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비가<悲歌>
  • 윤길주 | 편집국장 ()
  • 승인 2014.11.06 15:1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 광화문 일대를 돌아봤습니다. 그곳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갈등의 분화구였습니다. 슬픔, 분노, 증오가 용해되지 않는 화학물질처럼 부딪치며 파열음을 내고 있었습니다. 이런 감정들이 때론 외부 자극에 의해 격렬하게 반응하고 있었습니다. 혼돈의 시대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걱정입니다. 광화문광장에서 먼저 눈에 띈 것은 세월호 참사 관련 농성장입니다. 곳곳에 희생자를 애도하는 현수막과 노란 리본이 걸려 있습니다. 오랜 노숙과 깊은 마음의 상처 때문인지 유족들은 초췌하기 그지없습니다. ‘어느 날 나무는 말이 없고 생각에 잠기기 시작한다/하나, 둘 이파리를 떨군다’. 교보타워에 걸려 있는 황인숙의 ‘어느 날 나무는 말이 없고’ 시구입니다. 평소 같으면 누구라도 되뇌어볼 법한 예쁜 글이지만 비장하고 음울한 분위기에 묻혀버립니다.

 청계천 입구에는 ‘세월호 특별법 반대, 국회 선진화법 폐기’ 등을 주장하는 단체들의 농성장이 있습니다. 차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편에서는 세월호 진상을 밝히라 절규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를 규탄합니다. 두 풍경에서 우리 사회 갈등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태평로 금융위원회 앞에서는 동양증권 피해자들이 ‘동양증권 비호 중단하고 인가 취소 후 폐쇄하라’며 피켓 시위를 합니다. 덕수궁 앞에선 쌍용차 희생자 가족이 해고자 복직을 외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유족은 말할 것도 없고, 피켓을 들고나온 이들은 저마다 사연이 있을 겁니다. 월급을 못 받거나 해고당한 사람, 부당한 공권력에 희생된 사람 등등. 민주주의 국가에선 누구나 합법적 테두리에서 투쟁할 수 있습니다. 시민들도 이들의 항거에 따른 불편을 감내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하지만 도심을 점령한 시위대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통합과 소통을 강조했습니다만 지금 어떻습니까. 관용은 사라지고 우리 편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온 나라를 덮어버렸습니다. 갈등을 조정하고 중화할 기능이 상실된 듯합니다. 박근혜 정권이 지지 세력만으로 국정을 끌고 갈 수 있다는 오만에 빠진 건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야당은 제 몸 하나 못 가눈 채 내

부 권력다툼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일부 기업주들은 노동자를 소모품쯤으로 여기는 풍토가 만연해 있습니다. 이러니 부당한 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겁니다.

 이젠 한 발짝씩 물러나 성찰의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나마 세월호 관련법이 여야 합의로 타결됐다니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유불리를 따질 게 아니라 무엇이 실타래처럼 엉킨 갈등을 푸는 길인지 숙고했으면 합니다. 겨울이 다가옵니다. 억울한 일로 광화문에 나온 이들이 더 추워지기 전에 작은 희망이라도 안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광화문광장은 갈등의 분출구가 아닌, 신명 나는 시민의 놀이터가 되어야 합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