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없는 마을엔 희망도 없어요”
  • 전남 강진=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5.01.0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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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위기 전남 강진 옴천초등학교가 만들어낸 기적

시련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힘들 수도 있고, 별거 아닐 수도 있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저서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살면서 누구나 좌절을 경험한다. 이 좌절과 시련의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인생이 천차만별로 갈린다. 위기의 절벽으로 내몰린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은 어떤 힘을 지니고 있는 걸까. 비결은 단순했다. 이들에게는 넘어질 때 일으켜주는 작은 손이 있었다. 혼자가 아닌 함께이기에 좌절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키울 수 있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알록달록한 고깔모자를 쓴 아이들의 웃음이 해맑다. 지난 12월24일 전남 강진군 옴천면에 위치한 옴천초등학교에서 생일을 맞은 학생들을 축하하기 위한 잔치가 열렸다. 축하를 받고 있는 학생 중에는 올해 일흔셋이 된 오정순 할머니도 있다. 옴천초의 생일잔치가 특별한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옴천초는 2013년까지만 해도 재학생이 10명도 채 안 돼 폐교 위기에 놓였다. 지금은 전교생이 28명으로 늘어났고, 친환경 교육을 위한 학교 시설 증축 공사가 한창이다. 옴천초 교직원들과 면사무소 직원들 그리고 마을 주민들이 똘똘 뭉쳐 만들어낸 기적이다.

① 2014년 12월24일 옴천초교는 방학식을 맞아 학생들의 생일파티를 열었다. ② 옴천초 1학년에 재학 중인 엄영숙씨(53·왼쪽)와 오정순 할머니(73)는 만학의 꿈을 펼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전남 강진군 옴천면은 800여 명이 모여 사는 작은 고을이다. 주민 대다수가 고령층인 데다 아이를 키우는 젊은 층이 외부로 빠져나가면서 지역 내 유일한 초등학교인 옴천초에 위기가 들이닥쳤다. 2~3년 전부터 전교생이 한 자릿수로 줄어들게 되면서 폐교 위기에 내몰린 것이다. 2013년 옴천초 교장 공모제를 통해 임금순 교장이 새로 부임하면서 학교에 희망의 불씨가 댕겨졌다. 임 교장은 도시 학생에게 시골 생활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 ‘농촌 유학 프로그램’을 도입해 도시 유학생 유치에 적극 나섰다. 

“학교가 살아나야 마을이 산다”

“학교 없는 마을에는 희망이 없어요. 주민 모두가 이런 생각으로 학교와 관련된 일이라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고 계십니다.” 임 교장은 옴천초의 큰 변화는 마을을 아끼는 주민과 함께 만들어낸 결과라고 강조했다. 임 교장은 “강진군은 인구 부족 현상이 심각한데 유학생 유치로 벌써 11명의 학생이 늘어났다. 2014년만 해도 농촌 유학에 대한 문의가 100건을 넘어섰는데 프로그램이 자리 잡히면 그 효과는 훨씬 클 것”이라고 말했다. 옴천초의 농촌 유학 프로그램이 호응을 얻게 된 것은 강진군에서 유학비의 50%를 지원하고 옴천면 주민들이 유학 온 학생들을 돌보는 위탁가정을 운영하는 등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시골 생활을 통해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 한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다 지난 9월부터 옴천초에서 유학 중인 이우열군은 “이곳은 서울이랑 공기가 다르니까 정말 좋다. 체험학습도 많이 하고 친구들하고 노는 시간도 많아져 학교생활이 재미있다”고 말했다. 우열군은 서울에서 학교에 다닐 땐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판정을 받을 정도로 집중력이 부족했다. 임 교장은 “우열군은 옴천초로 유학 온 이후 개선되는 모습이 매일 눈에 띌 정도”라며 “지금은 의젓하게 수업을 듣고 공부도 잘한다”고 말했다.

도시에서 온 유학생들은 폐교 위기의 학교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10명도 안 됐던 학생 28명으로 늘어

우열군처럼 도시에서 옴천초로 유학 온 학생은 모두 11명이다. 서울·경기·경남 등 다양한 지역에서 모인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마을의 세 가구가 위탁가정으로 나섰다. 아이들은 부모 곁을 떠나 단체생활을 하면서 독립심을 기르고 있다. 6학년 이승호군은 “이 학교에 먼저 온 친구의 할머니께서 소개해주셔서 유학을 오게 됐는데 학교나 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지내니까 외롭다는 생각은 안 든다”며 “부모님도 처음에는 주말에 찾아오시곤 했는데 지금은 걱정을 안 하신다”고 말했다.

위탁가정을 꾸리며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주민 엄영숙씨(53)는 “두 아이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중에 유학 온 학생 네 명을 맡게 됐다.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는데 학교생활을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어서 금세 친숙해졌다”고 말했다. 엄씨는 어린 시절 집안 형편이 어려워 초·중등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한다. 위탁가정을 운영하면서 학교의 교육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게 됐고 2014년 초 옴천초 1학년으로 입학했다. 엄씨는 “새해에도 위탁가정을 통해 계속 아이들을 돌보면서 함께 공부하고 싶다. 6학년까지 마치는 게 목표”라며 웃음을 지었다.   

옴천초가 살아나면서 마을은 활기를 띠고 있다. 농촌 유학을 계기로 귀농이나 귀촌을 생각하게 된 젊은 부모들도 생겼다. 임 교장은 “실제 수원에서 온 학생 부모님은 아이를 돌보기 위해 이곳에 내려왔다가 아예 귀촌해서 옴천면에 정착하게 됐다”며 “새해에도 아이가 이곳 학교에서 졸업할 수 있도록 옴천면으로 이사 오기로 한 가정이 있다”고 밝혔다.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옴천초의 농촌 유학 프로그램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임 교장은 “옴천면에는 다문화가정이 많은데 중국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한 학부모가 중국에 있는 친척들에게 적극적으로 학교 홍보를 한 덕분에 새해에 중국인 학생 한 명이 옴천초 1학년으로 입학한다”고 밝혔다.

옴천초 교직원들과 주민들의 바람은 유학 온 아이들이 이 지역에서 더 오래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단기 유학을 넘어, 학생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지역의 중학교·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연계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임 교장은 “올해 유학생 10명 유치가 목표였는데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꿈이 이뤄졌다. 학생들에게 작은 일도 정성을 다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늘 강조한다. 이 말처럼 주민들의 작은 도움의 손길 하나하나가 모여 학교를 살리고 마을을 살려냈다”고 강조했다. 그는 “2015년은 15명 유치를 목표로 세웠다. 유학을 와서 졸업한 학생들이 지역 교육기관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협조를 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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