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세월호 5척 침몰 꼴로 병원에서 죽어 나가”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4.11.11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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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사고 사망자 한 해 2만여 명…“소송이라도 할 수 있다면 다행”

6세 때 백혈병 진단을 받은 정종현군은 항암 치료를 받으면 90% 이상 완치된다는 대구의 한 대학병원 권유로 치료를 시작했다. 9세가 되던 2010년, 막바지 치료를 받던 정군은 사소한 의료 과실로 하루아침에 싸늘한 주검이 됐다. 당시 정군은 두 종류의 항암제를 맞았다. 그런데 의료진은 정맥에 들어갈 항암제를 척수에, 척수에 투여할 항암제를 정맥에 주사하는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다. 다음 날 시작된 하반신 마비는 곧 전신으로 퍼졌고, 투약한 지 10일 만에 숨졌다. 의료진은 투약 실수를 알고도 부모에게 알리지 않았다. 의료사고를 인정하지 않았고 부모와의 대화조차 피했다. 부모는 사실을 환자단체에 알렸고, 소송을 시작했고, 재감정에 들어갔다. 재감정을 의뢰받은 7개 병원은 부모의 요청을 무시했다. 의료분쟁이 생기면 사실을 밝히기보다 의사와 병원 편을 드는 나쁜 관행이 재연됐다. 병원이 정군 부모와 합의하고, 의료사고를 인정하기까지 꼬박 2년이나 걸렸다. 자식을 잃은 부모로서는 그야말로 피를 토하는 심정이었다. 정군 부모의 노력으로 지난해 환자안전법안이 마련됐다.

사진은 특정 사실과 관계 없음. ⓒ 시사저널 임준선
“의료사고 사망자 10명 중 4명 살릴 수 있었다”

‘병원에 걸어 들어간 사람이 죽어서 나왔다’는 소식을 종종 접한다. 한마디로 의료사고라는 주장이다. 현대 의학으로도 불가항력인 부분이 있으므로 이런 주장이 모두 의료사고라고 단정할 순 없다. 복부 수술 후 장끼리 들러붙는 현상(장 유착)이 그런 예다. 문제는 의료인의 실수로 빚은 의료사고다. 수술뿐만 아니라 투약, 검사 등 모든 진료 과정에서 실수는 사망·장애·후유증 등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국내에서는 얼마나 많은 의료사고가 일어날까. 국가 차원의 실태조사가 없다. 일부 병원에서 조사한 바를 종합하면, 100명 가운데 의료사고를 당하는 사람은 9명꼴이다. 의료사고를 당한 사람 100명 가운데 사망하는 사람은 7명꼴이다. 사망한 사람 100명 가운데 살 수 있었던, 즉 예방 가능했던 사람은 40명가량이다. 이상일 울산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한 해 약 4만3000명이 의료사고로 사망하고 이 가운데 1만9000명은 예방할 수 있었던 사람”이라며 “매달 세월호 5척이 침몰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의료사고로 억울하게 죽는 사람이 한 해 2만명에 육박한다는 말이다.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므로 이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지만 다른 사망자 수와 비교하면 짐작할 수 있다. 한 해 항공기를 포함한 모든 교통사고 사망자는 6000명, 산재 사망자는 2500명, 자살자는 1만4000명이다. 또 의료사고 사망자 중 살릴 수 있었던 비율은 40%인데 미국(15%), 싱가포르(22%)에 비하면 의료 후진국 수준이다. 사망은 아니더라도 장애를 입거나 후유증을 겪은 사람은 더욱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강태언 의료소비자연대 사무총장은 “신해철씨 사망은 복막염 등 감염 문제”라며 “중환자실에서 감염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연간 3만명에 달한다. 자신의 질병이 아닌 다른 병으로 죽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 대학병원은 그나마 감염관리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감염에 대한 인식이 있지만 문제는 그런 의식이 없는 일반 병원”이라고 지적했다. 

