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선으로 꽃도 찍고 해골도 찍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4.10.07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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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업은 의사, 직업은 예술가’ 정태섭 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

정태섭 강남세브란스병원 영상의학과 교수의 생업은 의사고 직업은 예술가다. 말장난 같지만 그는 평소 엑스선 기기를 이용해 환자 진료를 보면서 틈틈이 작품 활동을 한다. 사람의 뼈를 찍은 엑스선 사진을 예술품으로 만들어 예술 분야의 한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돈 많고 시간이 남아도는 한 의사의 객기가 아니다. 최근 초·중·고등학교 과학·미술 교과서에 그의 작품이 실렸고 외국 정부가 초청 전시회를 열 정도다.

진료와 연구에 매달렸던 1995년 무렵, 의사로서 명성은 얻었지만 가족에게는 있으나 마나 한 유령 같은 존재가 됐다. 그는 가족에게 제안했다. 해골 사진을 찍자고. “엑스레이로 가족 네 명의 머리 사진을 찍어서 이어붙이니 해골 가족사진이 됐다.” 표정도 없는 해골로 가족사진을 찍은 일로 괴짜 의사라는 소문이 퍼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일로 그는 가족을 되찾았다. 그 후 환자의 엑스선 사진을 분석하다가 하트 등 재미있는 모양이 나온 것을 골라 책이나 인터넷에 소개했다. 사람들은 엽기적인 뼈 사진에서 따뜻함을 느낀다는 평을 내놓았다.

 

ⓒ 시사저널 임준선
“이제 병원도 문화가 있는 공간으로”

10년이 지난 2006년 기형도 시인의 <입속의 검은 잎>을 소개하는 TV 방송을 보면서 그것을 영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림이나 사진으로는 표현할 수 없어도 엑스선으로는 가능할 듯했다. 나뭇잎 모양의 브로치를 입에 물고 엑스선으로 찍으니 ‘입속의 검은 잎’ 모습이 나왔다. 이때부터 정 교수는 엑스선 사진을 작품으로 만드는 일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엑스선을 발견한 물리학자 뢴트겐의 고국인 독일은 물론 미국에도 알아봤지만 엑스선으로 미술 작품을 만든 사례가 없었다. “현재 효율성이 가장 큰 의료용으로만 엑스선을 사용하고 있지만, 뢴트겐이 엑스선을 발견했던 100여 년 전에는 모든 사물을 촬영하는 도구에 불과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여인 등 사람뿐만 아니라 튤립과 소라 등 물체도 엑스선으로 찍었다. 그의 작품을 보면 외형보다 내면을 들춰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엑스선은 사진기와 달라서 사람 전신을 한 번에 찍을 수 없다. 머리·가슴·다리 등 신체를 나눠서 찍고 이를 컴퓨터에서 붙이면 전신 뼈 사진이 탄생한다. 엑스선으로 찍은 꽃은 흑백이지만 색을 입히면 묘한 작품성을 띤다.”

아무리 예술 작품이라지만 방사선 노출이 우려된다. “뼈나 근육에 이상이 있는지를 보는 것이 아니고 윤곽만 나오면 되기 때문에 진단할 때의 방사선량의 4분의 1이나 5분의 1 정도로 낮춰 작업한다. 한번 모델이 된 사람은 1년 동안 재촬영하지 않는다. 모델은 친인척, 동료 의료인 등으로 제한한다.”

병원의 공공시설인 엑스선 장비를 작품 활동에 사용하면 병원에서 눈총을 받지 않을까. “병원이 병을 치료하는 곳에서 이제는 문화가 있는 공간으로 변했다. 병원에 작품을 걸어놓으니 엑스선이라고 하면 겁부터 집어먹었던 사람들의 인식도 변하기 시작했다.”

① 엑스선으로 찍은 튤립 ② 바이올린 연주자를 엑스선으로 찍은 모습 ③지난해 엑스선 꽃사진이 실린 중학교 미술 교과서 ⓒ 정태섭 제공
“아이들에게 창의 교육 사례 되길”

병원을 벗어나 개인전만 15차례나 가졌고, 80회 이상의 아트페어에도 그의 작품이 걸렸다. 처음에는 예술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예술계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예술의 범위를 넓히고 사람들을 전시회로 끌어들이는 순기능이 크게 작용하면서 점차 예술계에서도 인정받기 시작했다. 인체나 사물을 신선한 각도에서 표현하면서 예술·과학·의학을 접목한 예술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의 작품을 사겠다는 사람이 생겼고, 자신을 모델로 해서 뼈 사진을 찍어달라는 사람도 있다. “어쩌다가 작품을 팔기도 하지만 공식적으로 판매하지는 않는다. 의사가 돈을 벌기 위해 이 작업을 하는 것은 아니고, 병원 기기로 상업행위를 할 수도 없다. 일반인을 모델로 뼈 사진을 찍지 않는 이유다.”

한국미술대전에도 6년째 정 교수의 작품이 출품되고 있다. 2011년 프랑스에 사는 한인들의 주선으로 프랑스문화원 초청 전시회가 열렸다. 큐레이터의 소개로 2012년에는 러시아 모스크바 전시회가 이어졌고, 그해 서울핵안보정상회의에서 방사선의 평화적 이용을 장려하는 의미로 초청 전시회도 열렸다. 지난해 모스크바에서 추가로 전시회가 개최됐고, 올해 8월 노보시비르스크 주립 미술박물관에 그의 작품이 선보였다. 내년에도 러시아 페른 등지에서 전시회가 예고돼 있다. 이쯤 되면 가운을 벗고 예술가로 활동해야 하지 않을까. 이 우문에 “엑스선 장비가 병원에 있으니 좋든 싫든 예술 활동을 하려면 병원에 있어야 한다”는 현답이 돌아왔다.

부산 출신인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로 이사를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사투리 때문에 친구가 붙지 않았던 그는 청계천에서 부품을 사와 전축이나 망원경을 만들어 팔아 용돈을 벌었다. “고등학교 미술교사 출신인 아버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흠모했는데 당신의 아들이 그런 인물이 되길 바란 것 같다. 예술과 과학 교육을 많이 받았고 이후 의학을 공부해보라는 뜻에 따라 의대에 진학했다.”

‘공대 체질’인 자신에게 의대는 따분한 곳이었다. 전공을 정해야 할 의대 본과 시절, 그는 방사선 기기를 보자 반가웠고, 자신의 진로를 영상의학과로 정했다. 그래도 진료와 연구는 삭막하기만 한 작업이었다. 밤샘 연구를 할 때 짬짬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천체 망원경으로 별을 보는 모습에 소아과 입원 아이들이 별을 보여달라며 하나 둘 모여들었다. 그 수가 100명, 1000명으로 늘어나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서자 병원 차원의 별 보기 행사로 발전했다. 

정 교수는 아이들을 위해 솜사탕 기계를 교수실에 들여놓고 솜사탕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헬륨 가스통도 마련해 풍선을 불어줬다. 2004년부터 2년 동안 방송국의 어린이 과학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엑스선 작품 활동을 계속하는 이유도 아이들과 관련이 있다. “가시광선으로 보는 세상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엑스선으로 보는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어른은 물론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아이들에게 고정관념을 깨는 창의 교육의 사례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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