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경제팀, 소득 주도 성장정책 성공하기 힘들다”
  • 김지영 팀장·정리=조유빈 기자 ()
  • 승인 2014.10.2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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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정운찬 전 국무총리

유명 경제학자로 서울대학교 총장과 국무총리까지 역임한 그를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이 흔히 갖는 선입견. ‘그 사람 대단히 권위적일 거야’다. 하지만 정운찬 전 총리를 한번이라도 접해본 사람은 안다. 잘 웃고 농담 잘하고 술자리에서 옆 사람을 툭툭 치는 ‘버릇’이 있는, 때론 야구해설자로 변신하기도 하는, 그래서 ‘가볍다’는 오해까지 받는 사람이란 걸.

하지만 강연이나 사석에서 ‘경제’와 ‘교육’에 관한 얘기가 나오면 돌변한다. 부드러운 목소리엔 힘이 들어가고 표정도 엄숙해진다.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 동반 성장이 화제에 오르면 정색하며 “동반 성장만이 살길”이라며 열변을 토한다. 그런 정 전 총리를 10월16일 오전 서울 봉천동에 있는 ‘동반성장연구소’에서 만났다. 정 전 총리는 현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정책에 대해 “이해는 하지만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한국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선 동반 성장만이 살길”이라고 역설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지난 10월8일에 정부는 연말까지 5조원 이상의 정책자금을 추가로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다 다시 꺾이고 있기 때문이라는데 어떻게 보나.

난 케인스주의자다. 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 경기 부양책을 쓰는 것을 반대하진 않는다. 경제가 발전하려면 공급 능력이 확충되고 그 능력을 갖고 생산한 것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야 하는데, 아주 단기에 수요를 늘리기 위한 정부의 고육책이 아닌가 싶어 이해는 된다.

공급 능력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투자가 있어야 하는데.

투자는 김대중 정부부터 현 정부까지 지난 17년 동안 아주 부진했다. 투자가 늘어나야 한다. 소비가 늘면 생산이 늘고 투자가 늘고, 그게 부족하면 정부가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지출하는 것에 대해 이해할 만하다. 최경환 팀에서 분수 효과, 소득 주도 성장정책을 쓰지 않나. ‘사내 유보금이 많으니 배당해서 쓰게 하자. 집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전·월세 집을 제공해 돈 벌어 쓰게 하자. 기업이 임금을 많이 주게 유도하자’는 것은 소비를 위한 정책이다. 그러나 성공하기 힘들다. 배당이 누구한테 가겠나. 큰 기업 배당금의 상당 부분은 외국인 투자자나 국내 기관투자가에게 간다. 일반인들한테 많이 안 간다. 가도 부자들한테 간다. 부자는 전문용어로 한계 소비 성향이 낮다. 이미 다 썼기 때문에 쓸 일이 없다. 집이 있어서 전·월세 받는다고 얼마나 더 쓰겠는가. 기업들이 임금 올리는 것을 유도하는 것도 사실 임금을 한번 올리면 내리기 힘들기 때문에 쉽지 않다. 소득이 늘어난다고 소비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경제 분위기가 침체돼 있어서다. 

“규제 푼다고 투자 늘어나지 않는다”

투자가 부진한 이유를 무엇이라고 보는가.

박근혜정부는 규제를 풀면 투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규제를 푼다고 투자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긴 힘들다. 경제정책의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투자 주체인 기업을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나누어 볼 때, 대기업은 돈이 천문학적으로 많은데 투자 대상이 없다. 중소기업은 중·저위 기술로 투자하는 것이긴 하나, 투자 대상은 많다. 하지만 돈이 없다. 그것이 한국의 투자와 관련된 딜레마다.

대기업들이 거액을 금고에 넣어두고 있으면서도 투자를 꺼리고 있다.

한 보고서에 의하면 상장 대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현금이 250조원이라고 한다. 1조원이 얼마나 큰돈인가.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태어나서 오늘까지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100만원씩, 1년에 3억6500만원을 써도 다 못 쓰는 큰돈이다. 그것의 250배를 (대기업이) 가졌다. 그런데 투자를 안 한다. 투자 대상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한국은 리서치(Research·연구)를 해야 한다. R&D(연구·개발) 지출이 세계 5등으로 GNP 대비로 따지면 2등으로 높다. 그런데 R(연구) 지출은 없고 D(Development·개발) 지출만 있다. 울산·창원·구미·포항·기흥에 세계적인 공장이 있는데 전부 외국 사람들이 생각해낸 것에다가 ‘플러스 알파’를 한 것이다. 한국 경제를 폄하하는 사람들은 ‘한국의 R&D는 많다. 그러나 리서치가 아니고 리파인먼트(refinement·개선)’라고 한다. 벌써 7년 전부터 나온 얘기다. 한국이 재도약하려면 이제는 리서치해야 한다. 그것이 한국 경제 재도약의 조건이다.

올 하반기 중소기업 적합 업종 재지정을 놓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이를 조정하고 합의를 끌어내야 할 동반성장위원회가 대기업 편향 정책을 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초대 위원장으로서 어떻게 보나.

유장희 교수(2대 위원장)나 안충영 교수(3대 위원장)는 굉장히 유능하고 유연한 분이시다. 일을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 단지 위원회가 아직 4년 정도 된 초창기라서 틀을 제대로 잡으려면 싸움닭 노릇을 좀 해야 한다고 본다.