의료분쟁 10건 중 7건, 의료진 실수

고 신해철씨는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유족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하고 언론의 관심도 받지만, 일반인이 의료사고를 당하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의학 지식이 없는 사람이 의료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내봤자 시간과 돈만 낭비한 채 삶만 축날 게 빤하다. 김구범씨(50·가명)는 몇 해 전 서울에 있는 한 척추 전문 병원에서 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다리에 마비 증세가 나타나 걸음걸이에 이상이 생겼고, 극심한 통증이 나타났다. 그는 “다른 병원에서 진단받아도 신경 손상이 수술 때문이라는 점을 검증할 수 없어 소송도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법원에 접수된 의료소송은 매년 1000건을 웃돈다. 2012년 이후 발생한 3000여 건의 의료사고 소송 중 실제로 합의나 조정이 성립된 경우는 682건에 불과하다. 수술 관련 의료분쟁 10건 중 약 7건은 의료진의 실수라는 분석이 있다.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는 2011년부터 2013년 8월까지 조정 결정한 수술 사고 관련 의료분쟁 총 328건을 분석했다. 성형수술·종양수술·골절수술·척추수술 등에 의료분쟁이 발생한 이유로는 의사의 수술 잘못이 127건(38.7%)으로 가장 많았고, 설명 미흡 41건(12.5%), 수술 후 관리 문제 38건(11.6%) 등으로 나타났다. 약 81%가 의료진의 책임 사유로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배상이 결정된 사례는 222건(67.7%)이고, 이들 중 70%는 수술 사고 후 추가로 입원했거나 입원 기간이 연장됐지만 진료비를 환자가 부담하는 등 이중고를 겪고 있다. 1심에서 원고 승소율은 2010년 26%에서 최근 30%대로 상승하는 추세지만, 완전 승소율은 한 차례도 1%를 넘지 못했다.

소송이나마 할 수 있다면 다행이라는 게 의료사고를 당한 환자들의 하소연이다. 이진열 의료사고가족연구회 회장은 “외과 수술처럼 큰 의료행위에 대한 의료분쟁은 꾸준하지만, 성형외과·치과 등 생명과 직결되지 않는 의료행위는 애매하다”며 “법으로 해결하면 실익이 있어야 하는데 시간·노력·비용 등을 따지면 오히려 손해가 날 수 있어 소송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정부는 의료사고를 중재하겠다는 취지로 2012년 보건복지부 산하에 의료분쟁조정중재원(중재원)을 세웠다. 환자는 의료 사고가 의심될 때 일차적으로 병원 측과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중재원에 도움을 청할 수 있다. 직접 소송하는 것보다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중재원 관계자는 “방문하거나 전화로 무료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상담 후 필요한 서류를 갖춰 접수하면 된다. 감정단이 과실 정도와 후유증 등을 심사해 감정서를 발급한다. 이를 토대로 병원과 조정에 들어가고 손해배상액도 산정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강제력이 없어 의료기관이 중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조정 절차는 시작조차 할 수 없다. 지난해 병원이 조정을 받아들인 경우는 전체의 절반이 안 된다. 일단 조정이 시작되면 10건 가운데 9건은 합의에 이른다. 

의료진이 의료 과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소비자상담센터(국번 없이 1372번)나 한국소비자원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 의료진의 부주의로 인해 환자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또는 재산상의 손해를 당했다는 인과관계가 명백할 때 의료 과실을 인정받을 수 있다. 최근엔 의료진의 과실이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은 경우도 의료진의 과실 외 다른 행위가 없었고 환자가 치료 전에 건강했다면 의료사고의 개연성을 인정하는 경우도 있다. 의료 과실이 명백한 경우, 병원 측은 치료비 등 손해배상 외에도 2000만원에서 최고 8000만원까지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 홍 아무개씨(20대)는 식도가 좁아져서 식도 복원 수술을 받았다. 의사가 수술 부위를 소독하는 과정에서 왼쪽 경동맥이 파열됐다. 이에 대한 수술을 받았으나 뇌경색이 생겨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장애가 발생한 점이 인정돼 2억9800만원을 배상받았다.

한 대학병원에서 수술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진은 특정 사실과 관계 없음. ⓒ 시사저널 임준선
“니어미스 보고로 의료사고 예방해야”

서울 8개 대학병원 간호사 886명을 대상으로 환자 안전을 조사한 연구 논문(2007년)이 있다. 소속 병원에 심각한 안전 문제가 있다는 응답이 52.4%로 절반을 넘었다. 더 심각한 실수가 발생하지 않는 것은 단지 우연일 뿐이라는 응답은 82.5%로 나타났다. 환자에게 해가 되는 의료 실수를 항상 보고하지는 않는다는 응답도 66.5%나 됐다.

의료인이 의료 과실을 공개하는 분위기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런저런 이유로 의료 과실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의료계의 현실이다. 법적으로 의료 과실 보고는 의무 사항이 아니다. 일부 병원이 명백하고 중대한 의료사고를 보고하도록 규정해두고는 있지만 작은 의료사고는 보고조차 하지 않는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오래전 일이지만 나도 의료사고를 냈다. 환자가 몰라서 그냥 넘어갔지만 아찔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며 “이런 사고가 현재 의료 현장에서 반복되고 있다”고 고백했다.

