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y가 아닌 Money가 승패 결정한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4.11.12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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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압승한 미국 중간선거…역대 최고 ‘쩐의 전쟁’

민주주의의 본고장이지만 돈줄이 정치인의 명줄을 꽉 움켜쥐고 있는 곳이 미국이다. 정치자금을 가장 많이 모은 후보가 당선되는 게 이곳의 진리다. 자금이 든든하면 할 수 있는 게 많다. 미디어에 많은 광고를 집행해 자신을 드러내고 공약을 알리기만 해도 노출 빈도가 낮은 상대 후보에 비해 유리해진다. 더 친근한 후보가 표를 더 많이 얻는 것은 세계 어디서나 비슷하다.

원래 미국은 정치자금을 크게 문제 삼지 않는 풍토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왜냐하면 역대 최대의 자금이 선거판으로 들어오면서 정도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돈을 밑천으로 열심히 달린 공화당은 11월4일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 상·하원을 모두 석권했다.

공화당에 돈이 몰린 이유는 분명했다. 가장 큰 돈줄은 월스트리트다. 정치자금을 감시하는 시민단체인 책임정치센터(CRP)에 따르면, 월스트리트의 금융·증권사들은 이번 중간선거를 앞두고 1억6900만 달러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선거자금을 지원했다. 이 가운데 70% 정도가 공화당으로 몰렸다. 과거 월가 금융회사들은 민주당을 지지했다. 때로는 위험을 회피하고자 공화·민주 양당에 적절하게 안배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오바마 정부는 지난해 대형 은행의 부실 상품 판매 등과 관련해 수백억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는데 월가가 이에 반발하며 등을 돌렸다.

보수 대법관 5명, 헌금 상한액 무너뜨려

공화당에 돈이 쏠린 부분보다 더 큰 문제는 역대 최대 규모의 자금이 몰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법인세 회피 등을 통해 부를 늘린 폴 싱어는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 창업자다. 엘리엇매니지먼트 등 헤지펀드들은 올해 2620만 달러의 정치자금을 후원했는데 대부분 공화당으로 흘러갔다. 4년 전 중간선거 때의 1370만 달러와 비교하면 두 배에 달한다. 헤지펀드들은 오바마 정부가 추진하는 세금 회피를 방지하는 법안에 반발해왔다. 이처럼 과거보다 많은 자금이 이번 선거판에 몰려들면서 “달러로 표를 산다”는 말이 떠돌았다.

올해 4월2일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이런 금권 선거가 가능하도록 했다. 이날 대법원은 개인 정치헌금의 총액을 규제하는 법률을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9명의 대법관 가운데, 5 대 4 박빙의 위헌 결정이 가져온 변화는 엄청났다.

공화당은 환호했다. 부유층 후원자가 많아서다. 반면 부패 근절을 위해 헌금 상한선 설정이 필요하다는 오바마 행정부와 민주당의 주장은 대법원에 의해 배척당했다. 미국에서는 개인이 아닌 기업이나 노동조합 등 단체가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직접 기부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그래서 보통 ‘팩’(PAC·정치활동위원회)이라는 전국 규모의 정치자금관리단체가 조성되고 부유층 등으로부터 5000달러 상한액을 모아 뿌려주는 구조다. 이것 역시 선거자금 규정법에 따라 헌금의 총액에 상한선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개인이 선거에 미칠 수 있는 금전적인 영향력은 어느 정도 제한이 있었다.

최근 들어 대법원은 정치헌금을 보수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2010년 ‘시티즌 유나이티드 판결’이 대표적이다. 특정 후보나 정당과 직접적 협력 관계가 없는 정치 활동일 경우 기업이나 노동조합이 지출하는 기부금에 제한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내렸는데 이 역시 ‘표현의 자유’ 관점에서 이루어졌다. 시티즌 유나이티드 판결이 나온 이후 거액의 헌금을 모으는 이른바 ‘슈퍼팩’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미디어를 통한 후보 비방 활동은 특정 후보나 정당과 직접적인 협력 관계가 없는 정치 활동으로 기부금 제한이 없어졌다. 그래서 2012년 대통령 선거부터는 상대 진영을 향한 네거티브 광고 공격이 과거보다 맹렬하게 벌어졌다. 선거에 소요되는 자금 역시 늘어났음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슈퍼팩의 활약은 눈부셨다. 당시 대선이 임박하면서 슈퍼팩의 선거자금 지출액 증가세는 가팔랐는데 9월 초에는 주당 1900만 달러 수준이던 지출액이 10월 초에는 2300만 달러, 선거를 목전에 둔 11월에는 주당 7000만 달러까지 급증했다. 

그리고 2014년 4월 개인의 정치헌금 상한 규정마저 위헌으로 판결이 나자 진보 성향인 스티븐 브레이어 대법관은 “‘시티즌 유나이티드’ 판결이 문을 열었다면 오늘 결정은 수문을 열어젖힌 것과 같다. 소수의 기부자가 다수의 목소리를 익사시켰다”고 말했다. 소득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미국 사회에서 정치 영향력의 격차마저 심화된 셈이다. 정치자금 흐름을 감시하는 시민단체 ‘퍼블릭 시티즌’은 “수정헌법 1조는 진정한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엑손이나 화이자, 골드먼삭스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며 분노를 표출했다.

중간선거에서 크게 증가한 ‘다크 머니’

분노를 표출하게 한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이번 중간선거 구도를 확연하게 바꿔놓았다. CRP의 자료를 보면, 2010년 상원의원 선거에서는 7억8000만 달러가 사용됐지만 올해 선거에서는 6억3600만 달러로 감소했다. 2010년 435명 전원을 뽑는 하원의원 선거에 사용된 선거자금은 약 10억 달러였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9억4500만 달러였다. 이 숫자들은 선거운동원에게 지급한 보수와 광고, 각종 캠페인 활동비 등으로 출처와 쓰임새가 투명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는 ‘다크머니’는 대폭 늘어났다. 확연히 공개되는 개인 기부금이 아니라 비영리 단체들과 슈퍼팩이 뿌리는 자금은 신고되지 않는 대신 선거 광고 구매나 세금 환급 절차를 통해서만 집계되는데 이들이 올해 뿌린 정치자금은 6억8900만 달러에 달했다. 2010년 선거와 비교하면 두 배 정도 늘어난 수치다.

실제로 다크머니의 힘은 강력했다. 예컨대 초접전 지역에서 선거 광고를 대폭 늘려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비방하며 표심에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박빙 양상을 보이던 콜로라도 주에서는 9월 말~10월 초 2주 사이에 1만3000편의 선거 광고가 쏟아졌는데 다른 지역 광고보다 2배 이상 많은 양이다. 원래 민주당의 텃밭이었던 콜로라도는 그렇게 공화당의 차지가 되었다. 다수(many)가 아닌 돈(money)에 의한 선거, 지금 미국 민주주의의 민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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