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 뚜 뚜 땡! “NHK 뉴스입니다, 아베 총리는…”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4.12.16 10:1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본 공영방송 정권 유착 노골화…OB모임, 모미이 회장 사퇴 촉구

지난 7월, NHK에 아베 내각의 핵심 인사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등장했다. 관방장관이 NHK에 온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방송국 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이날 스가 장관은 NHK의 대표적 심층취재 프로그램인 <클로즈업 현대>에 출연해 집단적 자위권에 관해 대담할 계획이었다. 대담 전 모미이 가쓰토 NHK 회장은 귀빈실을 찾았다. 그리고 대기하고 있던 스가 장관에게 “잘 부탁드린다”며 고개를 숙이고 갔다. 방송 전 부조정실에는 NHK 이사가 들어와 프로그램 진행을 지켜보고 있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NHK의 구니야 히로코 뉴스캐스터가 스가 장관에게 물었다. “스가 장관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한 용인 말인데요. 각의 결정에 의하면 일본의 자위를 위한 수단,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가 가능한 것이지 타국을 지키기 위한 행사는 안 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재차 확인하는 건데, 타국을 지키기 위한 전쟁에는 참가하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장관은 답했다. “그건 분명합니다.”

ⓒ AP연합
구니야 캐스터가 재차 다른 질문을 던졌다. “헌법의 해석을 바꾼다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일본이란 나라의 모습 그 자체를 바꾸는 것과 연결된다고 생각하는데 외적인 요인, 즉 국제적 상황이 바뀌었다는 것만으로 헌법의 해석을 변경해도 되는가라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장관은 답했다. “그런 점에 대해서는 오히려 42년간 계속 그대로인 채로 좋았을까요. 국제화의 흐름 속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건 사실이 아닐까요. 그런 와중에 우리들은 헌법 9조를 소중히 하면서도 종래의 정부 견해, 그런 기본적 논리의 둘레 안에서 이번에 새로운 ‘일본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타국에 대한 무력 공격이 발생해 일본의 존립이 위협당하고 국민의 생명, 자유 및 행복 추구의 권리가 근본부터 위협당할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라는 문구를 넣어서 각의 결정을 했습니다.”

우리네 ‘땡전 뉴스’ 연상케 하는 ‘땡아베 뉴스’

캐스터가 돌진하고 장관이 방어하는 흐름으로 대담은 흘러갔다. 대담은 차질 없이 이대로 잘 끝난 듯했다. 그런데 종료 직후부터 상황이 급변했다. 스가 장관 측에서 사전 질문지에 없는 내용을 던진 점, 그리고 구니야 캐스터가 스가 장관의 발언 기회를 막으며 “정말 그럴까요”라고 물고 늘어진 것 등을 지적하며 문제제기를 했다. 모미이 NHK 회장이 스가 장관 측에 사과의 뜻을 표명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몇 시간 후, 총리 관저 쪽에서 NHK 상층부에 “현장 컨트롤도 제대로 하지 못하느냐”는 질책성 항의가 들어왔다는 소식이 퍼졌다. NHK 상층부는 제작 부서를 상대로 누가 이 프로그램을 기획했는지, 누가 구니야 캐스터에게 이런 질문들을 던지게 했는지 등을 조사했다고 한다. 당시 고단샤에서 발행하는 주간지 ‘프라이데이’는 아베 정부와 NHK의 관계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건을 이렇게 풀어서 보도했다. 스가 장관은 “끔찍한 기사”라며 부정했지만, 그 후 고단샤에 항의하는 등의 행동은 취하지 않았다.

지난 5공 정권 당시 우리의 ‘땡전 뉴스’ 추억을 떠올리듯 최근 NHK에서는 ‘땡아베 뉴스’가 진행 중이다. 예를 들어 집단적 자위권이 한창 문제가 되던 시절을 살펴보면 이랬다. 아베 총리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현행 헌법 해석을 변경하겠다는 계획을 표명한 5월15일부터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한 7월1일까지 NHK의 대표 뉴스 프로그램인 <뉴스워치9>(NHK의 간판 뉴스 프로그램)에서는 집단적 자위권을 총 22회 다뤘다. 1973년 NHK에 PD로 입사했던 NHK의 OB 멤버 이케다 리에코는 “<뉴스워치9>에서 (집단적 자위권에 관한) 여당의 발언 내용과 이에 대한 반론이나 총리 관저 주변에 모여 시위하는 사람들을 거론하는 시간을 측정해보니 전자는 114분, 후자는 77초밖에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비단 <뉴스워치9>만의 문제는 아니다. 앞서 스가 관방장관과 대담을 했던 <클로즈업 현대>(월~목요일 저녁 7시30분~56분 방송)는 각의 결정에 이르기까지 집단적 자위권 문제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해설 프로그램인 <시론 공론>은 3회 다루었지만 이 프로그램이 자정에 약 10분 정도 방송되기 때문에 시청자 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 야스히코 다지마 조치 대학 교수(미디어윤리)는 “NHK에 보도 프로그램이 많지만 특히 <클로즈업 현대>에서 각의 결정을 한 번도 거론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특정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 것도 결과적으로는 정권을 지원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OB들 “‘모두의 NHK’ 아닌 ‘아베의 NHK’”