박근혜정부의 동반 성장 의지가 약하다고 봐야 하지 않나.

현 정부 들어 경제민주화, 동반 성장 안 한다. 야당조차도 안 해서 참 답답하다. 그래서 야당 중진 의원에게 물어봤더니 ‘너무 바쁘다’고만 하더라. 할 말이 없었다.

박근혜정부의 경제민주화와 창조경제가 여전히 모호하다는 지적이 있다.

박근혜정부를 만드는 데 기여한 여러 분에게 ‘창조경제가 뭐냐’고 물어봤지만, 분명하게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공통점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상업화하는, 벤처를 키워주는 것이라는 점이다. 나에게 창조경제가 뭐냐고 묻는다면, 이름을 창의경제로 바꾸겠다. R&D 지출에서 D(개발) 중심에서 R(연구) 중심으로 가야 창의경제가 될 것이다. 창의성은 사물을 다른 시각에서 보는 것이다.

ⓒ 시사저널 이종현
“5·24조치 관련한 남북 대화 찬성”

최경환 경제팀의 정책을 어떻게 보나.

소득 주도 성장은 최경환 부총리의 창작물이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10~20년 이상 논의돼왔고, 어떤 나라에서는 시행하고 있다. 현 시점에서 성공하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나. 그런 노력을 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 성장으로 가야 한다. 정확하게는 동반 성장을 안 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 동반 성장만이 살길이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저서 <21세기 자본>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부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글로벌 부유세, 교육 공공투자, 고소득자 누진세제 등을 제시했다. 어떻게 보나.

아직 다 못 읽어봤지만 글로벌 부유세는 불가능하다. 한 국가도 힘이 없는데 세계 국가가 있을 수 있나. 고소득자 누진세,  교육 공공투자를 통해 어려운 사람들이 돈 벌 수 있게 하는 것, 그런 기회는 좋다. 피케티가 말하는 게 다 옳은 것은 아닐 수 있다. 분석 방법이라는 게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피케티는) 현 상황을 그냥 놔뒀다가는 세계가 혁명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나는 프랑스 사람들이 아이디어가 참 풍부하다고 생각한다. 자크 아탈리가 21세기는 이기적 이타주의 세계가 될 것이라고 했다. 자기를 지키려 이타(利他·남을 이롭게 함)한다. 20세기까지는 다른 나라 사람이, 다른 사람이 돈을 얼마나 버는지 어떻게 쓰는지 관심도 없고 알 길도 없었다. 21세기에 글로벌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IT가 발달하면서 자기 주위는 물론 세계 방방곡곡에 대해 다 알 수 있게 됐다. 빈부 격차와 양극화를 그냥 놔뒀다가는 어려운 사람들이 저항할 것이고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이기적으로 남을 위한다는 것이다. 문제의식은 피케티와 자크 아탈리가 통한다고 본다.

이기적 이타주의가 미국 거부(巨富)들의 기부 행위로 나타난 것 아닌가.

그렇다. 미국에서는 ‘Occupy Wall street, Shut down Wall street’(월가 시위)가 2011년만 해도 많았다. 그런데 2~3개월 있다가 없어졌다. 워런 버핏, 마이클 블룸버그, 조지 소로스 등 부자들이 ‘우리가 지금 돈을 버는 것은 사회적인 안전장치가 안정적으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이게 계속 작동해야 돈을 번다’고 하면서 기부를 했고, 동료 부자들에게도 기부를 권하고 또 그들이 따랐다. 천성이 착하겠나. 자기들도 살려고 그러는(기부하는) 것이다.

피케티는 한국의 빈부 격차가 미국보다 덜하지만 유럽이나 일본보다 더하다고 했다.

나는 사실 잘사는 나라는 우리보다 (빈부 격차가) 더 심할 거라고 생각했다. 한국 사람이 빈부 격차에 왜 예민하냐면, 미국이나 유럽, 일본은 부자들의 80%가 자수성가다. 20%는 상속에 의한 부자다. 한국은 반대로 부자의 80%가 상속이다. 그래서 우리가 더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본은 사장이 부사장보다 월급을 조금 더 받는다. 사장도 힘이 없고 전무 등 핵심 이사가 움직인다. 월급도 별 차이가 없다. 그래서 평등 사회에 가깝다.

박 대통령은 10월13일 “5·24 문제 등도 남북한 당국이 만나서 책임 있는 자세로 진정성 있는 대화를 나눠 풀어나가야 한다”고 했다. 취임 후 5·24조치를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5·24조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총리로 간 이유 중 하나가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 관계가 너무 경색돼 있었다. 총리 지명을 받았을 때 경색된 남북 관계를 완화시키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머릿속으로 개성공단 외에도 해주공단·신의주공단 등 공단을 늘리자는 생각을 했다. 공단이 대여섯 개 되면 ‘이게 통일이 아닌가’ 느낄 수 있도록…. 천안함 사태가 나기 전까지는 남북 관계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사태가  터져서 아무 말도 못했다. 현 정부는 좀 유연하게 했으면 좋겠다. 남북 관계를 언제까지 긴장 관계로 끌고 갈 수 있겠나. 5·24에 대해 남북이 대화를 통해 논의하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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