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국정 농단 아들 감싸다 식물 대통령 돼
  • 김현일 대기자 ()
  • 승인 2014.12.25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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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인척·주변 권력형 비리로 레임덕 자초했던 교훈 새길 때

레임덕(Lame Duck)이란 말이 공공연히 회자된다. 대통령의 권위가 땅에 떨어져 말이 먹히지 않고 국정 수행에 차질이 생기는 ‘임기 말 증후군’이 레임덕인데 임기가 3년 이상 남은 집권 2년 차 박근혜 정부에 붙는 것은 괴이하다.

5년 단임제가 도입된 1987년 체제 이래 역대 대통령들은 예외 없이 레임덕을 겪었다. 한시적 권력의 숙명이었다. 여기엔 얄팍한 인심이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대통령 자신의 실정(失政)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실정의 분출 시기와 규모에 따라 민심이반 시점과 강도가 갈렸고, 레임덕 기간이 정해졌다. 레임덕을 초래하는 이유로는 대통령과 여당 지지 기반의 편파, 정당의 이념적 특성에 따른 충성도의 한계 등이 거론되지만 근본적 요인은 역시 실정이다. 그리고 대통령의 가족 등 최측근에 의한 국정 농단이 실정의 핵심이다.

ⓒ 시사저널 포토
다른 과오는 차치하고라도, 자신이 대통령 재직 중 검은돈 관련으로 아들을 교도소에 보낸 김영삼(YS)·김대중(DJ) 대통령, 형이 감옥에 간 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이 레임덕의 덫에 걸리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사실 ‘당신이 옆에 있으면 우리까지 망한다’는 소속 정당의 분노와 우려 속에 쫓겨나거나 탈당을 해야 했던 대통령들에게는 레임덕이라는 표현마저 과분할지 모른다.

YS의 대통령 시절 궤적은 국민이 얼마나 현명하고 민심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웅변해준다. 정권 출범 직후의 하나회 숙청에 이어 금융실명제 전격 실시 등 일련의 개혁 정책을 추진할 당시 그의 지지율은 90%를 훌쩍 넘었다. 당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좋아하는 인물’ 조사에서 아이돌 가수, 최고 인기 탤런트를 제쳤을 정도다. 그랬던 YS가 아예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했다. 1997년 우리나라를 덮친 외환위기 사태가 결코 우연이 아니다.

2년 차에 나도는 레임덕은 위중한 사태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 후 처음으로 30%대로 떨어졌다는 한국갤럽 등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심리적 마지노선을 넘었다는 경보도 나온다. 청와대로서는 YS의 사례 등을 들이대며 ‘지지율은 별게 아니다’라고 할지 모른다. 앞으로 잘하면 벌충할 수 있다고 자위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지지율 20%대의 제1야당을 상대로, 집권 초기에 자신의 대선 득표율만도 못한 성적표를 받은 것은 심각하게 고민할 대목이다. 국정 일정표가 근본적으로 어긋난다는, 그래서 처량한 결말이 우려된다는 측면에서 특히 그러하다.

5년 단임제 대통령의 시간표는 빤할 수밖에 없다. 시간에 쫓기는 탓이다. 따라서 임기 첫해에 강력한 사정·숙정 작업을 통해 여야 정치권과 공직사회 ‘군기’를 잡고 권력 기반을 다져야 한다. 그래야 개혁 드라이브가 가능하고 국민의 지지도 확보할 수 있다. 2년 차에는 그 여세를 몰아 정책을 추진하고, 3년 차에는 그 절정에 이르러야 낙제를 면할 수 있다. 이후 4년 차부터는 ‘차기’ 논의가 본격화되고 총선 등의 일정이 겹치면서 청와대의 추동력은 현격히 떨어진다. 5년 차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역대 최대 표차로 당선됐으나 촛불시위 사태로 임기 첫해를 허송하고, 임기 내내 ‘고·소·영’ 인사 시비에 휘말린 이명박 대통령이 어땠는지는 우리가 보는 그대로다. 집권 중·후반 친서민 정책으로 잠시 반짝했으나 역시나였다. 대북 송금 특검 시비 등으로 첫해를 그냥 지나치고 탄핵 결정에 지방선거 대패 등이 겹친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임기 초반 잘나가던 YS나 DJ도 친인척의 권력형 비리를 포함한 국정 농단으로 자멸의 길을 걸었다. 외환위기 극복으로 50% 이상의 안정적 지지를 받던 DJ는 ‘진승현·정현준·이용호’의 3대 게이트에 부인 이희호 여사가 낀 ‘옷로비 의혹’ 사건에 휘말리면서 하루아침에 손가락질 받는 대통령이 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많은 사람이 ‘성공적 대통령’을 점쳤다. 무엇보다 대통령 본인에게 사심이 없는 듯했고, 역대 대통령들을 몰락하게 만든 친인척이 별로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우리가 목도하는 실상은? 임기 시작 전 정권인수위원회 시절부터 터져 나온 잇단 인사 패착은 다수 국민의 눈총을 받았고, 본격적 정책 추진에 돌입해야 할 2년 차에는 세월호 참사로 허둥대야 했다. 거기에 ‘정윤회와 3인방’ 국정 농단 시비 사태가 클라이맥스를 이루고 있다.