마이니치신문이 전하는 NHK 현장 분위기는 씁쓸하다. 한 관계자는 “실제로 모미이 회장이나 이사회가 사전에 방송 내용에 대해 의견을 내는 것은 아니다. 회장과 가까운 인사가 내부 회의에서 활발히 의견을 개진하고 있는 것 같다. 국장급에서 현장까지 그 공기를 읽고 서로 정권 비판적인 프로그램 제작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이케다처럼 NHK의 상태를 걱정하는 사람은 적지 않다. 새삼 주목을 받고 있는 쪽은 NHK의 OB들이다. 이들은 친(親)아베화돼가는 NHK의 중심에 모미이 가쓰토 NHK 회장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그의 사퇴를 촉구하는 서명을 들이밀었다. 사퇴를 촉구한 OB 서명자는 1527명이다. NHK OB 10명 중 1명이 서명한 셈인데 이런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다. OB들이 만든 ‘방송을 말하는 모임’이 NHK 회장 사퇴를 촉구한 이유는 간단명료했다. “이대로 가면 ‘모두의 NHK’가 아닌 ‘아베의 NHK’가 된다. 어떻게든 제동을 걸고 싶다”는 게 그들의 바람이다.

세계적으로 공영방송에 대해서는 매번 정치와 거리를 두는 방식을 두고 논쟁이 벌어져왔다. NHK 역시 마찬가지다. NHK의 역사는 정권과의 거리 두기 역사였다. 그중 NHK에 가장 강경했던 총리는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1964~1972년 재임)다. 비록 양자로 입적돼 성은 다르지만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친동생이자 아베의 작은 외할아버지인 사토 전 총리는 “언론은 국익 추구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해온 인물이다. NHK에서 정치부 기자로 오래 활동했던 야스시 가와사키는 일본 진보 매체인 ‘IWJ’와의 인터뷰에서 “아베는 정치적으로는 기시 노부스케의 DNA를, 미디어에 관해서는 사토 에이사쿠의 DNA를 이어받았다”고 말했다. 어떻게든 NHK를 종속시키는 일에 전속력을 내겠다는 것, 그리고 국영화의 야망을 거의 이뤄가고 있다는 점에서 닮았다는 얘기다.

그동안 NHK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우파가 겨냥하는 정치적 적대감이었다. 이것을 아베 총리는 이용했던 경험이 있다. 2005년 ‘위안부’에 관한 다큐멘터리 내용을 변경시켰다는 의심을 받은 전례가 있다. 당시 아사히신문은 “NHK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 연행과 성적 학대에 대해 쇼와 천황에게 책임이 있다는 시민단체의 모의재판 영상을 아베 의원 등의 요청을 받고 삭제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아베 총리는 이를 부정했다.

이미 한 번 대립한 경험이 있는 아베 총리는 2012년 12월 2차 내각을 열고 난 후 본격적으로 NHK 장악에 나섰다. 방법은 사실상 NHK에서 유명무실한 조직이었던 ‘NHK 경영위원회’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었다. 경영위원회는 이사회 성격으로 사장을 임명하는 역할을 한다. 2013년 아베의 동료들은 잇따라 NHK 경영위원으로 임명돼 모미이 회장의 취임 길을 열어줬다.

자민당, 중의원 선거 앞두고 방송 통제 강화

아베 총리가 임명한 경영위원들의 견해를 들여다보면 일본 보수의 한계점을 오간다. 철학자인 하세가와 미치코는 보수파 논객으로 여성 학자지만 신문 칼럼에 여성의 사회 진출이 출산율을 저하시켰기 때문에 여자는 집에서 육아를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썼다. 작가인 하쿠타 나오키는 올해 2월 도쿄 도지사 선거에서 우익 후보를 위해 응원 연설을 하며 “난징 대학살은 없었다” “전후 도쿄 재판은 연합군이 행한 일본인 대학살을 눈속임하기 위한 재판이었다”고 말했던 인물이다.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 인물도 영입했다. 일본담배산업 고문인 혼다 가쓰히코는 아베 총리가 소년 시절 가정교사를 했던 인물이고 나카지마 나오마사는 아베 총리와 가까운 재계 인사들의 모임 ‘사계절의 모임’ 회원으로 그 역시 총리의 자문역을 맡아왔다. 이처럼 구성된 12명의 경영위원회 멤버 중 10명이 아베 정권 아래서 임명된 사람들로 채워졌다. 회장으로 임명되려면 경영위원 12명 중 9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했는데 그 숫자를 넘어선 셈이다. 그런 배경에서 탄생한 모미이 회장 체제는 첫걸음부터 정치적 거리두기가 아닌 유착을 택했다.

비단 이것은 NHK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 언론계에서는 “아베만큼 미디어 간부들과 회식을 많이 하는 역대 총리는 없다”고 말한다. 친밀도가 압력으로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 가운데 11월20일 자민당이 보낸 하나의 공문이 NHK와 도쿄에 본사를 둔 방송국들에 전달됐다. ‘선거 시기 보도의 중립 및 공정성 확보에 대한 부탁’이라는 제목의 이 문서에는 출연자의 발언 횟수와 시간, 게스트 출연자의 선정, 테마 선택, 거리 인터뷰와 자료 영상 사용 등 구체적인 부분을 지적하는 선거 방송에 관한 주문 내용이 실렸다.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편집권 개입에 해당하는 부분이었다. 아베 총리가 생각하는 정치와 미디어의 관계는 현재 이런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