을 이끌고 내한해 그가 왜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트럼페터인지 보여줄 예정이다. 노르웨이 오슬로 출신의 피아니스트 토드 구스타브센은 음 하나하나의 잔향과 투명한 울림을 전달하는 탐미적이고 섬세한 스타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그가 이끄는 퀄텟 팀이 들려줄 북유럽 정서가 깊이 밴 아름다운 멜로디에 대한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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