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중궁궐 ‘문고리 3인방’ 그물에 걸리다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4.12.09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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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회와의 관계·인사 개입 드러나며 최대 위기 맞아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지난 4월 돌연 사퇴한 후 그 배경에 대해 청와대 안팎에서는 다양한 추측이 나왔다. 당시 여러 설들 가운데 가장 유력한 것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의 행정관 감찰 보고서가 특정 언론에 보도된 것과 관련해 문건 유출에 따른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는 것이다. 조 전 비서관은 사퇴 이후 언론과의 접촉은 일절 하지 않았다. 다만 측근 인사들과의 만남에서 당시 사퇴 배경에 대해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간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비서관과 만난 한 청와대 관계자는 “조 전 비서관이 사퇴 직후에는 ‘3인방’이나 정윤회씨와 관련해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최소한 당시 사퇴의 직접적 원인이 이른바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과의 권력 암투에서 밀려났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조 전 비서관은 지금 자신의 사퇴 배경에 정윤회씨와 문고리 3인방이 있었음을 강하게 시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조응천 전 비서관은 지난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캠프’의 네거티브 대응팀에서 일하면서 3인방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힘을 보탰다. 박 대통령이 당선된 후 그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전문위원을 지내면서 3인방과 함께 청와대에 입성했다. 당시만 해도 조 전 비서관과 3인방의 간극이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조 전 비서관이 3인방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분석도 많았다.

왼쪽부터 이재만 총무비서관·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 연합뉴스·뉴시스
김 실장 ‘OK 사인’ 나도 3인방에서 막혀

대표적인 것이 초대 민정수석을 지낸 곽상도 전 수석과의 민정수석실 내부 갈등설이 나왔을 때다. 당시 조 전 비서관의 배후에 3인방이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곽 전 수석이 자신의 측근인 이중희 부장검사를 민정비서관으로 밀었고, 이에 대해 부정적이던 조 전 비서관과 갈등이 있었다는 것인데, 그 배후에 곽 전 수석을 견제하던 3인방이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기자와 만난, 3인방과 가까운 여권의 한 인사는 “곽 전 수석은 대선 때 별달리 공헌도 안 한 인물인데 지금에 와서 자리 욕심을 채우고 있다”며 곽 전 수석을 비난했다.

그런데 곽 전 수석이 지난해 8월 물러난 후, 조 전 비서관과 3인방의 관계가 틀어진 것으로 보인다. 공직기강비서관으로서 업무 특성상 측근 등 비선(秘線) 권력과의 암투는 숙명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다음은 정치권 출신 청와대 관계자의 말이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라는 자리는 원래 적이 생길 수밖에 없는 자리다. 청와대뿐만 아니라 정부 부처의 모든 공직자를 사정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권력의 핵심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끊임없는 견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외로운 자리다.”

드러나는 ‘문고리’의 인사 개입 정황

조 전 비서관을 둘러싸고 청와대 안팎에서 견제의 목소리가 나온 것은 곽 전 수석이 낙마한 지난해 8월 이후였다. 당시 기자와 만난 친박계의 한 인사는 “원래 조 전 비서관은 자신이 맡은 업무를 충실히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며 “하지만 청와대 입성 이후 자기 욕심을 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청와대 안팎에서 조 전 비서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퍼져 나온 것이다. 조 전 비서관이 민정비서관으로 가기 위해 자가발전을 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결국 그는 1년 만에 청와대에서 나왔다. 그런데 그의 사퇴 후 8개월 만에 비선 권력 암투설이 촉발되면서 그 이유가 드러나고 있다.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으로 통하는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은 ‘박근혜 의원’ 시절부터 국회에서의 위세가 대단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박근혜 의원이 ‘친박(親朴)계’의 수장으로 있을 때부터 친박 의원들 사이에서는 3인방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자주 표출됐다. 대통령 당선 이후 최대 관심사 중 하나가 바로 3인방의 거취 문제였다. 박 대통령은 이들을 총무비서관과 제1·제2 부속비서관으로 임명하며 신뢰를 확인해줬다. 대통령과 가장 근접한 3대 핵심 보직이다. 정권 출범 직후 이들 3인방은 언론과 정치권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듯 몸을 낮추는 자세를 보였다. 그들의 동향 인사들마저 “3인방 얼굴을 따로 한번 보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라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정치권, 특히 여당 내에서조차 정권 초반 인사 실패가 속출하면서 대통령을 밀착 보필하는 3인방이 자주 거론됐다. 당시 허태열 비서실장이 청와대 비서실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청와대 실세로 여겨지던 이정현 의원(당시 정무수석)은 3인방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결국 허태열 초대 비서실장이 취임 6개월 만에 물러나고, ‘7인회’ 멤버 가운데 한 명인 김기춘 비서실장이 등장하자 일각에서는 문고리 권력에 대한 견제가 시작됐다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당·정·청을 아우르는 카리스마를 지니며 ‘기춘대원군’이라고까지 불린 김 실장도 3인방을 확실히 견제하지 못한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감지됐다. 김 실장의 권한을 넘어 청와대 말단 인사까지 그들이 개입한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청와대 내부 사정에 밝은 여권 관계자는 “청와대 인선에 김 실장까지 OK를 한 사안을 두고 이재만 실장이 이런저런 이유로 처리를 미루면서 인사가 지연된 적이 있다”면서 “결국 우여곡절 끝에 교통정리가 된 다음에야 겨우 인사가 처리된 적이 있다. 당시 이를 두고 ‘대원군’도 3인방을 컨트롤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고 말했다.