특히 ‘실제로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하마터면 큰일 날 뻔한 의료 과실’(near miss)은 더 공개할 필요가 있다. 중대 사고 한 건이 생기기 전에 300건의 니어미스가 있다는 ‘하인리히 법칙’이 있다. 따라서 니어미스 보고는 의료사고 예방과 직결된다. 박의우 건국대 법의학 교수는 “일본에서는 니어미스를 경험한 의료인이 의무적으로 보고하고, 이를 분석해 의료 시스템 개선에 반영함으로써 의료사고 예방에 이용하는 곳도 있다”며 “의료사고 예방 차원에서 니어미스 보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시사저널 박은숙
환자 안전에 대한 인식과 노력을 어떻게 보는가.

교통사고 사망자를 줄이기 위해 에어백을 설치하고 신호 체계를 변경하는 노력을 기울이지만, 병원에서 이유도 모르고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려는 노력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피해 규모와 심각성에 대한 조사·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영국·덴마크·프랑스 등 선진국은 1990년대 후반부터 환자의 안전 현황 조사와 대책 수립에 나섰다. 

의료인이 솔직하게 과실을 보고하기 위해선 어떤 환경이 필요한가.

미국은 의료 과실을 보고하는 개인이나 의료기관을 무기명으로 해서 비밀을 보장해주고 있다. 의료 과실에 대한 책임을 묻기보다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인식이다. 의료 과실 보고를 시행한 미국 미시간 대학 병원에서는 2001년 262건이던 의료분쟁 소송이 2005년 114건으로 줄어들었다. 300만 달러이던 소송비용도 100만 달러로 감소했다. 

의료사고 예방을 위한 또 다른 방법은 무엇인가. 

미국에서 의료인이 ‘미안하다’(sorry)는 말을 하자는 캠페인이 일고 있다. 과실이든 아니든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을 때 환자나 보호자에게 감정을 표현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의료인과 환자 사이에 신뢰를 구축하는 바탕이 되므로 의료사고 예방에 효과적이다.

예방을 잘한 사례를 들면.

항공사가 대표적이다. 항공사고는 대형 참사여서 예방이 최우선이다. 실수를 자발적으로 보고하고, 문책은 없으며 비밀을 보장해준다. 보고 자료를 분석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서 사고를 방지한다. 1960년대 중반 20%대인 항공기 안전사고 발생률은 2000년대 들어 운항 횟수가 40배 이상 늘어났어도 0%에 가까운 수준으로 떨어졌다.


 
 

의료사고 예방·대처 어떻게 할까 


■자신의 병력 및 상태 고지

진료 시 자신의 병력(고혈압·당뇨 및 수술 경험, 약 부작용 등), 특이체질, 복용하는 약물, 현재 상태 등을 의료인에게 반드시 알린다.

 

■ 수술은 신중히 선택

수술을 권유받았을 경우에는 긴급한 수술이 아니라면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고 꼭 필요한지 확인한다. 추가로 다른 의료진의 소견을 들어보거나 보전적인 치료를 받으면서 경과를 관찰하는 것도 불필요한 수술을 예방하는 방법이다.

 

■ 검증된 의료기관 방문

응급상황에 충분히 대처가 가능한 시설과 숙련된 전문의의 협진이 가능한 의료기관을 선택해야 수술 사고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 수술 전 철저한 사전 검사 시행

수술을 받을 경우에는 철저한 사전 검사를 통해 정확한 진단을 확인한 후 결정하되 수술 방법의 적합성, 수술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 및 수술의 한계, 수술 후유의 사항과 부작용 발생 시 대처 방안 등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듣고 동의서를 작성한다.

 

■수술 후 관리 방법 및 일정 체크

수술 후 요양 과정에서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요양 방법, 합병증 예방법, 추후 외래 방문 일정 등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듣고 중요한 사항은 메모해둔다.

 

■ 이상 증상 발생 시 즉시 병원 방문

수술을 받고 귀가 후 이상 증상이 있으면 지체하지 말고 의료인과 상담하고 진료를 받는다.

 

■ 수술 사고 발생 시 전문 기관에 의뢰

수술 사고로 의심되면 의료진에 원인 및 상황 등의 설명을 요구하고 수긍하기 어려울 경우 의무기록부 및 방사선 필름, 소견서 등 자료를 확보하고 사고 경위를 작성해(육하원칙) 소비자상담센터(국번 없이 1372번) 및 한국소비자원에 도움을 요청한다.                                                            자료: 한국소비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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