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된 각그랜저도 부품 걱정 ‘뚝’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4.10.23 14:3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대파텍스, 단종 차량 부품 생산…앞선 A/S로 수입차 공세 격퇴

현대차는 2000년대 초반 미국 시장을 공략하면서 ‘10년, 10만 마일(16만㎞) 무상 보증’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자동차 품질에 대한 자신감이 그만큼 컸기에 가능한 모험이었다. 소비자 입장에서 10년 이상 큰 문제 없이 탈 수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10년 뒤에는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게다가 최근 풀 모델 체인지 주기가 5~6년으로 짧아지기까지 했다. 차 수명은 길어진 대신 모델 단종 시기는 짧아진 것이다.

문제는 자동차는 폐차할 때까지 계속 굴러다녀야 한다는 점이다. 자동차산업의 특성상 생산만으로 제조사의 책임이나 역할이 끝나지 않는다. 자동차는 제품 성격상 소모성 부품과 유지·보수용 부품의 원활한 공급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이 자동차 브랜드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충남 서산 현대파텍스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 현대파텍스
원활한 A/S는 자동차 핵심 경쟁력

소비자에게 원활한 A/S용 부품 공급과 합리적인 가격정책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차량의 내구성과 수명은 적정한 가격의 부품으로 수리를 제때 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국내에서도 수입차 확산의 걸림돌로 지적되는 게 바로 A/S 비용이다. 외국산 대중차의 경우 비슷한 배기량의 국산차와 이제는 가격 차이가 크게 나지 않지만 A/S 공임비용이나 부품가격, 차량 정비소 확보 면에선 아직 큰 격차를 보이고 있어 소비자의 선택을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원활하고 합리적인 A/S 부품가격이 자동차 경쟁력의 핵심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현대·기아차에 신차 부품과 A/S용 부품을 공급하는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1986년 출시한 각그랜저 모델 부품도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 처음 신차를 발표했을 때 책정한 부품가격을 단종 후에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2007년 발표한 EF쏘나타나 트라제XG의 문짝 가격이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고 그는 설명했다. 

자동차는 2만여 개의 부품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기계 장치다. 현대·기아차에서 이 많은 부품 수급을 관리하는 총책임자가 바로 현대모비스다. 현대·기아차 마크를 달고 현재 전 세계에서 달리는 차는 5000여 만대. 이 중에는 단종 차량도 있고 생산 중인 것도 있다. 5000만대가 문제 없이 운행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유지·보수를 위한 부품과 정비소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현대모비스는 전국에 23개 부품 사업장과 43개 정비 파트에 순정 부품을 공급하고 있고, 해외에도 51개 직영 부품 창고를 두고 있다. 소비자가 원하는 부품을 좀 더 빠른 시간에 조달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단종 차량이다. 현대·기아차그룹 자료에 따르면 2013년 전 세계에서 운행 중인 현대·기아차는 4900만대이고 이 중 2100만대가 단종 모델이다. 2014년에는 5200만대가 운행 중이고 이 중 2300만대가 단종 모델이다. 국내도 마찬가지지만 한번 판매된 차량은 폐차할 때까지 부품 공급이나 A/S에 대한 책임이 제조사에 있다.

단종 차량의 법적인 책임 공급 기간은 단산 이후 8년까지다. 하지만 법적으로 끝났다고 부품 공급을 중단하는 회사는 없다. 자동차산업 특성상 생산된 지 15년 이상 된 차가 운행 중인 경우가 많고 제조사는 이런 차량의 부품 공급도 책임져야 브랜드 평판이나 재구매율을 높일 수 있다.

현대모비스도 단산한 지 8년이 지난 차종의 부품을 공급하고 있고 더 오래된 차종도 마찬가지다. 현대모비스는 양산 차종 78개와 단산 차종 118개 등 총 196개 차종의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부품 품목 수는 무려 201만개에 달한다. 이 중 단산 차종 품목이 약 70%로 이들 부품 재고량만 2000여 억원에 이른다. 이 중 단산된 지 10년 이상 지난 오래된 차종 재고는 450억원 수준으로 이는 전체 보유 재고의 13%가량이다.

단종 차량 부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제조사와 수많은 부품 생산 협력업체의 공조가 필요하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협력업체의 경우 부품 생산 계약을 맺을 당시부터 A/S 부품 생산에 관한 규정이 계약서에 들어 있다”고 밝혔다. 만에 하나 단종된 부품 생산업체가 도산할 경우에도 그 회사가 생산을 맡았던 볼트나 너트 하나까지 확보해야 하는 책임이 현대모비스에 있다. 이를 위해 현대모비스는 연간 확정량 발주제도와 최종주문제도(final buy order)를 운영하고 있다. 단산 부품 중 수요가 극히 적고 아예 수요가 없는 상태에 이른 부품은 예비분까지 일괄 생산해 보관하고, 저순환 부품은 연간 단위로 소요량을 예측해 부품 수급을 원활하게 하는 제도다.

1987년 6월18일 현대자동차가 내놓은 배기량 2400cc급의 각그랜저 승용차. ⓒ 연합뉴스
맞춤형 주문 생산으로 빠르게 응대

부품 사업은 브랜드 경쟁력을 높이는 무기이자 수익원이기도 하다. 현대모비스의 2013 회계연도 재무제표를 보자. 현대모비스가 모듈 및 부품 제조로 올린 매출(총수익)은 27조원이고 이 중 A/S용 부품 사업에서 얻은 매출이 6조2000억원이다. 영업이익은 모듈 및 부품 제조 분야에서 1조7000억원, A/S용 부품 사업에서 1조4000억원을 냈다. 총수익에서 모듈 및 부품 제조가 차지하는 비중이 A/S 부품 사업보다 4배 이상 큰데도 영업이익은 비슷하다. A/S용 부품 사업이 브랜드 경쟁력 확보에 큰 역할을 하는 것처럼 수익성 확보에도 많은 기여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단종 차량의 A/S 부품을 생산하기 위해 별도의 전문 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현대차(56%)·기아차(31%)·현대모비스(13%)가 공동 출자해 2005년 11월 현대파텍스라는 단종 차량 부품 전문 회사를 세운 것. 충남 서산에 있는 이 회사 공장은 현대차 생산에 사용된 금형 2926조와 기아차 금형 1915조 등 4841조의 금형을 위탁 보유하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부품을 수급하는 현대모비스를 통해 단종 모델의 문짝이나 후드 등의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찍어서 공급하고 있다. 철저한 주문자 위탁 생산 방식이다.

현대파텍스 서산공장에는 4개의 프레스 라인과 9개의 차체 조립 라인, 도장 라인이 있다. 사실상 작은 자동차 생산 공장이라고 보면 된다. 차대와 겉면의 도장 라인이 없을 뿐 헌 차를 가져가면 완전히 새 차로 탈바꿈할 수 있게 모든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신차 개발과 양산차 생산은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가 담당하고 현대파텍스는 A/S 부품을 전담 생산하는 역할 분담을 하고 있다. 올해 단종된 제네시스 BH나 구형 카니발 금형도 이곳으로 옮겨 A/S용 부품을 계속 생산하고 있다. 현대파텍스는 현대·기아차의 현지 공장이 세워진 곳을 중심으로 동반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외국산 수입 자동차의 공세에 가장 확실한 무기로 떠오른 국산차 제조사의 부품가격·공임·서비스 등 A/S 대응 능력이 어떻게 발전할지 주목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