역대 대통령을 레임덕 늪에 빠뜨린 것이 친인척의 권력형 부정부패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해선 안 될 부분이 있다. 국정 농단은 금전과 관련된 권력형 부정부패는 물론 국정 시스템을 어지럽히는 인사·의사 결정 폐습을 망라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검은돈과 무관하다’고 딴전을 부릴 계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검찰의 ‘덮기’에 민란 조짐…특검으로 비화

YS를 망친 아들 현철씨 문제 처리 당시의 수순·행태는 시사하는 바 크다. 단군 이래  최대 금융 부정이라는 ‘한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청와대 눈치를 보던 검찰은 주변만 맴돌았다. 그러나 5조원 넘는 대출에 사라진 돈만도 1조 수천억 원이 되는 만큼 ‘소통령’ 현철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나마 검찰에 나온 현철은 ‘고소인’ 자격이었고 26시간의 조사 뒤 ‘무혐의’ 귀가 조치 됐다. 실체 규명을 위한 수사가 아니라 덮기 위한 꿰맞추기 수사라는 게 압도적 여론이었다. 민란(民亂) 조짐 속에 서울대 교수들이 가두시위를 벌인다는 급박한 상황에 이르자 청와대는 수사 책임자를 바꾼 검찰의 재수사에 ‘동의’했고 현철씨는 구속됐다. 고위 관료, 국정원 간부, 30여 명의 국회의원 등이 줄줄이 연계된 국정 농단의 총화였지만 거기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만으로도 YS 정부는 ‘끝장’났다. 애당초 진상에 접근하려는 노력을 했다면 이처럼 치명적인 사태는 막았을지도 모른다.

‘정윤회와 청와대 3인방’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민정수석비서관실에 파견됐던 한 경찰 간부의 ‘소행’쯤으로 치부하고 마무리 지을 모양새다. 그러나 이런 결과가 발표될 경우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이 얼마나 될까 의문이다. 그리 되면 특검으로 비화할 것은 당연지사고, 온 나라가 쑥덕거림과 혼란에 빠질 공산이 크다. 앞날이 걱정되는 다른 소이는 여당 의원들까지 나서 ‘소통’을 강조하지만 청와대의 외면이 여전해서다. 그 와중에 비서실장·수석들은 그림자도 안 비치고 대통령이 공방의 전면에 나서니 더욱 안타깝다. 박정희 대통령 어깨너머로 대권 수업을 받은 박근혜 대통령이지만 ‘무한 임기’의 아버지 때와는 전혀 달라진 한국 사회와, 특히 ‘임기’가 엄연함을 직시해야 한다는 지지자들의 고언도 이어진다.

‘한국적’ 레임덕 토착화의 원조 격인 YS의 차남 김현철 한양대 특임교수가 ‘정윤회 비선 논란’과 ‘최 경위 자살 사건’에 즈음해 박 대통령과 검찰을 거세게 비난했다. 누구보다 정권의 비극적 귀결을 생생하게 경험한 만큼 정곡을 찌르는 금언일 수도 있기는 한데…. 역사의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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