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선 스티브 잡스가 나오지 않는다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11.19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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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의 조건> 펴낸 이주희 EBS 프로듀서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이목을 끈 방송 프로그램이 있었다. <킹메이커-대통령 선거전의 비밀>이다. 지상파 3사가 아닌 교육 방송사인 EBS에서 이 프로그램을 제작·송출했다는 게 눈길을 끌었다. 한국 언론계의 간판으로 꼽히는 방송인 손석희씨도 출연해 프로그램에 무게를 실어줬다. 이 프로그램을 연출한 이주희 프로듀서(46)는 ‘대통령 선거전의 비밀’을 들려줬다.

“네거티브 공세를 꺾거나 중도파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은 쟁점을 주도하는 것이다. 네거티브 공세를 막는 가장 효과적 방법은 그 주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쟁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중도파로 불리는 부동층에 대해서는 적극적 선거 전략을 펴야 한다. 심리 실험 결과를 보면 중도파란 각 사안에 대한 의견이 중간쯤에 어정쩡하게 걸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보수나 진보의 견해가 혼재돼 있는 사람을 뜻한다. 이들을 공략하려면 어정쩡한 견해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이주희 제공
이 프로듀서가 최근 <강대국의 비밀>이라는 다큐멘터리 방송을 내보낸 후 이 또한 책으로 엮었다. 책 제목은 <강자의 조건>이다. <킹메이커-대통령 선거전의 비밀>과 <강대국의 비밀>에는 비슷한 비밀이 있다. 이긴 자는 보통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는 것. 군림하거나 매혹적이거나. 그래서 <강자의 조건>은 부제로 ‘군림할 것인가 매혹할 것인가’를 띄웠다.

“급속히 몰락한 제국은 순혈주의라는 공통점”

‘말 위에서 천하를 지배할 수 있어도,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 없다’는 몽골제국의 오래된 경구처럼 단순히 힘과 권력만으로 사람을 이끌 수는 없다. <강자의 조건>은 어떻게 하면 강자가 될 것인가를 다룬 것이 아니라 진정한 강자가 가진 리더십의 실체를 밝히는 내용이다. 책의 취지를 조지프 나이 하버드 대학 석좌 교수의 말을 인용해 거듭 알린다.

‘권력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능력이다. 주로 세 가지 방법을 쓴다. 강압을 통해서, 대가를 지불해서, 또는 매력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이 프로듀서는 강대국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난데없이 순종과 잡종, 순혈주의와 다원주의를 언급한다. 생물학적 순종이 변화하는 환경에 매우 허약한 것처럼 문화적으로도 폐쇄적인 순혈주의는 환경 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자신에게 익숙하고, 자신이 잘하고 있는 것에만 집착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다양한 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없기에 쉽게 극단주의로 빠진다. ‘다른 생각’이라는 이름의 제어 장치가 없는 자동차인 셈이다. 그래서 급속도로 몰락한 제국은 순혈주의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강자의 조건>은 고대 로마제국에서부터 20세기 미국에 이르기까지 2500년의 역사에서 강대국을 만든 리더십의 실체가 힘이 아니었다는 것을 밝힌다. ‘다원성’이라는 점에서 동시대의 어떤 나라보다 뛰어났던 나라이고, 그 시대의 기준에서 볼 때 가장 ‘관용’적인 나라가 진정한 강대국으로 우뚝 섰다는 것이다. 이 프로듀서는 중국이 미국을 대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시리아 출신 아버지를 둔 스티브 잡스와 케냐 출신 아버지를 둔 오바마, 헝가리 이민자 출신의 조지 소로스가 공존하는 미국은 그 다원성만으로도 세계의 인재를 끌어들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미국에서 세계은행 총재로 취임한 김용 총재도 한때 대단한 화제가 됐다. 하지만 여기서 대단한 것은 김용 총재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다.”

“한국사 전체 다루는 다큐멘터리 만들고 싶어”

책이 서점에 깔린 날을 전후해 이 프로듀서는 이탈리아에서 새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었다. 그에게 방송 프로그램을 책으로 출간한 특별한 계기나 의도가 있었는지 물었다. “영상물은 여러 가지 면에서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현장을 직접 생동감 있게 보여줄 수 있다는, 어떤 매체도 가지지 못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50분이라는 방송 시간 안에 모든 지식을 다 담을 수 없다는 제약이 있다. 또 영상으로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표현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특히 역사 다큐멘터리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과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시청자에게 보여줄 수 없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항상 다큐멘터리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채 남은 이야기들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 아쉬움 때문에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다시 펴냈다.”

<강대국의 비밀>은 고대 이래 패권 국가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만큼 워낙 방대해 제작 과정에서 공부하고 취재한 내용 중에 미처 방송에 담아내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 그것들을 그는 독자와 공유하고 싶었다. 특히 세계적인 석학들이 인터뷰 과정에서 들려준 통찰력 있는 언급을 방송에서 다 살리지 못하는 것도 아쉬웠다. 책을 만들면서 아쉬웠던 부분이 어느 정도 해소됐다고 덧붙인 이 프로듀서는 역사 전문 프로듀서로서 차기작 또한 역사물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역사에 관심이 많다. 역사는 언제나 우리에게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주기 때문이다. 앞으로 준비 중인 작업도 이런 관심과 맞닿아 있다. 역사물을 기획하고 있는데, 특히 한국사와 관련된 주제에 더 집중해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고 싶다. ‘한국인이란 정체성은 과연 어떤 역사를 통해 형성됐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한국사 전체를 다루는 역사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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