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처럼 지내면 되지 돈은 무슨…”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4.10.23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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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하는 셰어하우스의 함정… 성범죄·절도·사기 주의해야

대학생 한 아무개씨(여·21)는 자신이 활동하던 인터넷 커뮤니티에 ‘하우스메이트를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한 사람에게 연락이 왔다. 오프라인 모임에서 몇 번 만나 안면이 있는 한 시민단체 대표였다. 그는 “방 두 개 중 한 개만 쓰고 있어 방이 남는다”며 관심이 있으면 연락을 하라고 했다. “돈 받을 생각은 없다”고도 했다.

일단 약속을 잡고 만나 얘기를 나눴다. 그는 만약 같이 살게 되면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의 사회적 위신과 체면 때문이라고 했다. 한씨가 공과금이라도 내겠다는 것을 한사코 거절하던 그는 식사 후에 함께 산책을 하면서 한씨의 가방을 들어주고 어깨를 감싸는 등 과도한 친절을 베풀었다. 하우스메이트가 된다면 가끔 데이트를 할 수 있겠느냐고 묻기도 했다. 헤어진 뒤, 한씨는 그로부터 ‘하메(하우스메이트의 줄임말)로 지내는 동안만 사귈까요’라는 내용의 문자를 받았다. 사귀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하메로 지내는 기회를 ‘양보’하겠다고 했다. ‘사귀는 것의 대가로 자신의 집에서 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우회적 표현이었다. 어이가 없어진 한씨는 이 같은 내용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공개했다. 같은 사람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증언이 속속 나왔다.

ⓒ 일러스트 오상민
기러기 아빠들도 하우스메이트 구한다

집세가 부담스러웠던 고 아무개씨(여·26)는 하우스메이트를 구하기 위해 학교 사이트에 글을 올렸다. 같이 살기로 한 이 아무개씨(여·24)는 근처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라고 했다. 둘이서 약식으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같이 생활한 지 세 달이 지났지만 이씨는 한 번도 공동 공간인 거실과 주방, 화장실을 청소하지 않았다. 고씨가 해놓은 음식은 매번 사라지기 일쑤였고, 밤에는 친구들을 불러 음주가무를 즐겼다. 참다못한 고씨가 불만을 토로하자 ‘짐을 빼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다음 날 저녁 돌아와 보니 이씨의 짐이 사라졌다. 그런데 고씨의 노트북과 LCD TV, 서랍에 넣어둔 과외비까지도 함께 없어졌다. 알고 보니 그녀의 이름과 다닌다는 학교는 모두 거짓이었다. 해당 학교 과사무실에 문의하자 “그런 학생은 없다”고 했다. 

셰어하우스. 다수가 한 집에 살면서 개인 공간은 따로 사용하고 거실이나 화장실 등은 공유하는 생활방식이다. 이곳에서 함께 사는 동거인을 ‘하우스메이트’라 부른다. 최근 ‘셰어하우스’ ‘룸메이트’ 등 한집에서 살아가는 연예인들의 삶을 그린 예능 프로그램이 방영되면서 셰어하우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텔레비전 속의 셰어하우스는 웃음과 기대로 가득하다. 연예인들이 모여 지속적인 이벤트와 돌발 상황을 만들어낸다. 최근 종영한 한 드라마도 남녀 4명이 한집에 어울려 살며 우정과 사랑을 나누는 내용을 주제로 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현실은 브라운관을 통해 본 공간처럼 화려할 수 없다. 애초 셰어하우스는 ‘집세를 아끼기 위한’ 취지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사회 초년생이나 대학생들이 주로 모여 셰어하우스를 구성했지만 최근에는 ‘기러기 아빠’들도 하우스메이트를 구해 같이 사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아내와 자식을 해외로 보낸 아빠들이 남는 방을 활용해 하우스메이트를 들이는 것이다.

‘셰어하우스’는 어떻게 꾸려질까. 모집은 보통 온라인에서 이루어진다. 부동산 커뮤니티를 비롯한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는 ‘하우스메이트를 찾는다’는 내용의 글이 시시때때로 업데이트된다. 한 부동산 커뮤니티를 방문하자 ‘25·여·보증금 100·월세 30·신원 보장’이란 제목이 눈에 띄었다. 자신이 원하는 조건을 내걸고 동거인을 찾는 셈이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약속을 잡은 사람들은 만나서 동거를 할지 여부를 결정해 계약한다. 일반적으로 ‘각자 보증금을 얼마씩 낸 뒤, 한 달에 얼마씩 나눠 내자’는 구두 계약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원래 살고 있던 세입자가 나중에 들어온 사람의 보증금 반환을 미루거나 보증금을 들고 사라졌다 하더라도 피해를 본 임차인은 권리를 주장할 방법이 없다. 계약 자체가 효력이 없기 때문이다. 민법 제629조에 ‘임차인은 임대인의 동의 없이 권리를 양도하거나 전세를 줄 수 없다. 이를 위반한 경우 집주인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집주인의 동의 없이 셰어하우스 계약을 한 경우, 집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한다.

셰어하우스 계약이 세입자와 세입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게 문제다. 계약을 위해 집을 방문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 집주인인지 세입자인지 알 수 없다. ‘하우스메이트를 구한다’는 글을 올린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해봤다. 그중 한 사람은 자신이 세입자라고 밝혔지만, 집주인이 계약에 참여하는지 묻자 “꼭 그래야 하나”라고 되묻기도 했다. 반드시 등기부등본을 열람해 집의 실소유주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등기부등본에 나온 주민등록번호와 상대방의 주민등록증에 있는 주민번호가 일치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상대방이 집주인이 아니라면 반드시 집주인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하우스메이트 빙자해 “동거녀 구합니다”

룸메이트·하우스메이트를 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커뮤니티. 회원 수가 5000명을 넘는 이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하우스메이트를 구한다’는 글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올라온다. 그런데 이곳에 올라오는 글 중 이상한 조건을 내건 경우가 있다. ‘방세 무료’ ‘공과금만 내세요’ ‘10만원만 내시면 됩니다’ 등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조건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의 단서가 더 붙는다. ‘여성’일 경우에 한해서다.

하우스메이트를 구한다는 한 남성과 연락이 닿았다. 현재 부산에 거주 중이라는 그는 이야기를 나누거나 저녁 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착한’ 여성 하우스메이트를 찾고 있었다. 직업도 묻지 않았다. 한 달 월세가 얼마냐고 묻자, 공과금 명목으로 5만원만 내라고 했다. 당장 방을 보러 오라며 근처에 있으면 데리러 가겠다고도 했다. 왜 그만큼의 돈만 받느냐고 물었더니 “편하게 애인처럼 지내면 되는 거지, 돈이 무슨 상관이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동거녀’라는 단어를 ‘하우스메이트’로 그럴듯하게 바꾼 경우다. 한 남성은 아예 글에 ‘뚱뚱하지 않은’ 사람을 구한다고 기재해놓았다. 몸이 크다 보면 청소하기 귀찮아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건전한 하우스메이트 개념이지 이성 관계로 지내는 것은 절대 아니라며 여성을 안심시킨 후 함께 살다 성폭행한 사례도 있다. 한 남성은 하우스메이트로 지내던 여성을 성폭행해 지난 1월 강간치상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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