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까지 굶기진 말라
  • 김재태 편집위원 ()
  • 승인 2014.11.1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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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부모님은 밥상 앞에서 유난히 엄하셨습니다. 입은 늘 넘치고, 음식은 늘 모자라던 시절이었습니다. 모든 예의범절이 밥상 위에서 싹트고 밥상 위에서 길러졌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족들의 식사를 안전하게 지키며 아이들이 커서 밥싸움만은 하지 말고 살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렇게 한 집안의 평화는 밥상에서 시작돼 밥상에서 완성됩니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서 가장 치열하면서도 치졸한 다툼이 밥싸움입니다. 밥싸움은 또한 대부분 밥그릇싸움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그 밥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사단은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돌연한 무상급식 중단 선언입니다. 예산 부족과 도교육청이 무상급식 집행 실태에 대한 감사를 거부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내세웠습니다. 거기에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도교육청에 대한 무상급식비 예산 지원을 거부하면서 숟가락을 더 얹었습니다. 이래저래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의 마음만 시나브로 타들어갑니다.

얼핏 보기에 돌발적인 사건 같지만 사실 이번 논란은 이미 예고된 혼란입니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재정 부담에 허덕이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입니다. 무상급식을 둘러싼 이번 싸움도 근본 원인은 ‘돈’입니다. 돈이 해결되지 않으면 풀리지 않을 문제입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겨우 풀릴까 말까 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정치권은 그런 본질을 외면한 채 또 힘겨루기로 판을 흐트러뜨릴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참에 무상급식 정책 자체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둥 밥상 엎기를 도모하고, 야당은 약속을 지키라며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벌써부터 무상급식을 볼모로 한 여야 간 진영 싸움의 조짐이 나타납니다.

이미 실시되고 있던 무상급식을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없던 일로 만들어버린다면, 정치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습니다. 길이 막히면 새 길을 뚫을 생각을 해야지 뒤로 물러설 생각부터 하면 아무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바로 그 새로운 길, 다른 길을 찾아내는 것이 정치의 몫입니다. 그런 문제를 풀 지혜를 찾아보라고 정치가 있는 것입니다.

소싯적에 어른들을 만날 때마다 노상 듣던 말은 “밥은 먹었느냐”였습니다. 밥은 우리 모두의 안녕을 묻는 안부 인사이자, 사회의 안녕을 묻는 안부 인사입니다. 밥 먹는 일이 편해져야 세상 사

는 일이 편해진다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아이들에게 무상급식을 하는 이유도 결국은 밥이 편해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함일 것입니다. 무상급식은 사회가 아이들을 먹거리 걱정 없이 편히 지내게 지켜주겠다는 신뢰의 표시입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주었던 밥그릇을 다시 빼앗는다면, 혹은 돈이 모자라 상차림이 부실해진다면 그것은 결코 끼니의 결핍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무상급식이라는 밥상이 뒤엎어질 때 아이들이 느낄 신뢰의 공복감은 실로 엄청난 트라우마를 남길 것이 분명합니다. 그건 단순히 아이들의 배를 굶기는 차원을 넘어 아이들의 영혼을 굶기는 잔혹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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