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전세대란 시한폭탄 터진다
  • 김관웅│파이낸셜뉴스 기자 ()
  • 승인 2014.10.07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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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전세가율 64.6%로 사상 최고치…내년 재건축 이주 수요 등 더 심각

지난 2년간 주춤하던 수도권 전세난이 올가을에 접어들면서 다시 본격화하고 있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은 지난 9월 기준 64.6%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2001년 10월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수도권 아파트 전세가율도 66.3%에 달해 역대 최고치(67.7%)에 바짝 다가서고 있다. 최근 들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집값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음에도 전세가율이 이처럼 계속 오르는 것은 그만큼 전셋값 상승세가 가파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올가을 수도권 신규 입주 물량이 예년에 비해 크게 줄어드는 데다 저금리 기조로 인해 집주인들이 반전세를 선호하면서 전세물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특히 지난 수년간 수도권 주택 시장에서 공급됐던 주택들은 대부분 1~2인 가구 위주의 초소형 주택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3~4인 가구가 살 만한 집이 크게 부족한 것도 문제다. 이래저래 전셋값이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주택 경기 활성화 대책에 힘입어 서울 지역 재건축 사업이 활기를 띠고 이로 인해 멸실 예정 주택이 더 늘어난다는 점이다.

한 부동산 컨설팅회사 사장은 “정부의 재건축 연한 단축 등 호재가 겹치면서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올해와 내년 중 재건축 이주 수요가 급증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재건축 이주 수요는 많게는 수천 가구가 단기간에 움직이기 때문에 주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지역적 불균형까지 초래해 시장에 큰 파장을 일으킨다”고 우려했다.

서울 잠실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 시사저널 우태윤
신규 입주 크게 줄고 집주인은 반전세 선호

국민은행 부동산알리지에 따르면 9월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은 64.6%를 기록했다. 전세가율은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의 비율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는 지난 2001년 10월(64.6%)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은 2009년 1월까지만 해도 38.2%까지 하락했지만 불과 5년여 만에 2배 가까이 상승했다. 또 수도권 아파트 전세가율도 66.3%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던 2001년 10월(67.7%)에 근접했다. 경기 지역은 67.8%까지 치솟은 상태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는 서울 성북구와 서대문구의 전세가율이 각각 71.8%와 71.0%로 높았으며 화성(75.8%), 수원 장안구(72.7%), 수원 영통구(72.1%), 의왕(72.7%) 등을 비롯해 상당수 지역이 70%를 훌쩍 넘어섰다.

올 9월 기록한 아파트 전세가율 64.6%는 13년 전인 2001년 10월의 수치와는 크게 다르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2001년만 하더라도 서울 시내에 노후 아파트가 많지 않았지만 13년이 지난 지금은 서울 시내에 노후 아파트가 많아져 현장에서 느끼는 전세가율은 수치상 나온 64.6%보다 훨씬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 지역에서 입주한 지 10년 안쪽의 아파트 전세가율은 80% 안팎에 달하고 있다.

국민은행 부동산알리지에 따르면 서울 지역의 올 1월부터 9월까지 전셋값 상승률은 3.60%로 월 평균으로는 0.40%에 불과하지만 세입자가 실제 전세 시장에서 느끼는 전셋값 상승세는 이 수치와는 크게 다르다. 전세 계약이 통상 2년 단위로 이뤄지는 것을 감안할 때 전셋값 상승률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2년 전 상승률을 모두 합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산식을 적용하면 서울의 전셋값은 2년 전인 2012년 10월부터 올 9월까지 13.61% 오른 셈이다. 예컨대 2년 전 전셋집이 3억원이었다면 재계약을 위해서는 4000만원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서울 노원구 중계동 경남·롯데·상아아파트 88㎡의 경우 2012년 10월(전세가 2억원)에 전세 계약을 맺었다면 2년 후인 올 10월 재계약을 맺으려면 30%를 올려줘야 한다. 현재 전세물이 2억6000만원에 거래되고 있어 6000만원이 더 필요하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현대아파트 115㎡의 전세 시세도 2012년 9월에는 2억7000만원이었지만 2년이 지난 올 9월에는 7000만원 오른 3억4000만원에 달하고 있다.

서울 강남권은 오름 폭이 더욱 크다.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 109㎡의 경우 2년 전보다 전세 시세가 2억원 정도 올라 현재 6억8000만원에 달하고 있다. 이곳에는 이마저도 물량이 많지 않아 재계약을 하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저금리가 계속되면서 집주인들이 반전세로 전환하고 있어서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집주인들이 금리는 자꾸 내려가고 마땅한 투자처가 없어 보증금을 높여 받는 것보다 월세를 받는 게 낫다고 생각해 반전세로 돌리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며 “이 때문에 가뜩이나 부족한 전셋집이 줄어들고 가격도 계속 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강남권 재건축 2만8000가구

강남권 재건축은 전세 시장의 시한폭탄이다. 최근 주택 시장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는 데다 정부의 재건축 연한 단축으로 강남권을 중심으로 사업 추진이 빨라지고 있어 향후 재건축으로 인한 이주 수요가 대거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는 일반적인 전세 수요가 기존 주택이 그대로 존재한 상태에서 연쇄적으로 이동하면서 발생하는 전·월세난과 달리 기존 주택이 멸실되며 수요 이동이 일어나기 때문에 주택 수급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게 특징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현재 서울 시내에서 사업 시행 인가를 받은 재건축 단지는 총 30곳으로 이 중 사업 추진이 빠른 강남권에만 24개 단지 2만8000가구가 몰려 있다. 이에 더해 정부가 재건축 가능 연한을 30년으로 단축시키면서 사업 추진에 속도를 내는 단지가 늘어나고 있어 업계에서는 내년 중 재건축 이주 수요만 4만 가구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동안 사업 일정이 멈춰 있던 재개발 단지도 최근 집값이 회복세를 타면서 다시 사업 추진을 모색하고 있어 자칫 재개발·재건축 이주 수요에 따른 최악의 전세대란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009년 서울에서 발생한 유례없는 전세대란도 강북 재개발이 활기를 띠며 서울에서만 3만 가구가 이주하면서 시작됐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9월25일 서울 강남권 재건축 집중에 따른 전세난 해소를 위해 재건축 사업 모니터링 체계 구축, 수급 상황을 고려한 이주 시기 분산, 임대주택 조기 공급 및 전세·세입 임대 확보 등을 담은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곽창석 ERA코리아 소장은 “정부로서도 전세난을 잠재울 대책이 마땅히 없기 때문에 서울 수도권 전세난은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며 “전셋집을 알아봐야 하는 수요자라면 계약 만료 시기보다 한참 앞서 신규입주 대단지를 알아보는 게 현명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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