‘문고리 권력’이 가장 많이 회자된 소문은 청와대와 정부 부처 등 각종 인사와 관련한 문제였다. 애초 ‘3인방’이 아닌 ‘4인방’으로 불리던 시절 맏형 격이던 고(故) 이춘상 보좌관이 내부 교통정리를 해왔지만, 지난 2012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3인방은 각자 역할을 나눠 가지며 각개약진을 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앙 일간지의 한 청와대 출입기자는  “세 사람이 과거에는 끈끈한 관계였는지 몰라도, 지금은 서로 ‘소 닭 보듯 한다’더라. 각자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놓고 서로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끼리의 통제도 없는 셈이다”고 전했다.

이는 인사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이재만 비서관과 안봉근 비서관의 경우, 특정 분야에 대한 인사 개입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인사 ‘뒷담화’ 정도로 나오던 소문들이었으나, 최근 비선 권력 암투설이 제기되면서 전직 정권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10월22일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 참석한 김무성 대표. ⓒ 시사저널 이종현
김무성 대표도 3인방과 관계 안 좋아

안 비서관은 그동안 경찰 인사에 집중적으로 관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조응천 전 비서관이 최근 언론을 통해 공개한 증언과 맥락을 같이한다. 조 전 비서관은 “작년 10월 말인가 11월 초인가, 청와대에 들어올 예정인 경찰관 1명에 대해 검증을 하다가 ‘부담(스럽다)’ 판정을 내렸다. 쓰지 않는 게 낫다는 말이다. 그랬더니 안 비서관이 전화해서 ‘이 일을 책임질 수 있느냐’고 하더라. 그때 2부속실에서 왜 경찰 인사를 갖고 저러는지 이상했는데, 한 달 뒤쯤 민정수석실 소속 경찰관 10여 명을 한꺼번에 내보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더 기가 막힌 것은 후임들이 다 단수로 찍혀서 내려왔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조 전 비서관은 경찰 인사 명단이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에 “(민정) 수석이 나한테 줬는데, 결국 제2부속실 아니겠나. 당시 경찰 인사는 2부속실에서 다 한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말했다.

3인방 중 가장 선임자인 이재만 비서관이 정부 부처 인사에 직간접으로 개입했다는 증언도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소문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유 전 장관은 12월5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종 문화체육부 2차관과 이 비서관은 하나로 묶어서 생각하면 정확하다. 김 차관은 자기 배후에 김기춘 실장이 있다고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니지만 그렇지 않은 여러 정황 증거가 있다. (인사 청탁 등은) 항상 김 차관이 대행했다. 김 차관의 민원을 이재만 비서관이 V(대통령을 지칭하는 듯)를 움직여 지시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비선 개입 의혹에 이어 인사 전횡이 속속 드러나면서 청와대 내부에서조차 비서관 3인방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힘을 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진위 여부를 떠나 통제되지 않는 문고리 권력이 정부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의 정윤회 동향 보고서를 통해 비선을 통한 국정 개입 논란이 증폭되고, 조 전 비서관의 증언으로 정윤회씨와 이 비서관이 연락을 주고받은 사실이 확인되면서 그동안 정씨와 거리를 두고 있다던 문고리 3인방의 해명이 궁색해졌다.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권은 이번 사안을 비선 권력에 의한 국정 농단 등 권력형 게이트로 보고 박근혜정부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문제는 청와대의 우군(友軍)이 되어야 할 여당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과거 박 대통령의 후보 시절부터 3인방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3인방이 다른 의원들과는 달리 김 대표를 상당히 어려워했다는 것이다. 예전 대선 정국 때 캠프 회의석상에서 3인방 가운데 한 명이 서성이자 “니 뭐꼬. 나가라”고 호통을 쳤다는 일화가 친박 의원들 사이에서 전해진다. 차기 원내대표를 노리는 것으로 거론되는 유승민 의원도 3인방에 대해 불쾌감을 표출한 바 있다. 향후 3인방의 행보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여론이 들끓고 있는데도 대통령이 계속 3인방을 보호하려 한다면 파국이 올 수도 있다는 분위기가 여권 내부에서 조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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